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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아키히토’...평화를 사랑했던 일본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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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과오와 마주섰던 평화주의자
재위 기간 동안 침략지 돌며 과거 반성
‘살아있는 일본의 양심’으로 평가받기도

[서울=뉴스핌] 오영상 전문기자 = 일본의 제125대 덴노(天皇)인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4월 30일 퇴위한다. 일왕이 생전 퇴위하는 것은 에도(江戸)시대 후기였던 1817년 고카쿠(光格) 덴노 이후 202년 만에 처음이다. 일왕퇴위특례법에 따라 왕위는 장남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에게 세습되고, 자신은 상황(上皇)이 된다.

일본에 대해 반감이 큰 한국인들은 일왕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그는 ‘침략 전쟁’이라는 일본의 과오와 정면으로 맞서며 평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았던 인물이다.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살아있는 일본의 양심’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지난 2월 24일 도쿄의 국립극장에서 열린 마지막 재위 기념행사인 ‘재위 30주년 기념식’에서도 “평화를 희구하는 국민들의 강한 의지로 근현대에서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하지 않는 시대를 가졌다”고 자신의 재위 기간을 회고했다.

30일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 [사진=로이터 뉴스핌]

13살 때 신년 목표로 평화국가 건설적어

아키히토는 1933년 12월 23일 쇼와(昭和) 덴노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2남 5녀 중 다섯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패전 이후 서양의 사상과 생활 방식을 배우게 하려는 부친의 의향에 따라 퀘이커(개신교의 한 교파) 교도인 미국인 가정교사 엘리자베스 바이닝에게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

이를 통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반성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1945년 12살 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쿄(東京)를 보면서 “평화를 다짐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새해 첫 날 신년 목표를 붓글씨로 쓰는 ‘가키하지메(書き始め)’라는 풍습이 있는데, 패전 다음해인 1946년 아키히토가 쓴 문구는 ‘평화국가 건설’이었다.

지난 2월 24일 일본 도쿄의 국립극장에서 열린 '재위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는 결혼도 남달랐다. 왕족 내지는 화족(근현대 시대 일본의 귀족 계급)과 결혼했던 일본 왕실의 전통을 깨고 평민 신분의 쇼다 미치코(正田美智子)와 1959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실 미치코 왕비도 신분이 평민일 뿐이지 친가는 아시아 최대의 제분회사인 닛신(日淸)제분을 갖고 있는 재벌이며, 외가는 백작 지위를 받은 화족이었다.

또한 미치코는 젊은 시절 뛰어난 미모는 물론이고 공부, 운동, 음악, 미술 등 못 하는 것이 없는 최고의 재원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테니스가 계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평민 출신 왕비에 대한 왕실의 냉대와 무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지만, 두 사람의 금슬은 매우 좋았으며 나루히토, 후미히토(文仁), 사야코(清子)의 2남 1녀를 두었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자녀들도 모두 평민과 결혼했다.

지난 1958년 연애 시절 테니스 클럽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 [사진=로이터 뉴스핌]

침략지 돌며 일본의 과오 반성

1989년 1월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하면서 일왕에 즉위한다. 그는 일본 역사상 두 번째로 고령인 56세의 나이에 일왕에 올랐지만, 30년 재위 기간 동안 ‘전쟁’이라는 일본의 과오를 수습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일본이 공격했던 아시아 지역을 하나하나 방문했으며, 특히 현지에 있는 일본인 병사 위령비뿐만 아니라 상대국 위령비에도 참배하며 큰 울림을 전해줬다. 일본의 잘못을 사과하고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긴 행위라는 평가들이 제기됐다.

1992년 아키히토는 근대 일본 왕실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일본 내 우파 세력은 방중에 반발했지만, 그는 중국에서 “양국 관계의 오랜 세월에 걸친 역사에 있어 우리나라가 중국 국민에게 크나큰 고난을 준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 이것은 제가 깊은 슬픔을 느끼는 부분이다”라며 “우리 국민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깊은 반성과 평화국가가 되겠다는 굳은 결의를 했다”고 말했다.

