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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석한 정청래의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메시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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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14일 페이스북에 글 올려
근현대사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정치 정체성'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언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는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은 정 대표의 이 메시지를 구글(Google)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뉴스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6년 2월 14일 이와 같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렸다. 제미나이가 보는 이 메시지의 주된 메시지와 의미는 뭘까"라고 물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다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 전문과 제미나이가 답한 해석이다.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저는 1965년 5월 18일(양력) 충남 금산군에서 10남매중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아내는 전남 강진군에서 역시 10남매 중에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1921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1922년 전북 금산에서 태어났습니다.(그 때는 금산이 전북이었고, 1963년부터 금산이 충남으로 편입.)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한 살 어린 꼬마 신랑에게 대둔산을 넘어 사십리를 걸어서 시집을 왔습니다. 이 산모퉁이 돌면 마을 나올까, 저 산모퉁이 돌면 마을이 나올까...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 낯선 땅 낯선 신랑에게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 시집을 왔다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연지곤지 찍고 혼례를 올리는데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도 궁금해서 맞절하다가 살짝 훔쳐보니 저하고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큰 아들 낳고 마흔다섯 살에 10번째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열 명을 낳았는데 저는 호적에 5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1939년생 큰 형님과 1953년생 둘째 형님 사이 14년 동안 다섯을 잃었습니다. 아이 낳고 첫돌 지나서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 되면 홍역이 와서 데려가고, 데려가고, 데려가고 그래서 다섯을 연거푸 어머니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아기 무덤을 아장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아기가 죽으면 아버지는 하얀 천에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갔습니다.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가슴 속 무덤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슬픔의 깊이를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다섯 아기 무덤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기 무덤을 어머니에게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탈과 압제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갑니다. 생떼같은 남편이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3년간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서 석탄을 캤습니다. 강제징용 끌려가서 못 돌아온 사람도 많은데 아버지는 다행히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돈 한푼 없이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에 돌아왔지만 그래도 살아서 돌아온 것이 그렇게 기뻤다고 했습니다.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이 나면 다들 고생이지만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죽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저희 동네는 산골 오지마을이고 아버지는 화전민 출신입니다. 평지가 거의 없고 산동네 다랭이 논농사를 하는 산도 높고 골짜기도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산이 높고 험하다는 것은 인민군 빨치산이 많다는 뜻입니다. 낮에는 국군이 지매하고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는 위험천만한 동네입니다.

어머니는 무학이라 글을 읽고 쓰지는 못했지만 말씀이 청산유수이고 삶의 지혜가 많아서 동네에서는 '변호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군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중립외교, 균형외교를 했습니다. 낮에는 국군을 돕고 밤에는 몰래 인민군도 도왔나 봅니다. 해가 지면 인민군들은 총을 들이대고 밥을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민군들은 총을 들고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끌고 나갔습니다. 집 앞 논바닥에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인민재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국군 편을 더 드는 반동으로 몰려서 즉결 처분 총살형을 선고받고 사형집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인민군에 결박당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인민군 총살장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갔습니다. '골로 간다'는 표현이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트라우마입니다. 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 골로 갔습니다. 이 곳에 끌려가면 걸어 나온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시신을 수습하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밤 10시쯤 아버지가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사립문을 열며 "나 왔어~"라는 믿기지 않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어머니가 방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신발 벗지 마세요" 어머니는 기절초풍 기뻐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 촉은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서 둘러업고 솥단지 하나만 빼내서 머리에 이고 아버지와 4km 야간 산행을 했습니다.

