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중국 주룽지 전 총리가 12일 98세로 별세했다
- 그는 시장경제 전환과 WTO 가입을 이끈 개혁가였다
- 인플레 억제·위안화 방어로 경제 개방을 주도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WTO가입성사 고속성장 기초 닦아
아시아 외환난 때 경제안정 지켜
상하이 증시 설립 추진 강력 지지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8월 12일 오전 11시6분 향년 98세로 별세한 중국의 주룽지(朱鎔基, 주용기) 전 국무원 총리는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개혁가였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은 그를 "오랜 기간 검증된 충직한 공산주의 전사이자 뛰어난 혁명가·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였다"고 공식 평가했다.
고 주룽지 전 국무원 총리는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오른 뒤 1998년 총리에 취임해 2003년까지 중국 경제 발전과 체제 전환을 주도했다. '철면 총리', '경제 황제'라는 별명답게 강력한 추진력으로 금융 체제를 바꾸고 계획경제를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는데 뛰어나 수완을 발휘했다.
인플레이션 24%→3%, 강력한 거시경제 조정
주룽지 전총리는 한때 중국인민은행장을 겸임하며 금융·통화정책을 직접 지휘했다. 경제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펼쳐 물가상승률을 24% 수준에서 3%까지 낮추고 이른바 '연착륙'을 이끌었다.
총리 취임 후에는 국유기업 개혁과 재정·조세제도 개편, 분세제 등을 추진했다.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약 3000만 명의 노동자가 실직하면서 사회적 충격과 논란도 적지 않았다.
아시아 외환위기때 위안화 방어, WTO 가입 성사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는 경제성장률 8%를 유지한다는 '바오바(保八)' 목표를 내걸고 수출 확대에 주력했다. 주룽지는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고 버티면서 중국 경제의 안정성을 지켰다. 이는 당시 아시아 외환난 확산을 막는데 일정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주룽지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히는 것은 중국의 WTO 가입이다. 그는 미국 등과의 험난한 협상을 직접 주도해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성사시키며 중국 경제의 대외개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WTO가입은 무역확대 경제성장 기술선진화로 오늘날 중국 경제 굴기의 초석이 됐다.

톈안먼 사태땐 군 투입 거부, 상하이증시 설립 추진
주룽지의 정치적 부상은 상하이에서 시작됐다. 1989년 6.4 톈안먼 사태 당시 상하이의 행정을 책임지면서 군을 투입한 계엄 대신 노동자 질서유지대를 활용해 혼란을 수습했다. 그는 "상하이에는 508만 명의 노동자가 있는데 군 통제가 왜 필요한가"라며 군 투입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상하이시 당서기 겸 시장으로서 푸둥 개발·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외자 유치와 상하이증권거래소 설립 등을 밀어붙였다. 개혁개방을 둘러싼 당내 보수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덩샤오핑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개혁 노선을 추진했다. 결국 덩샤오핑의 발탁으로 베이징에 진출해 부총리를 거쳐 총리가 됐다.
환상 호흡, 장쩌민과 10여년 '장주 체제'
주룽지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상하이 시절부터 베이징 중앙정부까지 10여년간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경제개혁 협력은 이른바 '장주 체제'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주룽지는 경제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개혁 과정에서 장쩌민의 강력한 지지가 결정적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홍콩 명보는 주룽지 전 총리가 홍콩에 대한 관심도 각별해 생전 네 차례나 홍콩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위안화 평가절하를 막고 홍콩의 국제금융센터 기능과 금융시장 안정을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홍콩 행정수반 리카창은 그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고 홍콩 경제·사회 발전에 대한 지원에 감사를 전했다.
직설과 유머의 정치인 "지뢰밭이라도 전진한다"
주룽지는 강력한 개혁가이면서도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98년 총리 취임 기자회견에서 "앞길이 지뢰밭이라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며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반부패 투쟁 때는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며 "그중 하나는 내 것"이라고 말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주룽지는 대부분 공산당 지도자가 그렇듯 실사구시형 지도자였다. 홍콩 명보는 주 전 총리가 국가회계학원에 '거짓 장부를 만들지 말라'는 뜻을 담아 '불부가장(不做假賬)' 문구를 써서 내렸다고 전했다. 자신을 '경제 황제'라고 부르는 평가에는 "나는 경제 업무를 비교적 잘 알 뿐이다"고 말했고, '주룽지 경제학'이라는 표현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주룽지는 2003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다. 2020년 병원에서 생일을 보내는 모습이 마지막 공개 근황으로 알려졌으며, 수년간 입원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별세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전환을 이끈 또한명의 걸출한 경제 지도자가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