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Newspim] 세계경제 사령관이라 불리는 미국 연준(Federal Reserve) 버냉키 의장의 취임 1주년을 맞아 그의 면모를 체계적으로 조망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버냉키 1주년 특집은 "버냉키노믹스: 버냉키와 연준의 도전"을 주제로 <버냉키 시대의 도래>, <대공황 마니아>, <그린스펀 스탠더드>, <버냉키 스탠더드>, <버냉키호의 좌표>, <글로벌 위기의 시험> 순으로 연재될 것입니다. 글로벌 시대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인 버냉키와 그가 이끌어갈 연준을 조망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1)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 對 전망 기반 패러다임
② 버냉키,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계승?
그렇다면 그린스펀의 이런 절충적이고 모호한 스타일이 그의 후임으로 하여금 자신의 성공을 되풀이하기 더욱 힘들게 만들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그 어느 중앙은행가들도 특정한 모델이나 준칙을 엄격히 고수하지는 않으며, 대다수는 일종의 리스크 관리 접근법을 준수하고 있다. 버냉키 역시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을 탁월한 유산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의 전망 기반 패러다임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버냉키는 연준 이사 시절부터 자신의 전략을 정교화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전개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4년 말 「통화정책의 논리」(“The Logic of Monetary Policy”)라는 강연이다.
여기서 쟁점은 현대 통화경제학에서 널리 활용되는 ‘수단 준칙(instrument rule) 對 타겟팅 준칙(targeting rule)’의 논쟁 구도다. 그는 이에 대해 ‘준칙’이라는 개념이 “재량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엄격하고 기계론적인 정책 처방”을 연상시킨다며, 이를 그냥 ‘정책’(policy)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한다. 또 ‘수단’과 ‘타겟팅’이라는 용법도 그다지 명쾌한 개념은 아니라면서, 위 논쟁 구도를 아예 ‘단순 피드백 정책’(simple feedback policies)과 ‘전망 기반 정책’(forecast-based policies)으로 대신할 것을 제안했다.
버냉키는 오늘날 연준을 비롯해 현대 중앙은행 전반에서 이런 두 가지 전략 혹은 “통화정책 운영체계”(monetary policy framework)를 활용하고 있지만, 역시 무게중심은 ‘전망’을 특권화하는 ‘전망 기반 정책’에 쏠린다고 진단한다. 특히 그 단적인 예로 그린스펀의 전략을 든다. 우선, 그린스펀의 예의 ‘선제대응’(preemption)이야말로 정책 시차와 초기 대응의 비용․편익을 감안한 전망 기반 전략의 일례며, 게다가 ‘구조변화’에 대한 그의 관심 역시 경제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망에 기반한 적극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반영한다는 것.
하지만 역시 핵심은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접근이야말로 전망 기반 정책의 보다 진전된 형태라는 그의 진단이다. 여기서 버냉키는 그린스펀의 접근법이 통상적으로 학계 문헌에서 활용되는 전망 기반 정책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학계의 경우에는 대부분 “평균적이고 가장 유력한 결과”에만 치중하는 반면,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은 “전체적인 확률 분포”와, “발생 확률은 낮지만 발생 시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리스크와 같은 비대칭성”을 감안한다는 것. 결국 그린스펀의 패러다임은 버냉키에게서 학계의 접근에다 리스크 관리를 접목시킨 일종의 “리스크 조정(risk adjusted) 전망 기반 패러다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버냉키의 이런 ‘종합’을 이른바 ‘베이지안 최적화’(Bayesian optimization)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학계에서 발전돼 온 ‘(제약) 최적화’에다 정책 현실의 ‘베이지안 접근’을 결합시킨 것 말이다. 블라인더와 라이스는 이를 “몇 개의 모형들을 아우르고, 나아가 계수가 변하고 심지어 구조도 수정되기도 하며, 각 모형의 확률도 매번 새로운 정보의 유입으로 업데이트되는, 대형 모형에 종속된 기대 손실 함수의 베이지안 최적화”로 풀이한다.
