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고 사는 문제는 누가 해결할 것인가
경주 최부자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큰 존경을 받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럴만도 하다. 자신들의 호의호식보다는 주변을 더 보살핀 이타심은 누가 봐도 존경스럽다.
최부자댁은 300년이나 지속했다. 조선의 다른 부자들이 최부자처럼 오래 지속하지 못했던 것은 각종 민란에 약탈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에는 수많은 민란이 있었고, 그 때마다 탐관오리는 말할 것도 없지만 정당하게 돈 번 사람들의 재산도 모두 털리곤 했다. 재산 늘리기보다는 백성 챙기는 일에 더 힘쓴 최부자댁만은 예외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부자댁의 훌륭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조선 백성들의 민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선 백성들은 돈 가진 자들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뿌리 내릴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것 아닐까.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맞다. 민심을 거스르면 누구도 안전하기 힘들다. 그처럼 민심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민심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었다. 최부자댁은 훌륭했지만 조선의 민심이 그리 훌륭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 불합리함이 부메랑이 되어 조선백성들의 가난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자의 재산을 빼앗고자 하는 민심이 부자가 나오기 힘든 풍토를 만들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가진 자에 대한 질투는 호모사피엔스 공통의 본성이다. 유럽의 대학에서 강의하는 아프리카 출신 교수들은 고향을 방문하기 싫어한다고 한다. 친척들의 성화를 못 이겨 돈을 풀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고 한다(페터 푹스, 비즈니스 유전자, p. 132). 그런 사회에서 정상적인 부자가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 본성을 극복하는 사회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곤 한다. 미국이 영국을 앞지르게 된 것도 그런 민심이 작용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지만, 기업의 크기에는 일종의 한계가 있었다.
종업원 300~400 명 정도의 규모에 달하면 기업가들은 사업을 확장하는 대신, 젠틀맨으로 변신을 했다고 한다. 즉 좋은 저택을 마련해서 작가나 화가 음악가 같은 사람들과 문화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지나치게 큰 기업을 죄악시하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이던 미국에는 그와 같은 사회적 문화적 제약이 약했기 때문에 카네기, 록펠러, 밴더빌트 같은 기업가들이 수만명의 규모의 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출발한 미국이 영국을 추월했다.
이런 사정들을 생각해 보면 최근 몇 년간의 한국 민심의 흐름은 걱정스럽다. 동반성장, 경제민주화의 원래 취지는 크고 작은 기업들이 같이 성장을 하자는 것일 텐데,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자, 경제적 약자들의 불만을 사는 자를 끌어내리는 정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번에 중소기업적합업종이라며 확장 자제를 ‘권고’ 받은 놀부식당을 생각해 보라. 지금은 비록 모간스탠리가 인수했지만, 김순진이라는 충청도 아주머니가 산전수전 겪어가며 키워 놓은 중견기업이 바로 놀부식당이다.그런데 이제 돈 좀 벌었다고 더 이상 사업을 늘리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현재의 민심이지만, 그 민심을 옳다고 볼 수 있을까? 이래서는 누구도 열심히 사업을 키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편히 살려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외식업에서는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불합리한 민심이 가져올 부메랑 효과이다.
일반 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즈음 대기업들은 저마다 착해지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기업은 공부방을 운영하고 어떤 기업은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데에 돈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문제는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고스란히 제품의 원가에 포함될 것이고,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본업에 대한 투자의욕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착해지려는 이유는 정치에 의해, 민심에 의해 주어지는 불이익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1926년에 설립되었고, 삼성은 11년 뒤인 1937년에 세워졌다. 한 쪽은 착한 기업이고 다른 한쪽은 공격적으로 확장을 해 온 기업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조적이다. 유한양행은 1300명 남짓에게, 삼성그룹은 20만 명 이상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유한양행이 우리의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주지만,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삼성 같은 기업이 훨씬 큰 기여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민심은 삼성 같은 기업을 모두 유한양행처럼 만들자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누가 해결하려나?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프로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1988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2003년에는 숭실대학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2012년 3월 9년간 해오던 자유기업원장직을 떠나서 지금은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있다. 그 밖에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의 민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고,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정호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령 래퍼이기도 하다.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김박사와 시인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2011년 1월에는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라는 음반을 냈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김문겸 중소기업호민관과 같이 동반성장을 주제로 하는 랩배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서 유튜브에 공개했다. 제목은 We Can Do It! 2012년 10월과 11월에는 대학로 갈갈이홀에서 <기호 0번 박후보>라는 시사 코미디에 래퍼이자 강연자로 출연했다.
「비즈니스 마인드 셋」,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운대행 버스」, 「누가 소비자를 가두는가」, 「땅은 사유재산이다」,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 등 여러 권의 저서와 논문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