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깨졌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의 거울 얘기가 아니다. 최근 미국 연준(Federal Reserve)과 금융시장, 정확하게는 국채시장과의 상호반영 관계가 깨어졌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의 수익률곡선이 몇달째 역전양상을 지속하고 있는 점이나, 장단기 시중금리가 오랜 기간 기준금리를 크게 밑도는 양상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준은 금리를 결정할 때 금융시장의 변화를 예의 주시한다. 금융시장은 연준의 정책결정과 발언을 낱낱이 분해한다. 서로 정보를 얻고,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고 말해도 채권시장이 이를 무시한 듯 금리하락으로 응수하고, 반대로 시장에서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인데 연준관계자가 아직은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자면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지금 연준과 시장은 '깨진 거울'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듯 하다. 연준은 시장의 경기와 물가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를 존중하지 않으며, 계속 시장이 자신들이 견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한다.
미국 국채시장의 지표금리인 10년물 금리는 연준이 최근 마지막으로 금리를 올린 6월 하순을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10월에는 일시 반등했던 금리는 최근들어 다시 단기저점을 테스트하려는 시도를 나타냈는 중이다.
(이 기사는 23일 17.25분 유료기사로 송고되었습니다.)
◆ 연준, 화해시도와 규율회복 시도 사이에서 동요
최근 연준은 한 차례 시장과의 화해를 시도한 바 있다. 최근 중도 강경파로 분류되는 윌리엄 풀(William Poole)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금리인상 가능성과 인하가능성이 균형을 이뤘다"며 "연준이 한 걸음 물러날테니 시장이 균형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 같은 풀 총재의 견해는 "최근 몇 주동안 인플레이션 급등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상황인식에 기초했다. 그는 최근 발표된 인플레지표에 대해서 "긍정적"이라고 논평했으나, "아직은 숲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풀 총재는 그린스펀 시대(Greenspan Era)에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 평가에서 그린스펀 다음 가는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은 버냉키의 시대다. 당연히 버냉키 의장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고 독보적인 가운데, 시장에 영향을 많이 주는 연준관계자는 마이클 모스코우(Michael Moskow)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강력한 인플레이션 강경론자로 부상한 상태다.
물론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같은 초강경론자가 있는가 하면, 제프리 래커 리치몬드 총재처럼 공식적으로 금리인상을 주장하고 있는 강경파도 있지만, 시장의 영향력 면에서는 한 수 뒤로 접어둔다.
결국 다소 온건한 강경파의 이미지를 보존하고 있고, 멤버 중 빈 자리 때문에 대신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풀 총재가 앞으로 계속 투표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연준과 시장을 화해시킬 적절한 인물인 것 같다.
버냉키 의장은 이미 시장과 한차례 난투극을 벌인 뒤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인데, 컨센서스의 수렴 여부와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필요에 따라서는 그가 직접 나서서 결정타를 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시장은 그 동안 이른바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의 존재를 믿어왔지만, 이미 지난 IT버블 붕괴를 통해 이 같은 그린스펀 풋은 이미 제거된 것이 아니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문제는 이른바 '그린스펀 풋'이 아니라면 금융시장의 붕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시장의 규율을 회복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데 있다. 그린스펀이 시작한 '점진주의'적 금리정책 대응은 버냉키로 이어졌지만 자본시장에 강력한 규율을 창출하는데 실패했다.
2년간 425bp 금리인상으로도 장기금리가 하향안정화된 것은 사실상 정책적인 실패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이 과도하게 늘어난 상황에서 낮은 높은 리스크에 낮은 투자수익률이라고 기꺼이 감수하려는 금융시장의 "쏠림" 현상도 이런 상황에 일조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질서하고 급격한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기 싫은 연준은 말을 듣지 않는 시장과 화해해야 할지 강한 규율을 확립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이 같은 연준의 동요는 내부적인 경기 및 정책판단이 컨센서스 형성, 나아가 정책 투명성과도 관련된다. 이는 '민주적인 버냉키'라는 모토하에서 실험되고 있는 또다른 연준의 변화다.