2005년에는 태평양전쟁 침략 지역 중 하나인 사이판을 방문했다. 그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령하고 싶다는 것을 강하게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하케타 신고(羽毛田信吾) 전 궁내청 장관은 “외국 방문은 기본적으로 요청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 건에 대해서는 폐하의 매우 강한 희망이 있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례적인 외국 방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6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침략했던 사이판을 찾아 묵념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 [사진=로이터 뉴스핌]

국민께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

장남 나루히토와 함께 한국에도 방문하고자 했으나 일본 보수층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1990년 일본을 찾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통석의 염’이란 표현을 쓰며 과거사 문제를 사과했다.

노 대통령과의 만찬회에서 아키히토는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그 불행한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느꼈던 고통을 생각하며 나는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통석의 염은 사전적 의미를 찾기는 어렵지만 당시 우리는 ‘유감’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또 1998년 방일한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며 다시 한 번 사과했다. 2001년에는 “일본 고대서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 후손이라고 기록돼 있다.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며, 일왕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왕실에 백제의 피가 흐른다고 밝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990년 5월 일본 왕실 연회에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오른쪽). [사진=로이터 뉴스핌]

야스쿠니 신사에 한 번도 참배 안 해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 우익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또 일본 군(軍) 원수 직을 마다한 유일한 일왕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도한 ‘주권 회복의 날’ 행사에 참석했지만, 평화헌법을 유지하려는 아키히토는 행사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5년 8월 15일 종전 70주년 전몰자 추모식에서의 발언을 보면 두 사람의 과거사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짐작할 수 있다. 아키히토는 “과거사를 깊이 반성한다”고 했고, 아베는 “전쟁과 관계없는 우리들의 자녀와 손자,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게 사죄를 계속하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일왕은 신임 총리가 취임하면 황궁에 초대해 만찬을 베푸는 전통이 있는데, 아베 총리는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다.

지난 2월 24일 일본 도쿄의 국립극장에서 열린 아키히토(明仁) 일왕 재위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만세를 외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아키히토는 2015년 82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해마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증가하고 있지만, 과거의 전쟁을 충분히 알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15일 임기 마지막 전몰자 추모식에서는 “전쟁 후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평화로운 세월을 되돌아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간곡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전범’의 아들로 태어나 재위 기간 내내 그 원죄를 씻기 위해 애썼던 아키히토의 퇴위가 새삼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퇴위 이후에도 그가 ‘평화의 수호자’로서 ‘살아있는 양심’으로서 자신의 신념을 이어갈지 지켜 볼만하다.

