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국립현대미술관이 6일 덕수궁서 이대원 첫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했다
- 전시는 이대원의 밝은 화풍이 전통 연구와 끊임없는 실험의 성취임을 조명했다
- 유화 120여 점과 자료를 통해 70년 화업과 한국적 회화세계를 소개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자수 나전 목기 등 한국공예와 동양화법을 서양화로 구현한 회화세계 재조명
-11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 1~4부로 회고전 개최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우리는 이대원 화백을 너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밝고 환한 그림은 낙천적 기질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관찰과 배움, 절제를 거쳐 이룬 조형적 성취였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이대원의 대규모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를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거쳐 선보인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같은 말로 전시 기획의도를 압축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오랫동안 '과수원 화가' '색채의 마법사' '팔자 좋은 화가' 같은 수식어로 운위되며 밝고 따뜻한 그림을 그려온 이대원 화백(1921~2005). 하지만 그의 화사한 그림은 끈질긴 모색과 실험의 산물이었음을 우리 모두가 간과해왔다. 그래서 중요한 작가일수록 본격적인 미술관 전시가 꼭 필요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은 화가 중 하나인 이대원의 대규모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를 지난 8월 6일 개막해 오는 11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본격젹인 미술관 회고전은 처음이다.
이대원(李大源)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과수원과 산과 담, 연못과 들판을 점과 선으로 채운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화단의 신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라는 수식어도 늘 따라다녔다. 이대원 화폭의 밝음은 작가의 타고난 낙천성으로 오랫동안 해석돼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작가의 초기작부터 말년작까지 망라된 이번 전시를 보면 '팔자가 좋은 화가'라기 보다는, 누구보다 도전하고 끊임없이 분투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폴 세잔이 남불의 생트빅트와르 산을 수없이 그리고 또 그리며 회화적 실험을 거듭한 끝에 세계 현대미술의 장을 활짝 열어젖혔듯이대원 역시 같은 장소를 수십 년간 바라보며 자신만의 준법과 리듬을 마침내 완성한 것이다.

전시 제목인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1922-1993) 박사의 그림평에서 차용했다. 그의 작품에서 슬픔이 보이지 않는 것은 슬픔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생전에 그는 대학교수, 총장, 화랑경영자, 협회장 등 많은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는 한편으로, 파주의 농원에서는 그 모든 이름들을 내려놓고 '선물'같은 대자연을 온전히 화폭에 옮기기 위해 치열하게 작업했다.
이대원의 첫 미술관 회고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생동감 넘치고 명랑한 색채가 작가의 기질 때문이라는 기존 해석을 뛰어넘는다. 배원정 학예사는 "이대원은 한국의 전통공예와 동양화의 조형원리를 일평생 연구하고, 화면 안에서 끈질기게 변용하며 회화적 성취를 이뤘다. 전시는 이를 추적하고 확인해보는 자리"라고 했다. 자수의 색실, 나전칠기의 빛, 화각의 오묘한 색, 동양화의 운필과 준법을 자신의 회화 속에 현대적 조형언어로 구축한 그 오리지날리티, 독자성에 촛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는 이대원의 학창시절 초기 작품부터 말년의 대형 '농원' 연작에 이르기까지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 작가수집 고미술품 및 자료를 통해 장장 70년에 거친 그의 화업을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작가로서의 이대원은 당시 화단을 휩쓸던 앵포르멜 등 서구 미술의 유행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조선의 전통공예의 색과 빛, 동양화의 기법을 유화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내는데 골몰했다. 색점과 색선, 색면을 거듭 쌓아올리며 '한국적인 현대 회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평생 탐구한 화가였던 이대원은 문화적 지식인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계의 기반도 만들었다.
이대원이 1959년부터 8년간 서울 을지로에서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척박한 국내 화랑가의 기틀을 다졌던 것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5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박수근, 장욱진, 김기창, 김환기, 유영국 등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대학장과 대학총장으로 미술교육의 토대를 다졌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외교통상부 문화홍보대사 등을 맡아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일에 힘썼다.
