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세 없이 세수 확대하겠다는 코미디
"저는 개그맨인데요.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합니다" 개그맨 정형돈이 즐겨하는 유머다.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개그맨의 본업인데, 그것만 못한다니 말이 안된다. 그래서 웃긴다. 이처럼 언뜻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어보면 뜻이 안통하는 표현들을 모순어법이라 한다. 멋모르고 듣다가 생각해 보면 속은 듯해서 유머나 코미디의 소재로 자주 쓰인다.
그런데 코미디도 아닌 모순 어법이 박근혜 당선자 공약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증세 없는 세수 확대"가 그것이다. 증세는 세금을 안올리겠다는 말이며, 세수 확대는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말이다. 정확히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어 모순 어법 그 자체이다. 증세는 없다면서 세금은 더 거두겠다니... 생각해 보면 그야 말로 코미디의 소재다.
왜 그런 말을 쓰는지 의도는 알겠다. 세법 상의 세율을 올리지 않겠다는 말을 증세는 없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율을 올리는 것만이 증세가 아니다. 비과세 감면의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같은 것들이 모두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방법이다.
지난 12월에 전격적으로 결정한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의 확대도 세율은 올리지 않았지만 증세다. 이자 소득이나 주식배당 받는 사람들 중의 상당수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한다. 마치 버스 요금 인상은 안하겠지만 버스 회사의 요금 수입은 늘리겠다는 말 만큼이나 모순 어법이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도 증세 없는 세수 확대의 중요한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하경제란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할 대상인데 그 동안 세금을 내지 않아온 모든 거래를 말한다. 조폭이나 불법 외화반출 같이 먼 나라의 이야기 같은 것도 있지만 정말 큰 지하경제는 바로 우리들 속에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자녀에게 주는 결혼자금이다. 부모 자식 간이라 해도 10년간 3천만원 이상을 증여하면 10~50%까지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자식 결혼시키며 전세자금 대줬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증여세 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1억원만 줬어도 1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말이다.
물론 필자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전세자금을 받았을 때 증여세를 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것 말고도 또 큰 지하경제는 재래 시장, 노래방, 음식점처럼 현금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곳들이다. 국세청이 불을 켜고 추적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 탈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하경제의 가장 큰 부분은 우리 스스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거래들이다. 고소득 자영업자니 불법 외화 반출이니 하는 것들은 하나 하나의 규모는 크지만 건수가 많지 않아 그리 대단한 규모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하려면 중산층과 서민들의 가족간 거래와 자영업에서의 거래를 드러내야 한다. 그것은 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이 큰 증세 정책이 될 것이다.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국민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다.
박근혜 당선자는 증세 없는 세수확대를 약속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고통 없이도 복지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착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는 세금을 내야 복지재원이 늘어난다. 어떤 말로 치장을 하더라도 중산층의 세부담이 늘 수밖에 없음을 미리 고백해야 한다. 안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을 속인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국민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설마 나까지 세금을 내겠어'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거둬야 한다. 재정이 늘어나면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하고, 당신이 바로 그 국민이다. 증세 없는 세수 확대라는 구호는 코미디이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프로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1988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2003년에는 숭실대학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2012년 3월 9년간 해오던 자유기업원장직을 떠나서 지금은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있다. 그 밖에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의 민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고,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정호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령 래퍼이기도 하다.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김박사와 시인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2011년 1월에는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라는 음반을 냈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김문겸 중소기업호민관과 같이 동반성장을 주제로 하는 랩배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서 유튜브에 공개했다. 제목은 We Can Do It! 2012년 10월과 11월에는 대학로 갈갈이홀에서 <기호 0번 박후보>라는 시사 코미디에 래퍼이자 강연자로 출연했다.
「비즈니스 마인드 셋」,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운대행 버스」, 「누가 소비자를 가두는가」, 「땅은 사유재산이다」,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 등 여러 권의 저서와 논문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