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 소비 투자 수출 충격, 가계기업심리도 동반 악화
[뉴스핌=이기석 기자] 국내 주요 경제지표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국내 실물지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하반기 들어 정부 당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잇따라 하향한 이후 처음 발표된 국내 실물지표들이 모두 일반적인 예상을 훨씬 넘어서면서 충격(Shock)과 놀라움(Surprise)를 주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실물지표인 광공업생산이 6월중 석달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전환된 데 이어 7월 수출도 무려 9% 가까이 급감했다. 시장의 컨센서스보다 대폭 감소한 것이어서 시장도 정부도 쇼크상태에 휩싸여 있다.
반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중 1.5%를 기록, 3년만에 1%대로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12년만에 최저치를 기록, 통계당국도 놀랄 지경이다. 생산자물가도 석달 연속 하락한 뒤여서 놀라움이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더욱이 국내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경기를 보는 심리상태가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어 더욱 심각한 상태이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두달 연속 나빠진 가운데 기업들의 업황심리가 대폭 악화되면서 패닉상태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가계와 기업들의 소비와 투자심리가 대폭 악화된 것은 유로존 재정위기 등 대외 불확실성이 가장 크게 작용했지만 대내적으로는 정부 당국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고, 정권말 차기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경제민주화 공약 등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말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로 하향했으나 이후 추가 하향 가능성을 비추면서 최근에는 2%대 성장률 전망까지 서슴지 않고 얘기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경우는 석달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3.0%까지 내리면서 정책효과까지 포함된 것으로 얘기했다.
더욱이 한국은행이 지난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12개월간 유지된 금리동결 기조를 깬 것은 물론 41개월만에 금리인하를 전격 단행, 놀라움과 충격을 동시에 줬다. 경제악화를 우려해 선제적으로 인하했다는 말과 달리 시장의 초점은 얼마나 나빴으면 기존의 금리정상화 입장을 뒤집었느냐 하는 데 있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유로존의 재정위기 파고에 대해 하반기로 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낙관했고 이에 근거해 하반기 수출 및 내수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봤지만, 이같은 경기진단이 잇따라 오류로 판명되자 시장과 가계 및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더욱 추락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나 한은, 통계청 등 정부 당국도 7월말 이래 발표된 생산 소비 투자 등 실물경제지표 뿐만 아니라 물가까지 예상범위를 넘어서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기부진과 물가하락, 저성장과 저물가가 동반되는 디플레 공포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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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일 과천정부청사에서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국내 주요 경제지표 급추락, 경기부진 속 저물가 디플레 우려 확산
2일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은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7월 소비자물가가 1.5% 상승하면서 12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 대해 “농축수산물과 국제유가 하락 등 공급측 불안요인이 해소됐고 전년도 기저효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박재완 장관은 “수요 측면에서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소비이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겪었던 냉해와는 달리 여름철 날씨가 좋아 본격 출하가 이뤄지면서 농축수산물 값이 급락했고 국제유가도 지난해와 달리 하락했다는 점이 컸지만, 유로존 위기 등에 따른 경제 주체들의 소비나 투자 부진 등 수요쪽 요인을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6월중 소비와 투자지표를 보면 이런 점이 더욱 확연해 진다. 6월중 소비지표인 소매판매는 승용차 등 내구재 뿐만 아니라 준내구재와 비내구재 등 모두 부진, 전월대비 0.5% 감소, 석달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업태별로 백화점이 5.2%나 줄었고 대형마트 등 모든 업태에서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투자지표는 ‘악’ 소리가 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6월중 설비투자는 산업을 이끄는 기게류 투자가 악화되면서 전월대비로 6.3%나 급감했다. 전년동월비로도 5.6%나 줄었다. 기계수주는 18.7%나 줄었다. 건설투자도 3.3%나 나빠졌다.
그렇지만 향후 소비와 투자 등 내수지표들이 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는 데 심각성이 더해진다. 한은이 발표한 7월중 가계의 소비심리는 현재생활형편CSI가 87로 2개월째 하락했으며 가계수입전망CSI도 93으로 2개월째 떨어졌다.
더욱이 기업들의 경기심리는 곤두박질치며 공황상태에 이르렀다. 7월중 제조업의 업황BSI가 71로 전월대비 전례없이 무려 11포인트나 급락했다. 중소기업은 8포인트 떨어진 반면 대기업의 BSI는 18포인트나 추락했다. 수출기업은 14포인트, 내수기업은 10포인트나 급강하했다.
제조업의 경우 불확실한 경제상황과 내수부진이 최대의 경영애로 사항으로 꼽혔고, 비제조업체들의 경우도 불확실한 경제상황에 대한 우려감이 더욱 커졌다. 내수부진과 경쟁심화도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여기에 7월중 수출도 급감했다.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7월중 수출은 전년동월비 8.8% 감소한 446억달러, 수입은 5.5% 줄어든 419억달러로 무역수지는 2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7월 수출이 급감한 것은 유로존 재정위기에 따른 선박 수출 부진, 세계경제의 위축, 여름휴가의 조기 실시, 기저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유로존 위기 등으로 선박 수출이 비록 20억달러 가량 줄어든 것을 제외하더라도 7월 수출은 시장이나 정부의 예상치에 20억달러 가량이나 못미친 것이다.
◆ 실물 심리지표 동반 급속 악화, 경제주체 무력감 극복 수단 필요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의 예측대로 유로존 위기가 장기화되고 구조화됨에 따라 수출 둔화는 물론 내수까지 장기적으로 침체 국면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특히 물가상승률까지 크게 둔화됨에 따라 디플레이션 공포감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전에는 심리지표와 실물지표가 시차를 두고 움직였으나 현재의 국면에서는 가계나 기업들의 심리지표가 크게 악화된 것이 바로 실물지표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양증권의 이철희 수석 연구위원은 “국내 생산 소비 투자 등 실물지표 뿐만 아니라 가계나 기업들의 심리지표까지 모두 무너지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어 당혹스럽다”면서 “이전과는 달리 심리와 실물지표가 곧바로 영향을 줄만큼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철희 위원은 “최근 미국이나 중국의 ISM 제조업지수가 무너진 이후 국내외 기업들이 모두 비상경영 시나리오를 짜면서 그에 맞춰 긴축경영을 하고 있다”며 “유로존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가시화되지 않고서는 위축된 소비나 투자심리를 복원하기까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주원 수석 연구위원은 ‘하반기 내수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제목의 현안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수출 경기가 급랭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취약한 내수 부문도 동반 침체할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주원 위원은 “하반기 내수경기 불황 가능성에 대비해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고려해야 한다”며 “다만 경기활성화 대책은 소비와 투자심리 회복에 초점을 맞춰져야 하며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유로존위 재정위기가 하반기에도 장기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생산 소비 투자 등 실물지표가 모두 꺾이고 있다”며 “정부도 모든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유로존 재정위기가 지속되고 있어 답답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최근 가계를 비롯해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더욱 악화되고 있어 혹여나 모두 손을 놓으면서 위기가 자기실현될 위험성이 있다”며 “정부도 딱히 답은 없지만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꺾이지 않도록 속도감 있는 대응을 강구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위기가 지속되는 와중이라서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재정건전성과 가계부채 및 금융기관 건전성 확보 등을 통해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해야만 한다”며 “자칫 경제가 나쁜 상황에서 이를 섣부른 대책을 쓸 경우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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