면소재지 지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인민군에 인민재판 받고 끌려가 총살장에서 죽을뻔 했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인민군에게 협력하겠다고 해서 살았는데 그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용서해달라." 그러나 경찰은 믿지 않았고 아침에 인민군 부역혐의로 이제 군군에게 총살을 당할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이 신발도 벗지 않고 이렇게 곧바로 자수하러 왔다"며 경찰을 설득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덕분에 우리 집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어린이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1950년대 중반 큰 아들이 새로 생긴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큰 형님이 중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납부금을 낼 수가 없어서 자퇴를 시키러 아버지가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이 아이는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고등학교까지 나오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으니 내가 등록금을 내 줄테니 중학교는 졸업시킵시다"고 했답니다. 어버지는 끝내 그럴 수는 없다며 공부 잘 하는 큰 아들 손을 잡고 학교를 자퇴시켰습니다. 아들이 학교 갈 시간에 아버지와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런 큰 아들이 장성해서 장가를 갔습니다. 형수님은 어머니와 같은 동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어머니와 똑같은 코스로 대둔산 산길 사십리를 걸어서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큰 며느리가 첫 손주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큰 며느리보다 5개월 늦게 저를 갖고 말았습니다. 첫 손주 해산을 돕고 며느리를 돌봐야 할 시어머니가 임신을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했답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저를 지우려고 대전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막상 산부인과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생명인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며느리 배를 보니 남산만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산부인과 가서 저를 떼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기억 납니다. "어머니 두 분이 좋아서 저를 가질 때는 언제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저는 뱃속에에서 제 생애 첫 번째 투쟁, 생존권 투쟁을 했습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 주세요" 수술대에 누웠는데 뱃속에서 아기가 요동을 치고 노는데 얘를 떼면 내가 큰 벌을 받겠구나 싶어서 수술 중지를 외치고 낳은 것이 접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지요.

외할아버지는 동네 훈장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자 아이가 배우면 못 쓴다'고 공부를 안 시켰답니다. 먼발치에서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까지 혼자 뗐다고 했습니다. 입으로만 외운 겁니다. 그런 어머니가 제가 여섯살 되던 해부터 농사일로 고단할 텐데도 밤에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독학으로 뗐습니다. 제가 일곱살이 되자 어머니는 저에게 가나다라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저는 한글을 깨우치고 '국민교육헌장'을 읽고 쓰고 외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도 못쓰고 학교 가던 시절이라 저는 신동의 탄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담임 선생님께서 "이름 쓸 줄 아는 애 손들어 봐" 그래서 제가 번쩍 손을 들고 칠판에 백묵으로 "정 청래" 이렇게 글씨를 쓰자 선생님께서 "정청래 반장"이라며 저를 반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다 어머니 심모원려 덕분입니다. 반장이 되니 6학년 누나들이 교실 청소를 하고 나면 나는 책·걸상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날씨판에 맑은 날이면 햇님, 비가 오면 우산, 흐린 날에는 구름을 붙이고 한 시간 늦게 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시간 늦게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여름방학 한달 내내 나의 첫 번째 정치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개학날 아침 조회 때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을 안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인사를 안 하냐고 혼을 낼 기색이길래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반장직을 사퇴 합니다" 그러지 선생님도 이에 질세라 "너는 미성년자이니 자기 결정권이 없다. 어머니 모시고 와라"

