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상희 기자 = 전쟁은 중동에서 시작됐지만, 청구서는 전 세계로 날아들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격화된 이후 국제유가는 3월 23일 현재 브렌트유 기준 50~60%, WTI 기준 45~50% 폭등했다. 그러나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경고한다. "유가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가장 좁은 곳의 폭 33km, 길이 167km의 호르무즈 해협 수로 하나가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의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 시스템 구성 요소 중 단 하나만 고장나도 전체 시스템이 멈춰버리는 구조적 취약점)'이라는 사실이 이번 전쟁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이 해협이 막히자 천연가스·헬륨·알루미늄·비료·황의 연쇄적 공급차질 우려가 확산됐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LNG는 글로벌 교역량의 20% 이상이 호르무즈를 통과하고, 요소는 세계 거래량의 약 3분의 1, 황은 전 세계 공급의 절반 가량, 카타르 헬륨은 세계 생산의 약 3분의 1, 페르시아만 지역 알루미늄은 세계 공급의 약 8%를 차지한다.
중동발 리스크의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AI 도구를 통해 이번 중동 사태의 파급력이 전세계 원자재 공급망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 지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 LNG :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시 '공급 절벽'
전쟁 발발 이후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선물'은 하루 간 35% 급등했고, 동북아 LNG 현물가격 지표인 'JKM'도 며칠 사이 두 자릿수 급등세를 보였다. 카타르의 최대 가스 생산 거점인 라스라판 LNG 생산 시설이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을 전면 중단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분석업체 우드매킨지는 이 조치로 단기 글로벌 LNG 공급량이 약 19%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봉쇄가 한 달간 지속될 경우 TTF 선물과 JKM이 메가와트시당 74유로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라는 대안 공급선을 보유하고 있어 중동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카타르·UAE발 LNG와 중동산 원유가 중국 전체 에너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 역시 에너지 원가 상승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헬륨 : 대체재 없는 반도체의 산소
충격의 사각지대에서 가장 급격히 터진 곳은 반도체 공정의 핵심 소재인 헬륨이다.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는 세계 헬륨 생산량의 약 30~33%를 담당하는 최대 거점인데, 이곳이 드론 공격으로 가동을 멈추며 4일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헬륨은 웨이퍼 식각·냉각·불활성 분위기 조성에 쓰이며, 특히 첨단 공정의 정밀 냉각·고순도 공정가스 용도에서 사실상 대체재가 없는 상태다.
세계 헬륨 공급량의 카타르 공급 차질로 세계 공급의 약 30%가 흔들렸고, 추가 피해로 연간 수출 14% 정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미 헬륨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등 주요 파운드리 기업들은 비축 물량 점검과 공급선 다변화에 비상이 걸렸다.

◆ 알루미늄 : 에너지 가격이 곧 금속 가격
알루미늄 제련은 전기를 먹는 산업이다. 생산원가의 40% 이상(일부 자료는 50~55%)이 전력비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알루미늄 가격은 자동으로 오른다.
카타르와 바레인의 알루미늄 제련소가 호르무즈 해협 물류 차질로 출하를 중단하면서, 국제 알루미늄 가격이 급등세로 돌아섰다.
알루미늄 충격은 자동차·항공기 기체·포장재·건설·전선 등 전방 산업 전체로 번진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와 경량 차체 소재로 알루미늄 비중이 높아진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원가 부담 압박이 높아졌다.
◆ 비료·황 : 식량 안보의 뇌관
이란 전쟁이 가장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건드리는 분야가 농업이다.
질소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주간 기준 10% 상승, 월간 기준 29.3% 상승, 연초 대비 50% 이상 상승했다.
여기에 전 세계 유통 황(Sulfur) 수출 물동량의 약 44~45%가 호르무즈를 통과해 글로벌 황 교역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황은 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이자 정유 공정에서 불가결한 소재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에너지·비료·운송비 상승이 맞물리며 식량 가격이 상승하고 취약 계층에 더 큰 충격이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프리카·남아시아 등 비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의 다음 농업 시즌이 이미 위태로워지고 있다.
◆ 해운·물류: 우회 항로의 비용 청구서
중동 전쟁 리스크 확산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전쟁보험료가 급등하고, 일부 선사들은 해당 해역 통과를 줄이거나 희망봉 우회 항로를 택하고 있다.
희망봉 우회 시 항로에 따라 운송거리가 약 30~50% 늘고, 운송기간도 10~20일 길어질 수 있어 운임·연료비·납기 지연 부담이 커지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 화물뿐 아니라 중동 및 수에즈·홍해 연계 항로를 이용하는 전자부품, 자동차부품, 화학 원료 등에서도 물류비 상승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2021~2022년과 같은 전면적 글로벌 물류대란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 석탄의 귀환: 에너지 전환의 역설
중동 전쟁 이후 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일부 발전사들은 석탄 조달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 발전용 석탄 가격은 전쟁 직전 대비 26% 상승했고, 인도·태국·방글라데시 등에서는 석탄발전 확대 또는 최대 가동 조치가 나타났다.
이는 에너지 전환의 전면 후퇴라기보다, 단기 에너지 안보 압박 속에서 일부 국가들에 의해 석탄을 다시 활용하는 임시적 대응책으로 선택되고 있다.
pxx1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