사실 하버드 대학의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그린스펀의 2004년 강연을 평가하며, “그린스펀이 통화정책의 리스크 관리 접근이라고 부른 것에 핵심은 베이지안 의사결정 이론이다”고 진단한 바 있다. 또 “이는 모든 가능한 ‘세상의 상태’(states of the world)를 식별하고, 각 상태에 대해 주관적인 확률을 부여함으로써 시작된다... 각각의 잠재 결과에 대해 원칙적으로, 주관적 확률을 이용해 이런 결과들의 기대 효용을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최적 정책은 최상의 기대 효용을 지닌 것이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블라인더와 라이스는 버냉키의 2004년 강연 역시 이런 시각, 즉 ‘베이지안 최적화’의 일례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블라인더와 라이스는 그린스펀의 유산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데 반대한다. 그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우선 ‘행태경제학’을 빌려 와 그린스펀의 패러다임은 이른바 “최적”(optimizing)이 아니라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하의 “만족”(satisficing)을 중시한다고 지적한다. 가령 불이 났을 때 이리저리 따지기 보다는 서둘러 “불을 끄기”(putting out fire) 위한 임기응변식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것.
둘째, “제한된 수의 리스크만이 신뢰성 있게 계량화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상당한 ‘재량’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그린스펀은 “재량은 리스크 관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맥락에서 리스크 관리는 ‘부분 과학이자 부분 예술’이라고 한다. 여기서 동원되는 모형은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y)에 불과하다. 그린스펀은 “특정 모델의 시뮬레이션에 기반해 최적으로 계산된 특정한 정책 조치는, 가장 유력한 경로를 둘러싼 각종 리스크들의 완전한 정도가 고려되고 나면 사실상 최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형(혹은 전망)의 유용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으며, 또 최근 들어 각종 모형화가 진전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아직은 그 어떤 최적화이건 정책 결정자들의 전반적인 수요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대신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로버스트성”(robustness)이다. 사실 ‘그린스펀의 적자’로 평가받는 도널드 콘 연준 이사회 부의장 역시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특히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과 관련해, “모델 전반에 걸쳐 평균 손실의 최소화”를 도모하는 이른바 “표준적인 베이지안 접근”(standard Bayesian approach)과 대조적으로, “다양한 모델에 걸쳐 최대한의 가능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로버스트 제어”(robust control) 접근법을 옹호한다. 나아가 비록 발생 확률은 낮되 심각한 역효과를 수반할 사건들에 대한 일종의 “보험 정책” 역시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을 규정짓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다.
여기서 블라인더와 라이스가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기관의 일상적인 리스크 관리 접근법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 결과에 대한 취약성을 줄일 구조 및 통제 메카니즘의 구축” 말이다. 사실 “현대 모든 금융기관들은 양적이고 질적인 측면들을 혼합시킨,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하는 공식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이런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 바로 ‘리스크 매트릭스’(risk matrix)다. “이는 상당한 행위들, 그리고 이런 행위들의 고유한 리스크들의 유형과 수준, 또 이런 행위들에 대한 리스크 관리의 적절성을 식별하고, 나아가 각각에 대한 종합적인 리스크를 판별하기 위해 사용된다. 리스크는 전형적으로 특정한 결과가 일정한 목표 혹은 신중한 기준에서 대폭, 부정적으로 이탈할 가능성으로서 이해된다. 리스크 평가에 대한 판별은 고유한 리스크의 전반적인 수준을 이런 행위에 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전반적인 견실함과 비교, 종합해 이뤄진다.” 이들은 이런 접근법이 연준의 FOMC 회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린스펀의 패러다임은 1990년대 중후반 그와 함께 세계 경제를 진두지휘했던 로버트 루빈 前재무장관의 시각과 유사하다. 실제로 루빈은 자서전에서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결정은 확률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시각이 “... 재무부에 근무한 4년 동안 래리 서머스와 앨런 그린스펀과의 아침 식사에서 토론을 거쳐 형성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오랜 세월 금융시장에서 리스크 관리를 갈고 닦아 온 루빈의 ‘확률론적 의사결정’과 역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생생한 현장에서 풍부한 실천적 경험에 기반한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간에 무슨 차이를 찾기는 힘들다.
결국 버냉키의 전망 기반 패러다임을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에 대한 단순한 계승, 발전이라고 간주하기는 힘들다. 특히 ▲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의 생생한 ‘현실’을 중시하며 ‘만족’과 ‘로버스트성’을 시금석으로 삼는 그린스펀의 감각적이고 전략적인 태도는 ▲ ‘전망’을 특권화하고 이와 관련된 ‘기대 관리’에 무게를 싣는 버냉키의 학구적이고 정책적인 자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물론 그린스펀의 이런 태도에 대해 ‘단기주의’ 혹은 ‘근시안주의’라는 비난 여론이 큰 것도 사실이다. 즉, 그린스펀의 전략이 매번 월스트리트 저널과 같은 금융 매체에 나온 얘기를 답습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도리어 시장을 ‘부당 전제’하는 버냉키의 접근법 역시 맹점을 지닌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자.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1)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 對 전망 기반 패러다임
② 버냉키,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계승?