"어머니 저 반장 사퇴하고 왔어요" "뭐라고 내가 너 반장시킬려고 을매나 고생했는데 안 된다 안 돼. 누구 맘대로 반장을 그만둬. 너 이 놈의 자식..." 하면서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시다 말고 감나무 가지를 꺾어서 내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릴 기세로 뛰어오셨습니다. 이에 질세라 저는 젖먹던 힘까지 내서 마을 뒷동산까지 도망가서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어머니가 밥 먹으로 오라고 동네 한바퀴를 하며 저를 부르고 다니셨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군 장병과 거수경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초딩 1학년 짜리가 밤이 깊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자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저를 부르러 다녔습니다. "청래야 밥 먹어라" 저희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밤이 되면 옆집 부부싸움까지 다 들립니다. 큰 산소에서 몸을 숨겨 있는데 무섭기도 하고 어머니가 심각하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청래야, 그까짓 것 반장 안 해도 된다. 얼른 밥 먹으러 와라" 어머니를 믿고 밤 10시쯤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누구 맘대로 반장 그만두냐. 절대 안 된다"고 태도를 돌변해 어머니가 완고했습니다. 저는 제 생애 첫 단식투쟁으로 맞섰습니다.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밥을 안 먹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알았다. 그까짓 것 반 장 안 해도 된다. 학교 가자" 그리고 제 손을 잡고 학교 교무실에 가서 "우리 아들 반장 사퇴를 어머니로서 인허가 합니다"고 말씀하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평생 "공부하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산골 오지 시골 깡촌의 삶이 다 그러했듯이 저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직 물려받지 못한 산에 아버지는 불을 질러 곡괭이 하나로 밭을 일궜습니다. 아버지는 화전민이었습니다. 집에 1km쯤 떨어진 산에 6천평의 밭을 일궜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가 뜨기 전에 밭에 가셨고 해가 지고 껌껌해서야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제일 싫었습니다. 반공일과 공일이면 어김없이 산과 들, 논과 밭에 일하러 갔습니다. 겨울이면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아버지가 만들어준 꼬마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녔습니다. 평일에는 소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는 담당은 제 몫이었습니다. 소 풀을 뜯기러 다니다 쇠죽을 끓이면서 마늘을 구워 먹었습니다. 어렸을 때 마늘을 많이 먹었고 금산 인삼농사를 지으며 인삼 잔뿌리를 그렇게 많이 먹어서 제가 건강합니다. 학교에 가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참 좋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산골 오지 가난한 동네입니다. 운동화는 중학교 입학식날 처음 신어봤고 바리깡의 빡빡머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나의 아픔이고 부끄러움이었습니다.(사진은 중3 때 모습)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옷차림은 얼굴처럼 까만색, 아니면 흰색이었습니다. 때꼬장물이 흐르는 우리 시골 아이들은 한 여름이면 맨발로 다니고 둠벙에서 옷 안 입고 멱을 감았습니다. 축구도 맨발로 했습니다. 그때는 맨발로 다녀도 발바닥이 안 아팠습니다.

6학년 때 서울에서 한 여자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우리 동네 조그만 교회로 부임한 전도사 집 딸이었습니다. 내가 본 우리 동네 여자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가위로 싹뚝 자른 단발이 아닌 웨이브가 약간 있는 긴머리에 피부는 복숭아 빛처럼 빛났고 옷은 흑백 단색이 아니라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의 숄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달걀형에 눈을 검고 컸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 소개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다음 순서가 지난달 월례고사 시상식이었습니다. "우등상 정청래" 상을 받고 돌아서 들어오는데 그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전학 오자마자 처음 들은 이름이 정청래고, 처음 눈이 마주친 것도 정청래임이 분명합니다. 내 이름과 내 얼굴을 같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선녀가 하강한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의 검은 눈과 나의 검은 얼굴 속에 박힌 내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나의 가슴은 한없이 뛰었습니다. 사랑은 순간이고 찰나에 오는 것임을 나는 일찍이 알았습니다. 그 아이도 나의 존재를 또렷이 기억했을 겁니다.