◆ FOMC, 래커 총재 불만 수용한 듯
지난 주 발표된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자면 연준은 그 어느 때보다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모양이다. 다만 경기전망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확산된 반면,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여전히 최대 우려요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뿐이 아니다. 위사록 공표 이후 연준관계자들의 시장과의 대화를 통해 계속 인플레이션 압력이 우려된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 시점은 공교롭게도 지난 10월 미국 생산자 및 소비자물가지수가 예상보다 크게 하락하거나 둔화되어 인플레이션 우려가 후퇴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금리선물시장과 채권시장은 동요했다. 내년 1/4분기, 즉 3월 FOMC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던 입장에서 후퇴했다.
하지만 시장은 최소한 내년 상반기 내에는 금리를 인하할 것이며 연말까지 두 차례 금리인하를 통해 연방기금금리가 4.75%에 이를 것이란 예상을 버리지 않았다.
연준과 채권시장의 싸움에서 득을 본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경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또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쳐대니, 당분간 금리를 동결할 것이고 나아가 내년에는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해 줄 것이란 기대까지 있다고 하니 최고치 경신행진을 이어갔다.
10월 의사록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멤버들의 견해가 제프리 래커 리치몬드 총재의 견해로 약간 기울어졌다는 사실이다.
의사록은 래커 총재가 금리동결에 반대한 이유에 대해 그가 "수 분기 내로 근원물가압력을 안정된 수준까지 확실히 하락할 수 있도록 보증하려면(help ensure)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래커 총재의 반대이유가 좀 더 간결해지면서 강도 역시 낮아졌다. 9월 회의에서 래커 총재는 "금리를 동결하는 경우보다 물가압력을 더 빠르게 하락시키려면(bringing down)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8월과 9월의 반대 이유는 좀 더 길고 장황했는데, 이 같은 표현의 길이와 어조의 차이까지도 전문가들은 놓치지 않는다.
10월에 반대의 이유가 간결하고 어조도 누그러진 것은 바로 FOMC가 래커 총재의 우려를 어느 정도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10월 의사록에서는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이 장기물가안정에 어울리는 수준보다는 높다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는데, 바로 이 지점은 래커 총재가 제기한 우려요인이었다. 결국 이 정도로 자신의 우려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래커 총재는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0월 연방은행들의 재할인율 결정회의에서는 래커 총재와 함께 금리인상 필요성을 제기했던 모스코우 총재가 다수 진영으로 가담함으로써 래커 총재가 이끄는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만 금리인상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거나 래커 총재가 금리동결을 반대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12월 12일 FOMC는 그의 마지막 투표권 행사 기회이며, 내년에는 모스코우 총재가 참여하면서 강경파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2007년 투표권을 되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항상 참여하게 되는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제외하면 마이클 모스코우 시카고 총재, 윌리엄 풀 세인트루이스 총재, 토마스 호닉 캔자스시티 총재 그리고 캐시 미네한 보스턴 연준 총재 등으로, 여전히 강경파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 수익률곡선의 행태에 대한 연준의 폄하
금융시장과 연준의 대립각은 수익률곡선에 대한 연준의 평가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2년-10년 국채금리 스프레드는 연초에 실시적으로 역전되었다가 복구되는 듯 했으나 지난 6월부터 다시 역전되기 시작, 최근까지 그 역전 폭이 심화되면서 이번 미국 경기회복 사이클 내에서는 가장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는 중이다.