퇴위를 20여 일 앞둔 지난 11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황궁에 마련된 간이 논에 볍씨를 뿌리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goldendo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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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업무보고 논란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청와대 영빈관에서 5일 열린 외교·안보 분야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과 업무보고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정 장관의 발언 중에는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실 관계에 맞지 않은 설명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신중을 기해 달라고 경고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상주의적 희망에 근거한 비현실적 구상'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그동안 정 장관의 대북 정책 관련 발언이 물의를 빚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대통령과 유관 부처 장관이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장관의 무리한 대북 접근법과 월권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2026.07.23 ◆통일부 장관 권한 넘어선 주장 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을 설명하면서 이재명 정부 2년차 핵심 과제로 상호 존중·평화적 갈등 해결·핵 없는 한반도 등 3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대결과 혐오의 언어는 멈춰야 한다"면서 주적 용어 대체를 주장했다. 지난 25년간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구도는 이미 무너졌다고도 했다. 또 "현 시점에서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 힘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또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논의에 착수하겠다"면서 "북·미 정상회담 견인과 함께 4자 대화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구상에 대부분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많이 조심하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는 "표현에 꼬투리가 잡혀 정쟁으로 휘몰아 들어가면 원래 하고자 했던 데에서 오히려 나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냐, 결론적으로 약간의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에서 정 장관이 언급한 '4자 회담'에 대해 "이상주의에 근거한 어떤 희망이라 하더라도 그건 아직 조율되지 않은 방법"이라며 "여러분들께서 디스카운트해 주시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언급하며 "정부 차원에서 (참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조 장관은 "그것은 외교부의 몫"이라며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잘랐다. 정 장관이 이날 소개한 대북 구상과 설명은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주적 표현 대체와 국호 사용, 9·19 군사합의 복원, 4자회담 추진 등은 통일부 장관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어서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업무보고를 듣고 난 뒤 "여기 업무보고에 발표했다고 승인난 건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 장관의 발언 내용은 대부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 아닌 정 장관의 개인적 생각에 가깝다"며 "안보 관련 부처 장관이 정부의 공식 정책이 아닌 사안을 추진하겠다고 업무보고를 하고 대통령의 면전에서 '국군통수권자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 외교 국방 등 외교 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6.08.05 ◆시대착오적 접근, 대북 인식 오류 더욱 문제인 것은 정 장관의 이같은 주장이 현 시점에서 이미 참고가 될 수 없는 과거의 경험 또는 사실과 다른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이 주장하는 구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과 한반도 및 국제 정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이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법을 호도하고 있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모든 핵 협상에서 한국이나 미국은 북한에 선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한·미가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시설 동결과 중유 제공의 교환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모든 단계에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적용됐다. 대북 협상에 관여했던 한 전직 관료는 "모든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한·미가 제공하는 상응조치를 어떻게 정교하게 배열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면서 "정 장관의 발언은 지금까지 한·미가 북한에 먼저 핵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정책을 고수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지난 25년간의 CVID 구도가 무너졌다"고 말한 것도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어떤 명칭을 붙이든 핵을 제거한 뒤 이를 검증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는 것은 비핵화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기본적 절차"라며 "CVID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검증도 하지 않고 언제든 되돌릴 수 있도록 합의하자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조현 외교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08.05 gdlee@newspim.com ◆안보 리스크 키우는 통일부 장관 정 장관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와 외교부를 제치고 통일부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단독 질주를 거듭해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을 변형한 '평화적 두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외교부가 미국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한반도 정책과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며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파탄 원인이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는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남북대화 재개에만 초점을 맞춘 비현실적 내용으로 논란을 빚었다. 정부 내 조율도 거치지 않고 독자 대북제재인 5·24 조치를 해제하고 9·19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 4월에는 평안북도 구성시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 발언을 계기로 한국과 대북정보 공유를 제한했다. 이 조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이 이처럼 정부의 공식 결정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부 정책인 것처럼 주장하며 좌충우돌하는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 북한 문제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조급증과 자신의 존재감 과시 욕구가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들어 "정 장관이 아직도 이 대통령을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를 오래 다뤘던 전직 관료 출신의 한 전문가는 "정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의 언행은 잘못된 현실 인식에 따른 독단과 앞서 가기, 월권 등으로 점철돼 있다"면서 "통일부 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스스로 안보 리스크를 키우는 역할만 했다"고 비판했다. opento@newspim.com 2026-08-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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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경상수지 최대 흑자 [서울=뉴스핌] 박가연 기자 = 지난 6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품목 수출 호조로 월간 상품수출이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선 영향이다.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6년 6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 6월 경상수지는 497억3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전월(386억1000만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한 것은 상품수지다. 6월 상품수지는 478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를 다시 썼다. 국제수지 기준 상품수출은 1123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4.5% 증가하며 월간 기준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상품수입은 644억8000만달러로 38.6% 늘었다. 통관 기준으로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96.9% 급증했고 컴퓨터·주변기기(SSD)는 282.7% 증가했다. IT 품목 수출은 160.4% 늘었으며 비IT 품목도 ▲석유제품(47.5%) ▲화공품(18.6%) ▲철강제품(17.9%) ▲승용차(6.1%) 등을 중심으로 18.6% 증가했다. 통관 기준 수입은 ▲원자재(30.5%) ▲자본재(35.3%) ▲소비재(16.4%)가 모두 늘었다. 서비스수지는 12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전월(-10억90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여행수지는 외국인 입국자 증가와 유류할증료 인상 등에 따른 출국자 감소로 4억4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식재산권사용료수지는 전월 흑자에서 4억4000만달러 적자로 전환됐다.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을 중심으로 32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해 전월(21억7000만달러)보다 흑자 폭이 확대됐다. 배당소득수지는 배당수입이 늘어난 데다 전월 분기배당에 따른 기저효과로 배당지급이 줄면서 25억6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금융계정 순자산은 6월 중 467억1000만달러 증가해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였던 올해 3월(369억9000만달러)을 넘어선 것이다. 직접투자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80억1000만달러, 외국인의 국내투자가 46억3000만달러 각각 증가했다. 증권투자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이어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는 차익실현 매도 등의 영향으로 316억1000만달러 감소하며 전월(-310억5000만달러)에 이어 역대 최대 순매도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는 세계국채지수(WGBI) 자금 유입에도 분기 말 만기도래 영향으로 증가 폭이 줄어든 5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는 주식을 중심으로 35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eoyn2@newspim.com 2026-08-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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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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