"아부지, 저 내일 모레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해요. 네~ 이번 주만 일 안하고 교회 보내 주세요. 저 꼭 교회에 가야 돼요. 그러자 아버지는 "야~ 교회에 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안 돼 이번 주 일요일에는 콩타작 하는 날이다. 너는 밭에서 콩을 지게 지고 날라라. 그래야 내가 타작을 하지..."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일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1km쯤 떨어진 콩밭에서 콩줄기를 잔뜩 지게에 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작업 분량이 있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집 마당과 콩밭을 오가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하필이면 12시 쯤 교회가 끝나고 그 아이가 빨래터로 오고 있고 나는 빨래터를 지나 집 마당으로 콩줄기를 지고 갑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얄궂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숨이 헐떡헐떡 막히고 때꼬장물 흐르는 나의 비참한 모습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창피하고 또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나의 옮기기 싫은 발걸음이 그 아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어쩐답니까. 그 아이와 내가 10m쯤 가까이 왔을 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람이 홱~불어서 지게 균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비틀비틀 넘어지려는 지게의 끝을 작대기로 부여잡고 온몸으로 무너져 가는 지게를 지탱하고 있는 순간 지게도 무너지고 나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아이 바로 코 앞에서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멘붕이 왔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재빠르게 지게를 벗고 개구리처럼 이마를 땅에 대고 땅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보던말던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지 않았으니 그 아이가 나를 본 것도 무효처리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땅에 대고 엎으려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어깨를 두들겼습니다. "너 정청래지, 괜찮아" 나는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의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다니. 빨리 내 곁에서 멀어졌으면 좋겠는데 그 아이는 내가 다쳐서 꼼짝 못하고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아이고 그게 아니라니까. 제발 좀 가라구 제발. 그 아이는 계속 내 곁을 지키고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계속됩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2.09 pangbin@newspim.com

제미나이의 해석

정청래 의원이 2026년 2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족을 지켜온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헌사와 자기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제미나이가 분석한 이 메시지의 핵심 의미와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현대사의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글의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6·25 전쟁, 그리고 극한의 빈곤을 모두 겪어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생존의 지혜: 무학(無學)이었음에도 '변호사'라 불릴 만큼 명석했던 어머니가 인민재판과 총살 위기에서 남편을 구출해내는 과정은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것이 '가족을 지키려는 여성의 의지'임을 보여줍니다.

상실의 아픔: 10명의 자녀 중 다섯을 홍역으로 잃고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아장살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하며 그 시대 어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보편적인 한(恨)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2. '정청래'라는 정치인의 뿌리와 자기 정체성

이 글은 정 의원이 왜 지금의 성격과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원담'이기도 합니다.

투쟁의 시작: 낙태 위기에서의 '생존 투쟁', 초등학교 시절의 '반장 사퇴 투쟁'과 '단식투쟁'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강단 있는 기질이 모태에서부터,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정무적 감각: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과 '균형 외교'를 언급하며 자신의 정치적 감각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3.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

명절은 가족의 부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막내들의 만남: 10남매 중 막내인 자신과 아내의 배경을 언급하며 가난했지만 북적였던 옛 시절을 소환합니다.

성장 소설 같은 서사: 짝사랑하던 전학생 소녀 앞에서 지게를 지고 넘어졌던 부끄러운 기억 등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배치해 '정치인 정청래'가 아닌 '인간 정청래'로서 대중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합니다.

