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일부 그리스 채권자나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빨리 유로존을 떠나는게 더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유로존과 그리스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독일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얻는 것과 또 잃는 것은 무엇인지, 그 비용와 충격의 차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마틴 울프(Martin Wolf)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경고했다.
울프는 18일자 칼럼을 통해 그리스의 탈퇴가 엄청난 위험을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단 주변국으로의 '전염' 위험은 명백하다. 좀 더 장기적인 위험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유로존 통화동맹의 운명과 관련된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어려움에 빠진 나라가 이탈하고 경직된 고정환율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시민들은 그 생존 전망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고 단일통화를 채택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이익도 사라질 수 있다"면서, "문제는 유로존의 몰락이 가져올 파장이다. 세계 최대 금융시스템을 가진, 세계 2위 경제권이 흔들린다면 이는 곧바로 글로벌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울프가 그려본 그리스 사태의 시나리오다.
모든 위험은 그리스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는 위기 이후 실업률이 7% 부근에서 22%까지 치솟았다. 25세 이하 경제인구의 실업률은 21%에서 51%로 올라갔다. IMF에 따르면, 강력한 채무탕감과 긴축정책으로도 이 나라의 공공채무는 2013년 말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위기 발생 직전과 비교할 때 50%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그리스는 올해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그리스 경제는 경쟁력을 잃었고 5년 연속 경기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스 정치도 붕괴되어, 대외 채무 협상 조건을 좋게하는 정치인이 권력을 쥘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국제기구나 채권단은 그리스인들의 고통 완화를 위해 더 많은 지원을 하거나, 혹은 엄격하게 긴축 개혁 약속을 강제해 붕괴와 이탈 여부를 지켜보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 그리스 이탈은 붕괴의 시작
하지만 그리스가 모든 협상을 버리고 이탈한다면, 그 결과는 분명하다. 먼저 대외 자금조달이 막히면서 무질서한 붕괴가 시작된다. 그리스 정부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더이상 국채를 우량담보로 제출할 수 없는 그리스 은행권에 유동성을 제공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전반적인 그리스 은행권의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 사태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 도피를 막기 위해 그리스 정부는 외환을 통제하고,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여 국내 거래통화를 바꾸고 유로화로 이루어지는 대외거래는 지급불능을 선언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 스스로도 혼돈에 빠지게 된다. 급여를 받지 못한 공무원과 군인들이 질서정연하게 참아낼지 의문이다. 약탈과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 쿠데타나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새 화폐 가치는 폭락하고 인플레이션이 급격하게 일어날 것이다.
물론 좀 더 길게 보면 그리스는 점차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스가 재정적자를 억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줄일 수도 있다. 수출기업들이 유럽연합(EU) 시장을 다시 진입할 수 있고, 일시적으로나마 경기 호황을 누릴 수 있다.
좀 더 질서정연한 퇴각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외부 지원이 되면서 새 화폐로의 이행기간 동안 공공재정 지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불안은 줄고 새 통화 가치가 급락하거나 인플레율이 급등하지 않고 완만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ING의 분석가는 원만한 주변국의 동조와 지원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따른 충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가 이탈할 경우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한 충격은 2012년부터 2014년 사이에 그리스 GDP의 약 4% 정도를 줄어들게 하고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경우 2% 줄어드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울프는 그리스 이탈의 충격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질서한 이탈의 경우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혹은 그 이상의 지역 은행의 '뱅크런'을 유발할 수 있고, 또한 금융 및 여타 자산 가격의 붕괴를 이끌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이 경우 독일 혹은 아예 유로존 외 지역으로 안전자산으로의 도피가 가속화될 수 있다.
게다가 그리스 외의 몇몇 나라의 상황도 상당히 악화되고 있다. 스페인의 공식 실업률은 3월 현재 24%이고 청년실업률이 50%에 이르고 있다. 올해 스페인의 재정 적자는 GDP의 6%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 GDP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재정여건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총 부채는 2007년까지만 해도 GDP 대비 36%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79%에 이르렀으며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은 국채 수익률이 6%를 넘어섰으며 추가 상승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은 과감한 결단을 해야한다고 울프는 주장했다. 은행과 민간 신용시장이 경색되면 ECB가 무제한적으로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주요국 국채 수익률에 외부적인 한도를 설정해야 할 수도 있다. 은행권의 자본 증강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유로존의 결속을 강화할 것이란 믿음을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강력한 재정 연대, 나아가 유로본드의 도입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경제 성장과 근원물가 인플레 없이 재정이 다시 건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고 울프는 강조했다.
◆ 적극 대응 없다면 충격은 엄청날 것
이런 노력이 없이 유로존이 붕괴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라고 울프는 경고했다.
앞서 ING의 분석가는 이 경우 유로존 경제 전반이 심각한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세계경제까지 침체로 몰아넣을 것으로 봤다. 유로존에서는 독일 경제가 7% 가량 위축되고 그리스는 13%에 이르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게 될 것으로 봤다. 그 외 나라들은 수출과 금융 연계의 수준에 따라 차별적인 위축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 주변국에서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반면, 중심국에서는 디플레이션이 전개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주변국 인플레이션은 국가 부채 부담을 줄여줄 것이며, 이에 따라 자국 통화로의 환폐단위 변경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중심국이 보유한 해외자산 가치는 추락하고 통화가치는 급등하는 등 모두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울프는 이 같은 분석조차 유로존의 붕괴에 따른 충격의 수준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낙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통제, 법률적 불확실성, 자산가격 급락, 예상치못한 재무여건의 악화, 금융시스템 마비, 중앙은행의 혼란, 재정지출과 교역의 급격한 감소, 강력한 환율변동성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엄청난 비용을 들여 금융시스템의 구제에 나서야 할 것이며, 급격한 경기침체로 인해 재정여건은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럽의 중대한 조약과 여러가지 부산물로 인해 각종 국제적 법률 소송이 유발되고, 그로 인해 유럽적 질서가 얼마나 크게 변모할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그는 주장했다.
한편, 유로존 외 지역이 받을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ING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 GDP가 약 5% 정도 위축될 것이며, 중앙 및 동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 충격이 예상된다. 미국와 일본도 완만한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을 수 있다.
울프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은 아무리 성공적이라고 해도 유로존 붕괴 가능성을 높일 것이고, 이에 따라 모두가 언제나 유로존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보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역경제 위험 증대 요인이어서, 취약한 회원국의 금리 급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재정긴축 노력을 해도 금리가 내리기는 커녕 더 올라가게 만들 수 있다.
울프는 결론적으로 독일과 같은 주요 채권국은 유로존의 통합을 강화하든지 아니면 아예 사라지게 하든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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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