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정부가 28일 임차보증금을 공적기구에 예치해 운용·반환하는 전세안심신탁 도입을 9월 사업안 마련 목표로 추진했다.
- 안심신탁은 보증금을 공공이 보관해 사전 보호를 강화하지만 임대인의 자금 활용과 수익률 한계로 전세 공급 위축과 월세 전환 우려가 제기됐다.
- 전문가들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보증금 분리 관리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전면 도입 땐 시장 충격이 커 단계적 적용 등 신중한 제도 정착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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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전환·전세 매물 감소 우려는 과제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정부가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에게 직접 지급하지 않고 공적기구가 보관·운용하는 전세안심신탁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계약 단계부터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임대인의 자금 활용이 제한돼 전세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전세금 공공이 보관…계약 종료 때 세입자에 반환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에 맡겨 관리하는 '전세안심신탁'을 선택형 상품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9월까지 신탁 대상과 보증금 인정 범위, 운용 방식 등을 담은 구체적인 사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안심신탁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직접 전세금을 건네는 기존 계약과 구조가 다르다. 임차인이 낸 보증금은 가칭 '전월세안정화기구'가 받아 보관·운용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집주인에게 매달 지급한다. 세입자는 전세로 거주하고 집주인은 공적기구로부터 월세와 비슷한 정기 수익을 받는 방식이다.
현재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집주인이 계약이 끝난 뒤 돈을 돌려주지 못하면 HUG가 세입자에게 대신 지급하고 임대인을 상대로 회수하는 사후 보호 방식이다. 안심신탁은 보증금을 처음부터 공적기구가 가지고 있어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거나 대신 갚는 절차 없이 계약 종료 때 예치된 돈을 반환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정부는 올해 2월 등록임대사업자의 주택 가운데 전세가율이 반환보증 가입 기준인 90%를 넘는 경우 등을 대상으로 보증금을 HUG에 맡기는 제도를 추진했다.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좁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시행이 미뤄졌다.
이달 14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일반 민간 임대인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힌 내용이 포함되면서 재추진의 포문이 열렸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도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업무보고에서 "안심신탁사업을 추진해 전세 사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며 하반기 핵심 주거안전 과제로 다시 제시했다.
◆ 보증보험보다 한발 앞선 사전 보호…집주인 참여가 변수
임대인은 전세안심신탁에 가입할 경우 별도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아도 돼 보증료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예·적금보다 높은 운용수익을 제공해 임대인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 전세보증금을 대출 상환이나 추가 주택 매입 자금 등으로 활용해온 임대인에게는 신탁 가입 유인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공적기구가 안전성을 고려해 전세보증금을 국공채나 예금 등 저위험 자산 위주로 운용할 경우, 임대인에게 월세 수준의 수익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가 검토 중인 목표 수익률은 연 4~5% 수준이다. 이 수익률이 기존 전세 운용을 통해 얻던 수익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임대인이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전세 물량 감소와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거래대금을 제3자에게 맡기는 에스크로 제도가 등장한 적이 있지만 금방 사라졌다. 2000년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거래가 끝날 때까지 금융기관 등에 예치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2004년과 2016년에는 관련 상품도 출시됐다. 전세계약에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예치 기간은 잔금 납부와 입주 등 거래 절차가 끝날 때까지로 제한돼 계약 만료 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험까지 막지 못했다.
국내에서 전세보증금 에스크로가 전세사기 예방책으로 거론된 것은 2023년이다. 대규모 전세사기가 이어지자 임차인이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직접 건네지 않고 HUG나 금융회사 등 제3의 기관에 맡기는 방안이 제시됐다. 보증금 전액을 임대차 기간 동안 보관하거나 일부만 예치해 집주인의 무자본 주택 매입을 제한하는 방식 등이 논의됐다.
이는 실제 도입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다. 보증금을 장기간 묶으면 임대인이 전세를 내놓을 유인이 사라져 월세 전환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반발이 컸다. 금융기관의 관리 비용과 수수료 부담, 의무화에 따른 사적 계약 개입 논란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논의 직후 에스크로 도입에 선을 긋고 보증금 한도와 무제한 갭투자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손은경 KB부동산 선임연구위원은 "전세는 주택경기 호황기에서 침체기로 넘어올 때 임대인의 투자 행위가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및 손실로 확대되는 구조적 문제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이 제도가 향후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투명성 제고 및 정책적 보완, 안정적인 시장 참여자 확대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세입자 보호 필요하지만…전면 도입 땐 전세 위축"
해외에서는 임차보증금을 집주인의 재산과 분리하는 제도가 보편적으로 활용된다. 영국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받은 뒤 30일 안에 정부가 승인한 보호제도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공공기관이 임차보증금을 보관하고 계약 종료 뒤 돌려준다. 독일은 보증금 상한을 월세 3개월분으로 정하고 별도로 관리하도록 한다.
윤성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제한된 액수의 보증금조차도 은행 예금 등을 통해 임대인이 안정적으로 보유하도록 제도적으로 규율하고, 추가적인 보호를 위해 주 정부 기관에 예치하는 국가도 있다"며 "임차보증금에 붙는 이자의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임차인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지역도 다수 존재한다"고 말했다.
해외의 임차보증금은 대부분 몇 개월치 월세 수준으로 한국의 전세금보다 규모가 작다는 차이가 있다. 집값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목돈을 2년 동안 보관하면서 집주인에게 수익까지 지급하는 한국식 안심신탁과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전세보증금을 임대인의 재산과 분리해 관리하는 장치가 세입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한다. 반대로 전세안심신탁을 모든 계약에 일괄 적용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임대인의 보증금 활용을 전면 차단하면 전세 공급이 줄고 월세 전환이 빨라질 수 있는 만큼, 단계적 적용 등을 통해 시장 충격을 줄이면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영 명지대 교수는 "전세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전세금을 별도 계정에 넣고 임차인의 동의 없이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면서도 "신탁을 전면 적용하기 어려울 경우 임대사업자에만 적용되는 반환보증 의무가입을 전체 전세계약으로 넓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윤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전세안심신탁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전혀 사용할 수 없으므로 월세와 다를 바 없어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면 전세제도 자체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전세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 제도를 임대차 계약 때 필수적으로 인식되게 만들어야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