그렇다면 그린스펀의 이런 절충적이고 모호한 스타일이 그의 후임으로 하여금 자신의 성공을 되풀이하기 더욱 힘들게 만들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그 어느 중앙은행가들도 특정한 모델이나 준칙을 엄격히 고수하지는 않으며, 대다수는 일종의 리스크 관리 접근법을 준수하고 있다. 버냉키 역시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을 탁월한 유산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의 전망 기반 패러다임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버냉키는 연준 이사 시절부터 자신의 전략을 정교화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전개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4년 말 「통화정책의 논리」(“The Logic of Monetary Policy”)라는 강연이다.
여기서 쟁점은 현대 통화경제학에서 널리 활용되는 ‘수단 준칙(instrument rule) 對 타겟팅 준칙(targeting rule)’의 논쟁 구도다. 그는 이에 대해 ‘준칙’이라는 개념이 “재량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엄격하고 기계론적인 정책 처방”을 연상시킨다며, 이를 그냥 ‘정책’(policy)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한다. 또 ‘수단’과 ‘타겟팅’이라는 용법도 그다지 명쾌한 개념은 아니라면서, 위 논쟁 구도를 아예 ‘단순 피드백 정책’(simple feedback policies)과 ‘전망 기반 정책’(forecast-based policies)으로 대신할 것을 제안했다.
버냉키는 오늘날 연준을 비롯해 현대 중앙은행 전반에서 이런 두 가지 전략 혹은 “통화정책 운영체계”(monetary policy framework)를 활용하고 있지만, 역시 무게중심은 ‘전망’을 특권화하는 ‘전망 기반 정책’에 쏠린다고 진단한다. 특히 그 단적인 예로 그린스펀의 전략을 든다. 우선, 그린스펀의 예의 ‘선제대응’(preemption)이야말로 정책 시차와 초기 대응의 비용․편익을 감안한 전망 기반 전략의 일례며, 게다가 ‘구조변화’에 대한 그의 관심 역시 경제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망에 기반한 적극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반영한다는 것.
하지만 역시 핵심은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접근이야말로 전망 기반 정책의 보다 진전된 형태라는 그의 진단이다. 여기서 버냉키는 그린스펀의 접근법이 통상적으로 학계 문헌에서 활용되는 전망 기반 정책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학계의 경우에는 대부분 “평균적이고 가장 유력한 결과”에만 치중하는 반면,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은 “전체적인 확률 분포”와, “발생 확률은 낮지만 발생 시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리스크와 같은 비대칭성”을 감안한다는 것. 결국 그린스펀의 패러다임은 버냉키에게서 학계의 접근에다 리스크 관리를 접목시킨 일종의 “리스크 조정(risk adjusted) 전망 기반 패러다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버냉키의 이런 ‘종합’을 이른바 ‘베이지안 최적화’(Bayesian optimization)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학계에서 발전돼 온 ‘(제약) 최적화’에다 정책 현실의 ‘베이지안 접근’을 결합시킨 것 말이다. 블라인더와 라이스는 이를 “몇 개의 모형들을 아우르고, 나아가 계수가 변하고 심지어 구조도 수정되기도 하며, 각 모형의 확률도 매번 새로운 정보의 유입으로 업데이트되는, 대형 모형에 종속된 기대 손실 함수의 베이지안 최적화”로 풀이한다.
사실 하버드 대학의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그린스펀의 2004년 강연을 평가하며, “그린스펀이 통화정책의 리스크 관리 접근이라고 부른 것에 핵심은 베이지안 의사결정 이론이다”고 진단한 바 있다. 또 “이는 모든 가능한 ‘세상의 상태’(states of the world)를 식별하고, 각 상태에 대해 주관적인 확률을 부여함으로써 시작된다... 각각의 잠재 결과에 대해 원칙적으로, 주관적 확률을 이용해 이런 결과들의 기대 효용을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최적 정책은 최상의 기대 효용을 지닌 것이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블라인더와 라이스는 버냉키의 2004년 강연 역시 이런 시각, 즉 ‘베이지안 최적화’의 일례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블라인더와 라이스는 그린스펀의 유산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데 반대한다. 그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우선 ‘행태경제학’을 빌려 와 그린스펀의 패러다임은 이른바 “최적”(optimizing)이 아니라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하의 “만족”(satisficing)을 중시한다고 지적한다. 가령 불이 났을 때 이리저리 따지기 보다는 서둘러 “불을 끄기”(putting out fire) 위한 임기응변식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것.
