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방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장기금리의 하향 안정화라는 이해 불가능한 수수께끼에 대해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고 있는 중이다.그 중에서도 최근에는 벤 버낸키(Ben S. Bernanke) 연준리 이사가 제출한 '글로벌 과잉저축'이라는 주제가 일각에서 설득력이 있는 명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이런 방식의 설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이론'이 유지불가능한 '과잉'을 합리화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라며, 쓸데 없는 희생양 찾기에 골몰하지 말고 솔직하고 집단적인 해결책을 빨리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제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이런 주장을 제출한 전문가는 이미 글로벌 불균형의 시정이 필요하다고 노래를 불러 온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다.로치는 5일 제출한 글로벌 이코노믹포럼 보고서에서 이른바 '글로벌 저축 과잉'이란 통념이 제기되고 신속하게 시장이 이 주장을 흡수하면서 점차 증대하는 글로벌 불균형에 대한 눈감아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이 논리는 왜 시중금리가 이토록 낮은가라는 '수수께끼'에 일종의 해답달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되며, 또한 글로벌 불균형이 생각보다 그렇게 위험한 수준이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불균형에 대해 긴급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고 그는 지적했다.로치는 이런 주장의 의도가 심히 의심된다며, 아마도 이는 저축을 많이 하는 아시아 개도국을 싸잡아 비난하고, 미국인들의 과잉소비와 연준리의 저금리 정책에는 면죄부를 제공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이런 식의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며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논쟁의 핵심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이번 논쟁의 핵심은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문제다. 역사적으로나 이론상으로나 이러한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는 유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줄 알았던 경상수지 재조정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로치는 그 동안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제2의 브렌트우즈체제'라는 설명방식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소개했다.이 주장의 핵심은 '중상주의적'인 아시아는 달러블록의 연장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들이 소비 및 저축이 부족한 미국인들의 소비를 위해 자금을 제공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핌코가 이런 주장을 수용하여 장기 추세에 대한 강한 주장을 제출한 바 있기도 하다.한편 좀 더 최근에는 벤 버낸키 연준리 이사가 이 논쟁을 더 밀어붙이더니 이른바 글로벌 저축과잉이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낳은 주범이란 식으로 논의를 정리했다. 버낸키 이사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은 과도한 저축을 흡수하고 이를 점차 통합되어 가는 세계 자본시장에 흩뿌려주는 식으로 세계경제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이런 말이 듣기 좋아서인지 정책당국자들이 버낸키 이사의 주장을 옹호하고, 광범위한 투자자들의 컨센서스가 도출되는가 하면, 대중적 언론매체(최근 비즈니스위크를 보라)에서도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고 로치는 지적한다.그러나 그는 일단 경험적으로 볼 때 금융시장이 과도한 상황에 빠질 때는 항상 이런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 마련이라며, 5년전 시장에서 풍미하던 새로운 패러다임, 신경제론 등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실제로 이런 식의 새로운 이론은 최근에 나타난 것도 아니고 1920년대에도 등장한 것이 문헌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과잉저축 성립 안 돼, 문제는 미국의 과소저축과 아시아의 과잉저축그러나 글로벌 저축과잉이라는 말은 경험적인 증거로 지지되기 힘들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성립하기 힘든 개념이라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말 기준으로 글로벌 펀드흐름에서 보면 전세계 저축은 세계 GDP의 24.9% 수준이다. 저축이 2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1983년부터 2000년 사이 평균추세인 23%에 비해 불과 1.9% 포인트 증가했을 따름이다.장기평균에서 다소 이탈하기는 했어도 이를 '넘쳐난다(glut)'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저축에만 눈길을 고정하는 것은 다른 변화를 무시하는 처사다. 2004년 동안 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6%로 역시 2년째 비중이 증가했고, 글로벌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불과 0.3% 포인트 작을 따름이다.이런 통계 자료를 보면서 '과잉'이란 표현이 가당하겠는가? 거시이론에서는 저축이란 항상 투자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등식은 거의 오늘 날에도 별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과잉 내지 지나친 규모란 표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으로 금리하락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수도 없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해서도 안 된다.애석하게도 문제는 좀 더 복잡한 세부적인 수준에 존재한다. 즉 글로벌 저축과 투자의 구성의 변화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의 변화를 추동하는 두 개의 주요한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저축률 급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개발도상국가들의 저축의 대규모증가이다. IMF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총저축률은 2004년 말 기준으로 GDP의 13.6%로 떨어졌고, 이는 지난 1983년부터 2000년 사이 평균치인 16.9%보다 3.3% 포인트 감소를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의 저축률은2004년 GDP의 31.5%로 1983년~2000년 기간 추세선 25%보다 약 6.5%포인트 증가한 것이다.