하지만 주요 연준관계자들은 장기금리의 하향안정 양상이 '수수께끼'라고 말하면서도, 이 같은 양상이 경기둔화를 예측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같은 태도 혹은 평가는 바다 건너 다른 나라 중앙은행 총재의 의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으며, 해외금융시장 참가자들 역시 중요한 의미를 둔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미국 경기를 잘 체감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증시가 활황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경기침체를 예상하기 힘들다는 주된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금리시장의 비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 우려는 미국 금융시장에서 다수 의견은 아니라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연준 관계자들은 또한 "인플레이션을 잘 억제할 것이라는 신뢰의 형성"을 이 같은 금리하향 안정의 기초적인 배경으로 본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시장이 연준의 말은 듣지 않거나 고의로 무시한 채 연준의 정책결정을 예측하는 과정을 통해 돈을 버는데만 치중하고 있거나, 혹은 연준의 정책전망에 대해 과도한 낙관론을 형성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같은 시장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금융여건을 완화시킴으로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연준이 좀 더 긴축적인 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 연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번 주 케빈 와시(Kevin Warsh) 연준이사는 "채권금리만 가지고는 미국경제가 약화될 것이라고 과도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채권시장은 경기를 예상하고 있다기 보다는 다양한 이유에서(아마도 글로벌 과잉저축 혹은 과잉 유동성 때문에) 낮은 투자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돈을 빌려주는데 익숙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판단이 맞는다면 낮은 장기금리는 소비와 투자 그리고 경기를 부양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완화적인 금융여건은 연준의 금리인상 노력에 대한 상쇄요인이 된다.
물론 와시 이사는 이 같은 시장에 대한 해석이 긍정적인 신호와 잡음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연준은 상당히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발언의 진의를 가려내기는 힘들지 않다.
◆ G20의 인플레이션 경각심 호소
연준의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경고는 글로벌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연준 관계자들이 밝힌 것처럼, 최근에는 세계화 때문에 연준의 정책결정 역시 더욱 세계적인 여건 변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그 동안 세계경제가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에 종속되어왔기 때문에 연준의 통화정책은 이미 글로벌한 정책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금융시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나 쏠림 현상의 배경에는 글로벌 과잉유동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연준의 정책행보는 일국적인 변수에만 종속될 수는 없게 됐다.
특히 그 동안 세계화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감시켜주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많았으나, 지금은 이런 영향이 지나가고 오히려 글로벌 생산여력의 감소로 인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화될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G20 회담은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세계금융시장에 날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버냉키 연준의장은 세계경제의 인구학적 변모가 지니는 정책적 함의에 대해 논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같은 쟁점에 대한 논의는 역시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연준은 최근 수년간 내부적인 검토를 거쳐 미국의 인구변화와 경제활동참가율 둔화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상당히 낮아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은 FOMC 의사록을 통해 시장에 전달된 바 있다.
◆ 깨진 거울 다시 복원해야.. 새로운 기제 마련도 필요
지금 당장은 시장과의 불편한 관계를 복구하기 어려워보이지만, 연준은 계속 시장과의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최근 지표가 생각보다 약하게 나오고 있어 이것이 연준의 추세인식과 괴리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깨진 거울'은 다시 복원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일본은행(BOJ)의 10월 의사록 내용이 인상적이다. 정책심의 위원들은 최근 지표결과가 자신들의 물가추세에 대한 판단과 다소 편차를 보이고 있어 시장과 적극적으로 대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금으로서는 금리를 쉽게 움직일 수 없고 명확한 시그널을 보낼 경우 시장에 과도한 기대나 동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은 더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美 연준도 마찬가지다. 연준은 최근 지표가 예상했던 것보다 약하게 나왔지만 자신들의 추세인식을 변화시킬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는 듯 하다. 무엇보다 주택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그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까지 확립된 모습이다.
따라서 지금 경기의 급격한 둔화로 금리인하가 단행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장을 다독이면서 자신의 경기판단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연준이 12월과 1월 회의까지는 금리동결을 이어갈 것이라는데 시장이 합의한 모양이므로, 사실 연준은 지표를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벌어두었다.
