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숨바꼭질 놀이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925원의 박스권 하단이 무너지고 910원대를 보는 등 환율 하락에 따른 기술적 조정이 그 연원이 되고 있다.
주로 거래되던 박스권이 하향 조정되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고 환율 레벨 하락에 따른 경계감 등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외은권 외화차입에 대한 규제 방침이 드러나고 그 이유가 환율에 대한 걱정이 기본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환율 하락 시도는 여전히 불편하다.
더욱이 하반기 경제전망이 발표되고 경제정책이나 통화정책 방향이 제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벤트성 행사 역시 시장을 주춤거리게 한다.
전날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4.5%로 0.1%포인트 상향 조정했으며, 내수 회복과 수출 호조가 지속되면서 경기 상승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은 올해 보다 더 좋다는 얘기도 남겼다.
마침 LG경제연구원은 내년도 성장률을 5.0%로 전망하면서 한은의 경제전망에 ‘주마가편’(走馬加鞭)식으로 힘을 보탰다.
한은 김재천 조사국장은 “성장률이 0.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는 것보다 당초 한은의 전망대로 경기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은의 경제전망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지 않느냐’고 딴지를 걸었던 세상이 이제 인식을 한은에 맞추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한 적절성에 대해 신뢰를 보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권오규 부총리도 최근 연구기관장과 경제5단체장 오찬 간담회 등을 통해 “수출과 내수가 예상보다 좋다”며 “올해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이미 경기 개선에 대한 공감을 표명한 바 있다.
이같은 펀더멘탈 호조세는 수출 호조에 더해 내수, 즉 소비와 설비투자가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이뤄지고 있고, 그에 따라 주가 상승과 원화 강세, 그리고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하반기 달러/원 환율을 평균 915원을 전망했으며, 내년 평균환율은 910원으로 낮춰 잡았다.
권오규 부총리는 “여태까지 환율은 수급 대책 위주로 접근해 왔다”면서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환율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내비췄다.
이런 맥락에서 권 부총리는 “오는 12일 외화차입에 대한 대책을 (직접) 밝히겠다”고 했고 외은 서울지점의 외화차입에 대한 한도 규제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이 34개 외은권 지점장들을 모아놓고 외화차입금을 줄이라고해 ‘구두성’ 충격이 있었고 이번에는 ‘제도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규제의 현실화가 목전에 놓인 상황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여러 대안이 있고 그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부총리께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혀 시장에 충격을 덜 주는 방안을 발표한 뒤 추이를 보면서 강도를 다소 높여가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시장은 불확실성과 친구삼기를 꺼리기 때문에 오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나 단기 외화차입 규제 발표가 나기 전까지 크게 움직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 직면하면서 경기 둔화 조짐이 있고, 특히 무디스가 서브프라임 주거용모기지담보증권(RMBS)에 대해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한 것이 금융시장에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920.10원을 중심으로 918.80~921.10원 수준에서 일단 거래선을 탐색한 뒤 추가로 917.70~922.40원 수준까지 변동폭을 탐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변수가 강하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변동성이 제한되기는 하겠으나 달러/엔이 123엔에서 121엔대로, 유로/엔이 168엔에서 166엔대로 급락하는 등 달러 급락세가 이뤄지고, 뉴욕주가가 급락한 바 있어 시장은 다시 상승과 하락 요인이 교차할 것으로 보여 신중한 접근이 요망된다.
(이 기사는 11일 오전 8시 30분 유료회원들께 앞서 송고된 바 있습니다.)
◆ 뉴스핌 외환시장 컨센서스
다음은 국내외 금융권 소속 외환딜러 및 이코노미스트, 주식 애널리스트의 외환시장 및 주식시장 전망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회사별 가나다 ABC순).
▷ 기업은행 김성순 과장
: 달러/원 환율은 당분간 방향을 잡기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버냉키 연준 의장의 연설, 단기 외화차입금 규제 대책, 금통위 콜금리 인상 여부 등 재료와 이벤트가 많다. 매수쪽이 취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씩 밀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시아 통화 강세도 역외 매도요인으로 작용해 이 부분도 잘 봐야할 것 같다. 그렇지만 환율 방어용으로 단기 외화차입 규제안을 마련한 것에서 보듯이 정부의 개입 경계감이 여전해 환율은 920원대 초반에서 별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 HSBC 이주호 상무
: 달러/원 환율은 당분간 약세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 바트화 등 아시아 통화 강세에다 글로벌 달러의 약세, 그리고 수급상 외환공급 우위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다소 상향 조정됐고 금리인상 여지도 있다. 특히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사 수주를 둘러싼 수급 불균형은 한국 경제의 성장 구조를 상징하는 점도 있지만 단기 해결이 가능치 않을 것이다. 환율 레벨 하락으로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어 완만한 하향세가 예상된다.
▷ KB선물 이탁구 이코노미스트
: 달러/원 환율은 재경부가 단기 외화차입 규제안을 발표할 때까지 제한된 등락을 보일 것이다. 콜금리 인상 역시 그간 포석을 깔아놨기 때문에 시장의 기대에 일치될 것으로 보고 있다. 930원선에서 920원대로 하향했고 크게 하락하더라도 910원선대에서 크게 움직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원화 강세-달러 약세 요인이 주변에 수두룩하다는 점에서 점진적으로 밀리는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엔화 약세에 대한 국제공조 얘기가 있지만, 각국의 이해가 갈리기 때만에 역시 유효성은 떨어질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