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라 "달러/엔 95엔 갈수도"
- 아직 충분한 안정 조건 형성되지 않아, 투자처는 주로 신흥시장
- 모간스탠리: 위안, 원, 대만달러, 싱달러 바스켓 사라
- 미 재정절벽, 유럽 위기 아직 변수로 남아 상처 입을 수도
[뉴스핌=김사헌 기자] "지난 몇년 동안 엔화 가치가 급락할 때만 노려왔다. 지금 모두들 그 때가 왔다고 흥분하고 있다".
헤지펀드인 뉴스케이프 캐피탈 그룹의 회장 겸 수석투자전략가 필리프 본네포이의 말이다.
4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외환시장의 투기 세력들이 엔화 가치 급락에 베팅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연말을 앞두고 엔화 순매도 포지션이 5년래 최고수준까지 치솟아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상업은행 외 금융회사들, 이른바 '투기세력들'은 평년같으면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정리해야 할 포지션을 올해는 접지 않고 있다. 특히 엔화 순매도포지션을 5년래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엔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달러/엔은 4월 이후 가장 높은 82엔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다. CFTC 자료를 보면 엔화는 이미 '숏'포지션을 구축할 때 이용하는 통화로서 유로화를 제쳤다. 누적으로 무려 7만 9466계약의 엔화 순매도 포지션이 형성됐다. '엔 캐리-트레이드'가 다시 구축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투기세력들의 이 같은 '확신'을 심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차기 총리로 유력시 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다. 그는 디플레이션 극복과 경기 부양을 위해 일본은행(BOJ)이 양적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해외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 가운데 최근 노무라의 채권 담당 헤드인 젠스 노드빅은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치인들은 일본은행을 새롭게 만들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모양이 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면서도, "다만 일본은행이 바뀐다는 점 자체가 엔화에 미칠 영향은 심오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노무라는 BOJ가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2%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며, 또 이러한 이행 기간 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할 경우 달러/엔이 95엔 선까지 급등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외환 헤지펀드인 하모닉 캐피탈의 투자파트너 패트릭 사펜블라드는 "최근 '리스크 온(risk on)' 모드가 전개되면서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화가 약세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 "캐리-트레이드가 여전히 구축되는 상황이고, 엔화가 유력한 조달 통화(funding currency)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로이터통신은 일본이 추가 완화정책을 구사할 것이란 기대가 강해지면서, 엔화를 조달통화로 삼고 일부 신흥시장 통화에 투자하는 방식의 캐리-트레이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모간스탠리는 엔화를 매도하고 중국 위안, 한국 원, 대만 달러, 싱가포르 달러 등으로 구성된 바스켓통화를 매수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은 내년 달러/엔이 92엔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을 제출했다. 당시 RWC캐피탈과 같은 곳은 한국 원화와 말레이시아 링깃화을 매수했으며, 터키 리라화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일부 헤지펀드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북 클로징'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접근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뉴스케이프 캐피탈이 더 나은 거래 진입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반면, 하모닉 캐피탈은 이미 엔화 순매도 포지션을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장은 미국의 '재정절벽(Fiscal Cliff)'에 대한 합의 여부가 변수다. 여기서 좋은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미국 국채 등급이 강등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험보유성향이 약화되면서 '안전도피'가 전개되고 이 과정에서 엔화가 다시 강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위기도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고 세계경제 전망이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점도 캐리-트레이드가 본격화되기에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전문가들은 다시 캐리-트레이드가 형성되더라도 위기 이전,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 번성했던 시절만큼 회복되기는 힘들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근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2007년 당시 기록한 190억 달러에 비해 1/3 수준이고, 82엔의 환율은 과거 120엔 수준과도 거리가 멀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