다양한 편차를 수반하며 등장하게 될 거시지표들을 점검하며서 시장의 보이게 될 과도한 기대 내지 충격을 제어하려면 연준은 좀 더 향상된 커뮤니케이션 기제를 만들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이런 점에서 당장은 물가안정 목표제와 같은 컨센서스 형성이 어려운 과제보다는 전망보고서를 좀 더 자주 제출하는 방식 등 점진적인 기제의 도입이 시장과의 인식편차를 좁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의 거울 얘기가 아니다. 최근 미국 연준(Federal Reserve)과 금융시장, 정확하게는 국채시장과의 상호반영 관계가 깨어졌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의 수익률곡선이 몇달째 역전양상을 지속하고 있는 점이나, 장단기 시중금리가 오랜 기간 기준금리를 크게 밑도는 양상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준은 금리를 결정할 때 금융시장의 변화를 예의 주시한다. 금융시장은 연준의 정책결정과 발언을 낱낱이 분해한다. 서로 정보를 얻고,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고 말해도 채권시장이 이를 무시한 듯 금리하락으로 응수하고, 반대로 시장에서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인데 연준관계자가 아직은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자면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지금 연준과 시장은 '깨진 거울'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고 있는 듯 하다. 연준은 시장의 경기와 물가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를 존중하지 않으며, 계속 시장이 자신들이 견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한다.
미국 국채시장의 지표금리인 10년물 금리는 연준이 최근 마지막으로 금리를 올린 6월 하순을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10월에는 일시 반등했던 금리는 최근들어 다시 단기저점을 테스트하려는 시도를 나타냈는 중이다.
(이 기사는 23일 17.25분 유료기사로 송고되었습니다.)
◆ 연준, 화해시도와 규율회복 시도 사이에서 동요
최근 연준은 한 차례 시장과의 화해를 시도한 바 있다. 최근 중도 강경파로 분류되는 윌리엄 풀(William Poole)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금리인상 가능성과 인하가능성이 균형을 이뤘다"며 "연준이 한 걸음 물러날테니 시장이 균형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 같은 풀 총재의 견해는 "최근 몇 주동안 인플레이션 급등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상황인식에 기초했다. 그는 최근 발표된 인플레지표에 대해서 "긍정적"이라고 논평했으나, "아직은 숲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풀 총재는 그린스펀 시대(Greenspan Era)에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 평가에서 그린스펀 다음 가는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은 버냉키의 시대다. 당연히 버냉키 의장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고 독보적인 가운데, 시장에 영향을 많이 주는 연준관계자는 마이클 모스코우(Michael Moskow)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강력한 인플레이션 강경론자로 부상한 상태다.
물론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같은 초강경론자가 있는가 하면, 제프리 래커 리치몬드 총재처럼 공식적으로 금리인상을 주장하고 있는 강경파도 있지만, 시장의 영향력 면에서는 한 수 뒤로 접어둔다.
결국 다소 온건한 강경파의 이미지를 보존하고 있고, 멤버 중 빈 자리 때문에 대신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풀 총재가 앞으로 계속 투표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연준과 시장을 화해시킬 적절한 인물인 것 같다.
버냉키 의장은 이미 시장과 한차례 난투극을 벌인 뒤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인데, 컨센서스의 수렴 여부와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필요에 따라서는 그가 직접 나서서 결정타를 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시장은 그 동안 이른바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의 존재를 믿어왔지만, 이미 지난 IT버블 붕괴를 통해 이 같은 그린스펀 풋은 이미 제거된 것이 아니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문제는 이른바 '그린스펀 풋'이 아니라면 금융시장의 붕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시장의 규율을 회복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데 있다. 그린스펀이 시작한 '점진주의'적 금리정책 대응은 버냉키로 이어졌지만 자본시장에 강력한 규율을 창출하는데 실패했다.
2년간 425bp 금리인상으로도 장기금리가 하향안정화된 것은 사실상 정책적인 실패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이 과도하게 늘어난 상황에서 낮은 높은 리스크에 낮은 투자수익률이라고 기꺼이 감수하려는 금융시장의 "쏠림" 현상도 이런 상황에 일조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질서하고 급격한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하기 싫은 연준은 말을 듣지 않는 시장과 화해해야 할지 강한 규율을 확립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이 같은 연준의 동요는 내부적인 경기 및 정책판단이 컨센서스 형성, 나아가 정책 투명성과도 관련된다. 이는 '민주적인 버냉키'라는 모토하에서 실험되고 있는 또다른 연준의 변화다.