중국의 급격한 저축 증대를 반영,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은 너도 나도 저축장려에 나서 총 저축률이 약 38.2%로 1983년~2000년 기간 평균인 28.8%보다 크게 높아졌다.이러한 유형은 저축과 투자 사이의 불균형의 거울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미국의 총 투자는 총저축을 GDP대비 약 6.0%정도 초과한 반면,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은 투자보다 저축이 2.7% 더 많았다.어떤 나라든 저축과 투자 사이의 불균형은 경상수지 포지션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저축 부족은 경상수지 적자로, 반대로 저축잉여는 경상수지 흑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과, 수지 흑자인 나라와 반대로 수치가 적자인 나라들 사이에 저축 및 교역 마찰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균형을 조기에 시정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늦지 않다는 것이 자신의 지론이라고 한다.◆ 글로벌 과잉저축 논의 숨은 의도는 뭔가?한편 로치는 자신의 견해로 볼 때는 이상한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마치 세계의 최대 경제이자 대규모 적자를 양산하는 미국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한다. 버낸키 이사는 저축과잉이란 단어를 만들어 냄으로써 미국의 저축부족과 경상수지 적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슬쩍 풀어버렸다. 특히 그는 1990년대 말 재정수지 흑자달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된 사실을 가리키며, 미국재정수지 적자와 대외수지 적자 사이의 관계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에서 버낸키는 자신이 사례로든 기간 동안 미국인들의 저축률이 강력한 주식시장 버블 효과로 인해 4%대에서 1% 대로 하락한 점을 간단하게 무시해버렸다.동일한 맥락에서 버낸키는 부동산가격의 상승에 따른 '부(富)의 효과'가 소득에 기반한 저축을 대체하고 있다는 우려되는 추세 또한 기각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이러한 자산 효과를 거꾸로 뒤집어서 글로벌 과잉저축과 이에 따른 투자수익률 추구의 "내생적" 부산물로 이를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이런 식의 논리를 다른 말로 하자면, 미국의 자산버블은 내수시장과 소비자들이 과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 무고한 희생양과 같다는 주장이 나온다. 로치는 새로운 이론의 선봉장인 벤 버낸키가 최근까지 연준리 이사였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의아하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견해로 본다면, 현재 미국의 자산시장 버블을 형성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이 다름 아닌 연준리이기 때문이다.결국 이런 의구심을 풀어보면, 글로벌 과잉저축이라는 명제가 지난 또 다른 의도가 드러난다고 한다. 즉 미국 중앙은행의 역할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 말이다. 1990년대 말 주식시장 버블이 진행될 때에 연준리는 버블 붕괴에 대한 사후대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에는 미국인들은 부족한 소득을 자산가격의 상승을 통한 부의 효과로 메우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근래 들어 최대규모의 과잉소비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연준리는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이러한 자산시장의 과도한 상승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인들의 흥청망청 소비를 뒷받침하고 있는 중이다.그런데 버낸키 이사는 논의를 과잉 저축에만 맞춤으로써 사상 유례없는 글로벌 불균형을 창출하는데 기여한 연준리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셈이라고 한다.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연준리는 과도한 부동산 시장과 잠재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부채주기의 붕괴가 될 새로운 버블의 발생 압력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합리적 핵심은 살리고, 실질적 해결책 모색이 중요로치는 이상이 논의가 글로벌 과잉저축 논지의 가장 중요한 측면, 즉 아시아와 유럽 일부에서 과잉저축이 존재한다는 점까지 기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인다. 자신이 보기에 이는 일본이나 중국, 한국 그리고 독일 등 내수소비의 부진에 따라 발생한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해석도 곁들이고 있다. 이런 양상이 도출된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지속적인 구조조정(일본), 개혁(중국) 혹은 여전히 경직된 일부 경제의 구조조정 및 개혁 위협에 따른 일자리의 부족과 소득안정성의 결여로 본다.하지만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더욱 큰 부담을 안겨준다. 즉 경상수지 흑자 국가들에서 구조조정 및 개혁이 지속되면, 이들의 과도한 저축은 결국 흡수되고 다시 한번 내수에 중점을 둔 정책이 구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현재의 자산가격과 달러환율 가지고는 방대한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결국 글로벌 과잉저축이라는 분석은 암묵적으로 또 다른 희생양 찾기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는 과도하게 저축을 일삼는(?) 다른 세계경제가 비난되고 미국인들의 소비는 무고하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글로벌 불균형 창출에 책임이 없다고 선언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은 스스로의 '과잉' 내지 '과도함'을 직시하지 못하면 자신과 세계경제 전반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로치는 자신이 이전부터 글로벌 불균형이 긴급한 해결과제이며 또한 공동의 책임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며, 세계경제가 좀 더 빨리 집단적인 해결책을 도출하여야만 파국적인 종말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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