둘째, “제한된 수의 리스크만이 신뢰성 있게 계량화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상당한 ‘재량’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그린스펀은 “재량은 리스크 관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맥락에서 리스크 관리는 ‘부분 과학이자 부분 예술’이라고 한다. 여기서 동원되는 모형은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y)에 불과하다. 그린스펀은 “특정 모델의 시뮬레이션에 기반해 최적으로 계산된 특정한 정책 조치는, 가장 유력한 경로를 둘러싼 각종 리스크들의 완전한 정도가 고려되고 나면 사실상 최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형(혹은 전망)의 유용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으며, 또 최근 들어 각종 모형화가 진전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아직은 그 어떤 최적화이건 정책 결정자들의 전반적인 수요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대신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로버스트성”(robustness)이다. 사실 ‘그린스펀의 적자’로 평가받는 도널드 콘 연준 이사회 부의장 역시 통화정책의 불확실성, 특히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과 관련해, “모델 전반에 걸쳐 평균 손실의 최소화”를 도모하는 이른바 “표준적인 베이지안 접근”(standard Bayesian approach)과 대조적으로, “다양한 모델에 걸쳐 최대한의 가능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로버스트 제어”(robust control) 접근법을 옹호한다. 나아가 비록 발생 확률은 낮되 심각한 역효과를 수반할 사건들에 대한 일종의 “보험 정책” 역시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을 규정짓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다.
여기서 블라인더와 라이스가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기관의 일상적인 리스크 관리 접근법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 결과에 대한 취약성을 줄일 구조 및 통제 메카니즘의 구축” 말이다. 사실 “현대 모든 금융기관들은 양적이고 질적인 측면들을 혼합시킨,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하는 공식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이런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 바로 ‘리스크 매트릭스’(risk matrix)다. “이는 상당한 행위들, 그리고 이런 행위들의 고유한 리스크들의 유형과 수준, 또 이런 행위들에 대한 리스크 관리의 적절성을 식별하고, 나아가 각각에 대한 종합적인 리스크를 판별하기 위해 사용된다. 리스크는 전형적으로 특정한 결과가 일정한 목표 혹은 신중한 기준에서 대폭, 부정적으로 이탈할 가능성으로서 이해된다. 리스크 평가에 대한 판별은 고유한 리스크의 전반적인 수준을 이런 행위에 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전반적인 견실함과 비교, 종합해 이뤄진다.” 이들은 이런 접근법이 연준의 FOMC 회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린스펀의 패러다임은 1990년대 중후반 그와 함께 세계 경제를 진두지휘했던 로버트 루빈 前재무장관의 시각과 유사하다. 실제로 루빈은 자서전에서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결정은 확률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시각이 “... 재무부에 근무한 4년 동안 래리 서머스와 앨런 그린스펀과의 아침 식사에서 토론을 거쳐 형성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오랜 세월 금융시장에서 리스크 관리를 갈고 닦아 온 루빈의 ‘확률론적 의사결정’과 역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생생한 현장에서 풍부한 실천적 경험에 기반한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간에 무슨 차이를 찾기는 힘들다.
결국 버냉키의 전망 기반 패러다임을 그린스펀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에 대한 단순한 계승, 발전이라고 간주하기는 힘들다. 특히 ▲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의 생생한 ‘현실’을 중시하며 ‘만족’과 ‘로버스트성’을 시금석으로 삼는 그린스펀의 감각적이고 전략적인 태도는 ▲ ‘전망’을 특권화하고 이와 관련된 ‘기대 관리’에 무게를 싣는 버냉키의 학구적이고 정책적인 자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물론 그린스펀의 이런 태도에 대해 ‘단기주의’ 혹은 ‘근시안주의’라는 비난 여론이 큰 것도 사실이다. 즉, 그린스펀의 전략이 매번 월스트리트 저널과 같은 금융 매체에 나온 얘기를 답습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도리어 시장을 ‘부당 전제’하는 버냉키의 접근법 역시 맹점을 지닌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자.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