◆ FOMC, 래커 총재 불만 수용한 듯
지난 주 발표된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자면 연준은 그 어느 때보다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모양이다. 다만 경기전망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확산된 반면,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여전히 최대 우려요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뿐이 아니다. 위사록 공표 이후 연준관계자들의 시장과의 대화를 통해 계속 인플레이션 압력이 우려된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 시점은 공교롭게도 지난 10월 미국 생산자 및 소비자물가지수가 예상보다 크게 하락하거나 둔화되어 인플레이션 우려가 후퇴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금리선물시장과 채권시장은 동요했다. 내년 1/4분기, 즉 3월 FOMC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던 입장에서 후퇴했다.
하지만 시장은 최소한 내년 상반기 내에는 금리를 인하할 것이며 연말까지 두 차례 금리인하를 통해 연방기금금리가 4.75%에 이를 것이란 예상을 버리지 않았다.
연준과 채권시장의 싸움에서 득을 본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경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또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쳐대니, 당분간 금리를 동결할 것이고 나아가 내년에는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해 줄 것이란 기대까지 있다고 하니 최고치 경신행진을 이어갔다.
10월 의사록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멤버들의 견해가 제프리 래커 리치몬드 총재의 견해로 약간 기울어졌다는 사실이다.
의사록은 래커 총재가 금리동결에 반대한 이유에 대해 그가 "수 분기 내로 근원물가압력을 안정된 수준까지 확실히 하락할 수 있도록 보증하려면(help ensure)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래커 총재의 반대이유가 좀 더 간결해지면서 강도 역시 낮아졌다. 9월 회의에서 래커 총재는 "금리를 동결하는 경우보다 물가압력을 더 빠르게 하락시키려면(bringing down)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8월과 9월의 반대 이유는 좀 더 길고 장황했는데, 이 같은 표현의 길이와 어조의 차이까지도 전문가들은 놓치지 않는다.
10월에 반대의 이유가 간결하고 어조도 누그러진 것은 바로 FOMC가 래커 총재의 우려를 어느 정도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10월 의사록에서는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이 장기물가안정에 어울리는 수준보다는 높다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는데, 바로 이 지점은 래커 총재가 제기한 우려요인이었다. 결국 이 정도로 자신의 우려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래커 총재는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0월 연방은행들의 재할인율 결정회의에서는 래커 총재와 함께 금리인상 필요성을 제기했던 모스코우 총재가 다수 진영으로 가담함으로써 래커 총재가 이끄는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만 금리인상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거나 래커 총재가 금리동결을 반대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12월 12일 FOMC는 그의 마지막 투표권 행사 기회이며, 내년에는 모스코우 총재가 참여하면서 강경파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2007년 투표권을 되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항상 참여하게 되는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제외하면 마이클 모스코우 시카고 총재, 윌리엄 풀 세인트루이스 총재, 토마스 호닉 캔자스시티 총재 그리고 캐시 미네한 보스턴 연준 총재 등으로, 여전히 강경파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 수익률곡선의 행태에 대한 연준의 폄하
금융시장과 연준의 대립각은 수익률곡선에 대한 연준의 평가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2년-10년 국채금리 스프레드는 연초에 실시적으로 역전되었다가 복구되는 듯 했으나 지난 6월부터 다시 역전되기 시작, 최근까지 그 역전 폭이 심화되면서 이번 미국 경기회복 사이클 내에서는 가장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는 중이다.