이처럼 자신의 작품활동 한켠으로 전시와 교육, 문화행정과 문화외교를 아우르며 한국 미술계 여러 영역을 연결했고, 공공의 가치를 창작만큼이나 중요한 책무로 여겼다. 결국 그는 매혹적인 작품을 남긴 풍경화가인 동시에, 삶과 예술이 하나였던 지식인 화가였던 것이다. 또 전통 문인의 정신을 현대 회화 속에서 실천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이번 회고전을 추진하며 국립현대미술관은 외교부를 통해 어렵게 이대원의 1986년작 '담'을 미국서 공수해왔다. 그리곤 미술관 로비 전면에 걸었다. 작가가 주미국 대한민국대사관을 위해 제작한 작품 '담'은 가로 5m가 넘는 회화로, 국내 공개는 처음이다. '가을산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의 설치상황을 살피러 이대원은 1986년 워싱턴DC를 직접 방문했을 만큼 각별히 여겼다. 외교부로서도 소장 작품 중 단연 대표작이다.
'담'은 낮게 이어지는 흰 담과 그 너머 붉게 물든 가을나무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화면은 원근의 깊이가 아니라 색선 색점 색면의 촘촘한 병치로 짜여졌다. 담을 이른 흰 면은 무수한 색점이 쌓여 이룬 빛이다. 돌무늬와 풀숲의 색점은 전통 회화의 태점을, 여러 빛깔로 갈라진 나무줄기의 색면은 자수의 수실과 나전칠기의 끊음질을 떠올리게 한다. 2002~2004년 의교통상부 문화홍보 외교사절을 지낸 이대원의 그림은 해외공관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덕수궁 1층 첫 전시실에 들어서면 '배우되 갇히지 않다'라는 타이틀 아래 작가의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초기작들이 관객을 맞는다. 청운공립보통학교 때 처음 유화를 접한 그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에서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1897-1945)를 만나 서양미술과 조선공예를 함께 배웠다. 일찌기 중고교시절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 서양화부에서 모두 입선하는 등 이대원은 회화와 공예 양쪽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1부에서는 이대원, 장욱진, 유영국을 가르친 사토 구니오의 희귀 회화 '설정(雪庭)'(연도미상)도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모더니즘 세례를 받되 독자적 세계를 견지한 화가이자 교사인 사토 구니오의 작품이 국내서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조선풍경, 민예품 등을 그린 사토 구니오의 드로잉들과 함께 이대원의 초기작을 나란히 선보여 맑은 색면과 단순화된 형태, 공예에 대한 관심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어떻게 싹트고 이어졌는지 살펴본다.
이대원이 학창시절부터 역량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북한산'(1938)도 1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간 '가을 산'으로 소개되었던 이 작품은 흙산의 붉음과 수목의 초록을 강하게 대비시키고, 빛을 머금은 황록의 점을 곳곳에 찍어냄으로써 색채가 형태에 종속되지 않고 화면을 이끄는 독립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했다. 이렇듯 색의 병치와 반복, 평면적 구성에 대한 관심은 이후 이어질 작가의 조형적 특성이 학생시절부터 형성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대원은 1957년과 1958년 미국과 유럽의 미술현장을 경험했다. 귀국 후 서구 현대미술을 답습하기 보다 자신만의 회화적 가능성을 찾는데 더 열중했다. 당시 작품들은 서구 모더니즘을 직접 마주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이를 뛰어넘고자 한 의지가 넘실댄다.
2부 '이어가되 휩쓸리지 않다'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대원이 국내 화단의 도도한 흐름이었던 추상미술 유행에 편입되지 않고, 한국적인 조형세계를 모색한 과정을 짚어낸다. 또 1959년부터 약 8년간 이대원이 운영했던 반도화랑 운영과 관련된 희귀자료를 통해 이대원이 화가이자 경영자로서 한국미술을 어떻게 매개했는지 살펴봄과 동시에, 작가가 소장했던 자수·나전·화각·목가구, 변관식의 산수화 등을 작가의 회화와 나란히 전시한다. 이를 통해 전통공예와 동양화의 원리가 그의 화면에서 밀도있게 재창조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2부에서는 초중기 걸작들이 다수 나왔는데 1964년작 '전설의 마을'은 그 중에서도 백미다. 십장생도의 길상 도상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전통자수 병풍의 한 폭을 멋드러진 회화로 옮겨놓은 듯하다. 산과 나무, 학과 사슴 등의 소재는 화면 위에 문양처럼 과감하게 펼쳐지고, 붉은 색과 청색, 녹색과 황색의 선명한 색채는 서로 섞이지 않은채 또렷하게 병치돼 있다. 형태를 굵은 선으로 구획하고, 내부를 크고 작은 색면으로 채운 시도 역시 색실로 윤곽과 면을 촘촘히 수놓는 자수의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기 작업에 대해 미술평론가인 아서 J.맥태거트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점을 함께 소화한 작가"로 평가하며 한국적 소재를 현대적인 회화 형식으로 구성한 점을 높이 샀다.
