[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창조경제가 대체 어떤 거에요?"
주변에서 내게 많이들 던지는 질문이다.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이전에 했던 말이나 공약,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흘러나온 말들, 그리고 국정운영 목표와 어제의 취임사까지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며 개인적으로 생각한 결과를 정리하면 "창조경제= 창조가 동력이 되는 경제"다.
말장난 같겠지만 창조를 동력 삼아 경제 성장을 이루고 이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일자리도 늘리고, 최종적으로는 성장해서 얻은 결실도 나눠 분배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란 얘기다. 경제민주화란 단어가 국정운영 목표에서 잠깐 빠져서 논란이 일어서였을까. 취임사에선 다시 경제민주화가 명시됐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으니 창조로 분배를 하겠다는 의도가 맞다고 본다.
그렇다면 '창조'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할 때다. 박 대통령이 얘기하는 창조는 중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창의성과 도전정신, 그리고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앞서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등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해석들이 많다. 물론 그런 것도 같다.
그러나 더 먼저 경제에 있어 창조란 개념을 설파했던 사람들이 있어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창조경제의 연원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슘페터는 기업과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주장했다. 더 큰 가치를 위해 낡고 오래된 것을 버리고 경쟁력 있는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슘페터의 이 창조적 파괴 개념은 사실 원본에서 너무 다방면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유주의 시장론자들은 이를 그가 얘기한 혁신, 기업가 정신(enterpreneurship)과 창조적 파괴를 한 쌍으로 묶어서 기업의 이윤창출 극대화와 이를 위한 고도의 경영 전략을 합리화하고 경제의 무한 발전을 예찬하는 데 이용해 왔다.
"끝없이 창조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던 슘페터의 발언은 물론 자본주의의 팽창을 가져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팽창의 한계를 경험한 결과였다. 슘페터는 이처럼 혁신이 관료화될 것을 예측하기도 했으니 놀랍다. 종내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예측은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고 있지만. 어쨌거나 자본주의, 경제의 동력으로서 창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는 놀라운 학자다.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출처=TIME) |
게이츠는 지난 2008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각국 정부, 비영리단체들과 협력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데서 더 나가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적극적인 기업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빠르게 좋아지고 있지는 않다"면서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본주의가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이츠가 '창조적 자본주의'를 설파할 때 '창조'나 '창조적'이라는 것의 조작적 정의를 하진 않았지만 이 발언에서 보자면 자본주의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창조'란 말에 담겨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깊어져 가는 불완전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영속시키기 위해선 탐욕보다는 나눔을 생각하라는 메시지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월가 점령 시위 등이 이어지면서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질 수 있었음은 어쩌면 다행이라고 할까.
착한 기업과 따뜻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자본주의 4.0'에서 한 발 더 나가 시장의 공익적 기능이 강화되고 공유가치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5.0'이 주장되고 있는 것도 일단은 반갑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내놓은 '공유가치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란 것도 기업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편익을 동시에 창출하는 '공유가치'를 새로운 경영 목표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기 위해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말도 이 맥락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박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에겐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일어설 수 있도록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펼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경제의 중요한 목표"라고 한 부분이 매우 크게 들어왔다.
성장의 사다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재의 경제 구조에서 정부가 직접 사다리를 놓아주는 일차적인 지원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는 기업이 결실을 맺고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을 잡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고차원적 역할이다. 취임사에 이 점이 적확하게 짚어져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라는 프레임으로 대립을 조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란 풀리지 않는 문제로, 소모적인 논쟁만 부른다. 상황논리에 따라 무게중심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경제와 사회 발전이란 맞물린 톱니바퀴를 잘 돌리려면 정부,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진 대기업들의 나눔과 상생의 실천이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란 단어가 쓰이느냐 마느냐에는 앞으로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 취임사에 적시된 박 대통령, 그리고 새 정부의 의지가 잘 발현되는지를 지켜보고 각 경제 주체들이 이 방향을 향해 제대로 된 역할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