하지만 주요 연준관계자들은 장기금리의 하향안정 양상이 '수수께끼'라고 말하면서도, 이 같은 양상이 경기둔화를 예측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같은 태도 혹은 평가는 바다 건너 다른 나라 중앙은행 총재의 의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으며, 해외금융시장 참가자들 역시 중요한 의미를 둔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미국 경기를 잘 체감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증시가 활황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경기침체를 예상하기 힘들다는 주된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금리시장의 비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 우려는 미국 금융시장에서 다수 의견은 아니라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연준 관계자들은 또한 "인플레이션을 잘 억제할 것이라는 신뢰의 형성"을 이 같은 금리하향 안정의 기초적인 배경으로 본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시장이 연준의 말은 듣지 않거나 고의로 무시한 채 연준의 정책결정을 예측하는 과정을 통해 돈을 버는데만 치중하고 있거나, 혹은 연준의 정책전망에 대해 과도한 낙관론을 형성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같은 시장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금융여건을 완화시킴으로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연준이 좀 더 긴축적인 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 연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번 주 케빈 와시(Kevin Warsh) 연준이사는 "채권금리만 가지고는 미국경제가 약화될 것이라고 과도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채권시장은 경기를 예상하고 있다기 보다는 다양한 이유에서(아마도 글로벌 과잉저축 혹은 과잉 유동성 때문에) 낮은 투자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돈을 빌려주는데 익숙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판단이 맞는다면 낮은 장기금리는 소비와 투자 그리고 경기를 부양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완화적인 금융여건은 연준의 금리인상 노력에 대한 상쇄요인이 된다.
물론 와시 이사는 이 같은 시장에 대한 해석이 긍정적인 신호와 잡음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연준은 상당히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발언의 진의를 가려내기는 힘들지 않다.
◆ G20의 인플레이션 경각심 호소
연준의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경고는 글로벌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연준 관계자들이 밝힌 것처럼, 최근에는 세계화 때문에 연준의 정책결정 역시 더욱 세계적인 여건 변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그 동안 세계경제가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에 종속되어왔기 때문에 연준의 통화정책은 이미 글로벌한 정책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금융시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나 쏠림 현상의 배경에는 글로벌 과잉유동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연준의 정책행보는 일국적인 변수에만 종속될 수는 없게 됐다.
특히 그 동안 세계화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감시켜주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많았으나, 지금은 이런 영향이 지나가고 오히려 글로벌 생산여력의 감소로 인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화될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G20 회담은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세계금융시장에 날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버냉키 연준의장은 세계경제의 인구학적 변모가 지니는 정책적 함의에 대해 논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같은 쟁점에 대한 논의는 역시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연준은 최근 수년간 내부적인 검토를 거쳐 미국의 인구변화와 경제활동참가율 둔화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상당히 낮아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은 FOMC 의사록을 통해 시장에 전달된 바 있다.
◆ 깨진 거울 다시 복원해야.. 새로운 기제 마련도 필요
지금 당장은 시장과의 불편한 관계를 복구하기 어려워보이지만, 연준은 계속 시장과의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최근 지표가 생각보다 약하게 나오고 있어 이것이 연준의 추세인식과 괴리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깨진 거울'은 다시 복원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일본은행(BOJ)의 10월 의사록 내용이 인상적이다. 정책심의 위원들은 최근 지표결과가 자신들의 물가추세에 대한 판단과 다소 편차를 보이고 있어 시장과 적극적으로 대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금으로서는 금리를 쉽게 움직일 수 없고 명확한 시그널을 보낼 경우 시장에 과도한 기대나 동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은 더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美 연준도 마찬가지다. 연준은 최근 지표가 예상했던 것보다 약하게 나왔지만 자신들의 추세인식을 변화시킬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는 듯 하다. 무엇보다 주택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그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까지 확립된 모습이다.
따라서 지금 경기의 급격한 둔화로 금리인하가 단행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장을 다독이면서 자신의 경기판단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연준이 12월과 1월 회의까지는 금리동결을 이어갈 것이라는데 시장이 합의한 모양이므로, 사실 연준은 지표를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벌어두었다.
다양한 편차를 수반하며 등장하게 될 거시지표들을 점검하며서 시장의 보이게 될 과도한 기대 내지 충격을 제어하려면 연준은 좀 더 향상된 커뮤니케이션 기제를 만들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이런 점에서 당장은 물가안정 목표제와 같은 컨센서스 형성이 어려운 과제보다는 전망보고서를 좀 더 자주 제출하는 방식 등 점진적인 기제의 도입이 시장과의 인식편차를 좁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