이 시기 또다른 대표작인 '복숭아밭'(1964)은 찬란하게 빛나는 조선시대 나전칠기 함들과 나란히 전시돼 눈길을 끈다. 화면 한 가득 주홍빛 복숭아나무들이 하늘 아래 자리잡고, 아래에 어린나무들이 늘어선 녹색들판으로 이뤄진 삼단구도의 이 그림은 '툭툭' 짧게 끊어찍은 붓질이 나전칠기의 전통기법을 연상케 해 흥미롭다.

이어 3부 '쌓아올리니 자유롭다'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색점·색선·색면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 고향 파주의 농원에 작업실을 마련한 작가는 그곳의 과일나무와 연못, 산과 들을 평생 반복해 그렸는데 똑같은 그림이 한점도 없다. 같은 장소를 수십년 간 바라보며 작업했음에도 유사한 그림이 없다는 것은 경이로울 정도다. 이 무렵 이대원은 전통 회화의 준법과 수지법, 태점과 적묵법을 보다 깊이 연구하고 이를 유화의 붓질 안에서 새롭게 변용했다.
이 파트에서는 파주 농원을 담은 '농원'(1979,1987), '산'(1978), '나무'(1983) 등 전성기 대표작들이 관객의 발길을 붙든다. 작품들은 무수한 색점과 색선으로 이뤄져 흔히 프랑스의 점묘파 화가 쇠라의 점묘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쇠라의 점이 멀리서 시각적으로 섞여 하나의 색으로 보인다면 이대원의 점은 멀리서도 제 색을 지키는 것이 차이점이다. 짙은 바탕 위에 점과 선을 거듭 쌓아 화면에 깊이를 내는 동양화의 적묵법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이대원의 작품은 '산수에서 풍경으로'가 아니라 '풍경에서 다시 산수로' 나아가고 있다.

마지막 파트인 4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번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가장 오래 머물며 출품작들에 푹 빠져 탄사를 터뜨리게 하는 공간이다. 미술관측은 가로로 긴 대형 작품 아래에, 작품의 색점과 물감이 빛을 받아 메아리처럼 반사되는 흑경같은 반사면을 까는 등 공간디자인에 공력을 쏟았다. 이로써 이대원이 평생 축적한 색과 빛의 언어가 대형 회화로 완성되는 말년의 작품들이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대원의 회화는 말년에 이르러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몰입해 나아갔다. 가로로 3m, 5m 때로는 7m로 길게 펼쳐진 대작들 앞에서 관람객은 과수원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농원 안으로 완전히 들어선 사람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공간디자이너는 관람객의 시선이 화려하게 꽃을 틔운 나무와 연못, 그 열매와 꽃 사이를 옮겨가며 화면 속을 거니는 동아시아 산수화의 오랜 보기 방식을 경험하도록 했다. 말년의 이대원이 혼신을 다해 그린 '과수원' '사계절'연작, '인왕산' 등은 풍경에서 산수로 훨훨 날아오른 빛나는 회화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국 미술을 전시하고, 가르치며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반을 다진 문화적 지식인이자, 작가로서는 한국적인 현대 회화의 가능성을 평생에 걸쳐 탐구한 이대원은 사실 화가로서 그 독자성과 고유한 세계가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회고전은 이대원의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평가하고, 그가 새겨놓은 한국 현대회화의 중요한 성취를 다시 바라보는 자리라는 점에서 놓쳐선 안될 전시다. 오는 11월 8일까지 이어지는 이대원 회고전은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관람가능하다. 입장료는 2000원. 대학생및 만24세 미만과 만65세 이상은 무료.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art2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