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요구받은 69곳 건설사는 무응답...공고 부착은 7곳 불과
노동계 "원청이 적극적으로 교섭해야"...전문가 "노사 공방 예상"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지난 10일 시행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이후 건설업계가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원청 건설사 90곳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대부분 기업은 회신을 보류한 상태다. 기업들은 고용노동부 산하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정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분위기지만, 노동계의 교섭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 대우건설·롯데건설 등 건설사 21곳 "노동위 사용자성 판단 필요" 회신
17일 전국건설노조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이날까지 노조의 단체교섭 요청 공문에 회신을 보낸 건설사는 21곳이다. 대우건설, 롯데건설, 포스코이앤씨, 삼성E&A, 태영건설, 두산건설 등이다. 이 기업들은 "고용노동부 산하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정 이후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전국건설노조 측에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사업장에 대해 원청 건설사가 교섭 대상인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으로 하청 근로자가 원청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존에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청에는 교섭 의무가 부여되지 않아 하청 근로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노란봉투법은 이런 한계를 보완해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 해당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노란봉투법 시행 첫 날 전국건설노조는 노조원이 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사업장의 원청 건설사 90곳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전송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을 비롯한 대형·중견 건설사가 요청 대상에 포함됐다. 노조는 ▲산업 안전(중대재해 예방, 폭염 등 기후위기 건강장해 예방, 노사 안전 상생 등) ▲다단계 불법 하도급 예방 등을 교섭 의제로 제시했다.
◆ 교섭 요구 공고 부착 건설사 7곳 불과..."하청 교섭 부작용 우려"
다만 건설사들은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노조법에 명시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절차에 따라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 건설사는 각 현장에 교섭 요구를 받은 사실을 알리는 공고를 7일간 부착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기준 공고를 부착한 건설사는 7곳에 불과하다. 대방건설은 지난 11일 교섭 요구 공고를 부착했으나 철회했다. 공고 부착이 '교섭 요구 수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업계의 관심이 과하게 쏠리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다.
건설사들은 하청과의 교섭이 궁극적으로 경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A건설사 관계자는 "하청이 교섭에서 중대재해나 임금 관련 요구를 전하고 이로 인한 작업 중지, 파업이 합법화될 경우 총 공사비 증액이나 공기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하도급 구조가 보편적인 건설사로서 현실적으로 원청이 모든 하청 근로자와 직접 교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중대재해 예방에 대한 정부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원청 건설사에서 하청 교육 등 안전 확보에 힘쓰고 있다"며 "그러나 이런 노력이 직접적 지시와 관여로 해석돼 사용자성 인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 수백 명의 하도급사·재하도급사 직원이 있는데 그들 모두를 원청 건설사의 교섭상대로 보면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커질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고 덧붙였다.
◆ 노동계 "건설사 적극적 교섭 필요"...전문가 "노사 간 시각 엇갈릴 듯"
반면 건설사들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국건설노조 관계자는 "교섭 공고 미부착 건설사들에 대해 노동위에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제기할 예정"이라며 "하청 소속 근로자여도 건설 현장은 원청의 작업 지시, 안전관리 책임 등이 없으면 공사가 진행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청 건설사들이 노조의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와서 교섭을 하고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며 "향후 노동위 판정도 사용자성이 인정된다고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건설 작업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사용자성 여부를 두고 노사 간 치열한 공방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노란봉투법은 제조업 위주로 설계된 법이기 때문에 사내 하청, 불법 파견 등 문제가 중심"이라며 "건설업은 당초 하도급 구조가 만연하고 근로현장이 외부에 위치해 있어 '사내'라는 개념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 때문에 원청의 구체적·실질적 지배결정을 가리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위 판결이 어떤 방향으로 나와도 노사가 서로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사 간 시각차와 법적 분쟁에 따라 실제 노란봉투법이 적용되는 건설 현장은 제한적일 수 있다"며 "노란봉투법을 통해 하도급, 체불 문제 등을 다각도로 논의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건설 근로 환경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blue9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