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서영준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재계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지난 6일 전경련이 예정에도 없던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대선정국을 앞두고 정치권이 규제하려 드는 순환출자와 관련된 사안들이었다.
특히,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려는 정치권 움직임에 대한 반박이 골자였다.
전경련 측은 순환출자 구조는 일본,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세계 유수 기업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 이를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주식매입으로 이어져 그만큼의 자금이 연구개발이(R&D)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에 쓰이지 못 한다고 역설했다.
한 마디로 순환출자 규제에 대한 전경련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다른 나라에도 없고, 기업 투자에 도움이 되지 못 한다"이다.
전경련의 이 같은 입장은 그러나 입법 움직임까지 보이며 재계를 강하게 압박하는 정치권에 얼마나 전해졌을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순환출자 규제론은 대선정국에서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려는 여야의 움직임에서 출발했다.
한편에서는 표(票)풀리즘이라고 비판도 하지만 경제 양극화의 상황에서 재벌 총수들이 미미한 지분으로 수십개 계열사 경영권을 행사하는 순환출자의 부조리함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때 보다 큰 게 현실이다.
재계의 우군으로 오해(?)했던 여당도 순환출자 규제에 나섰고 물론 야당의 순환출자 규제책은 여당의 그것보다 더 구속적이다.
그동안 순환출자 규제와 관련해 상당기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전경련이 야심차게 내놓은 이날 변론성 주장이 그동안 나왔던 이야기의 재탕, 삼탕에 불과하자 오히려 재계 관계자들마저 허탈해 했다.
순환출자 반대의 목소리만 울렸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왜 문제가 있고 기업들에게 어떻게 얼마나 피해가 가는지, 순환출자 정점의 기업은 왜 이를 반대하는지등 재계를 대변할 보다 세밀한 설명과 주장이 뒷받침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결권 제한이 기업 투자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정치권이 신규 순환출자 금지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꾸준히 재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나왔던 이야기다.
또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필요 자금에 대해서도 경제개혁연대나 재벌닷컴 등 시민단체들이 조사해 발표한 금액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 것이란 게 전경련이 내놓은 답변이었다. 긴급 기자회견치고는 전경련이 준비한 게 너무 없었고 전경련의 반발이 오히려 정치권의 규제를 더 강하게 형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취재과정에서 들었다.
모 그룹의 홍보업무 책임자는 전경련의 순환출자 규제 반대주장과 관련, " 전경련 조직의 존재감을 알리기위한 행위일 뿐이다"며 " 재계를 위해 몸을 던진다는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는 "긁어 부스럼만 만들지 않았느냐"고 걱정하기까지 했다.
대선이 다가올 수록 정치권의 재계에 대한 압박 수위는 지금보다 높아질 게다. 과거 사례를 돌이켜 봐도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재계를 대변한다는 전경련이 정치권과 엉성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급조한 느낌의 간담회를 진행하거나 구체적 내용 및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만 펼친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공허한 자기들만의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구호는 오히려 반대여론만 강하게 형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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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서영준 기자 (wind09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