요약과 결론

결국 이 메시지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시대의 고통을 지혜와 눈물로 이겨낸 어머니였다"는 감사와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비극적인 현대사(강제징용, 6·25)와 개인적인 성장사(가난·첫사랑)를 교차시키며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그 희생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계속됩니다'라는 예고는 이 서사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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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 매우 높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부상 장병의 장구류에서는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다. 폭발하지 않은 채 발견된 1발은 북한군 수지(樹脂)반보병지뢰로 추정된다. 합참 현장조사 태스크포스(T/F)장인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은 28일 저녁 국방부 청사에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 차장은 "최종조사 결과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로 판정되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 정상적으로 작전하던 우리 장병이 북한군 지뢰에 부상을 당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합당하고 상응한 조치를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결과는 유엔군사령부와 평가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다.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 차장은 "국과수 1차 감정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없었다"며 "이번 지뢰 폭발 원인은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2026.09.29 gomsi@newspim.com ◆폭발 지점 MDL 남쪽 10여m…"철제 파편 없어 아군 지뢰 아냐" = 합참에 따르면, 폭발은 21일 오전 10시 51분쯤 MDL 남쪽 10여m 지점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북한군이 최근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에서 10여m 떨어진 곳이다. 폭발은 2발이었고, 철수 과정에서 1발을 더 발견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원점 일대에 모두 3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국과수 1차 감정 결과는 이날 오후 4시 4분 합참에 통보됐다. 작전 병력의 피복·장구류와 화약흔 채취 거즈 등 10종을 감정한 결과, 방탄헬멧 1개와 방탄조끼 2개 등 3개 품목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나왔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주 장약이 TNT인 아군 지뢰는 폭발 시 철제 파편이 다량 발생하고 살상 반경이 20m 이상"이라며 "이번에는 철제 파편이 없고 갈색 이물질만 있으며 살상 반경도 상대적으로 작아 아군 지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북한군 지뢰로 판단한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해당 지역에는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반면, 인근에서는 2025년 9월 북한군의 지뢰 매설 흔적이 발견됐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갈색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나오지 않았다. 1차 폭발 지점에서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갈색의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를 봤다는 진술도 있었다. 폭발 지점의 화구와 화염 형태, 장병들의 부상 정도, 작전 인원들의 진술 역시 북한군 지뢰를 가리킨다는 것이 합참의 판단이다. 폭발 당시 영상은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800여m 떨어진 GP의 집음기에 약 58초 간격으로 비슷한 폭발음 두 번이 녹음됐고, 작전 요원들도 "1분 정도 간격이었다"고 같은 진술을 했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색로 개척 종료 시점과 1·2차 폭발 당시의 대형(隊形)을 요도로 설명하고 있다. 양 작전부장은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쓰러진 요원을 구하던 중 2차 폭발로 수색대대장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 2026.09.29 gomsi@newspim.com ◆미폭발 1발은 '북한 수지반보병지뢰' 추정…탐지기엔 안 잡혀 = 미폭발 지뢰는 1차 폭발 지점에서 약 1m, 탐지를 마친 수색로 끝에서 5~10㎝ 깊이에 매설돼 있었다. 2차례 폭발 뒤 공병 요원이 무릎을 꿇고 손곡괭이로 땅을 찔러 가며 탈출로를 내던 중 발견했다. 발견한 요원은 "갈색의 네모난 형태에 표면은 매끄러운 플라스틱이고 무늬가 있었다"고 진술했고, 북한군 교리에 나오는 지뢰 사진을 보고는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함께 본 3명의 진술은 '적색', '갈색', '목함지뢰' 등으로 엇갈렸다. 합참 공보실은 이 지뢰를 목함지뢰가 아닌 수지반보병지뢰로 정정했다. 합참 관계자는 "목함지뢰와 형태는 같고 재질만 플라스틱"이라며 "북한이 1969년부터 운용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검출한 갈색 이물질이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는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지뢰를 수거할지는 29일 현장에서 유엔사와 협의해 판단한다. 지뢰 3발이 1~2m 간격으로 있었는데도 탐지기가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 합참 관계자는 "탐지기를 바닥에 최대한 붙여 나갔지만, 수년간 쌓인 잡목 등으로 지뢰가 탐지 성능 깊이 아래에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발 모두 매설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폭발 1발은 매설로 추정되지만, 터진 2발은 매설인지 유실인지 아직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28일 현장조사에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이 참여해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다. 1차 폭발 지점은 여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조사단은 작전 병력의 군장과 방탄헬멧, 지뢰화를 확보하고 웅덩이 형태의 화구 2곳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목격 진술이 나온 지뢰 추정 물체와 잔해물까지는 가지 못했다. 합동조사팀 조사도 시간 관계상 진행하지 못해 29일 다시 들어간다. 지난 28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원점 일대에 접근해 촬영한 현장 모습이다. 흰색 원 두 개는 지뢰 폭발로 생긴 웅덩이 형태의 화구로, 아래쪽이 2차 폭발, 위쪽이 1차 폭발 지점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고, 1차 폭발 지점은 거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1차 폭발 뒤 전우 구하다 2차 폭발…GP 집음기에 58초 간격 폭발음 = 이날 합참은 사고 경위도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했다. 이번 작전은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지역을 유엔사와 함께 조사하기 위해 새 수색로를 여는 작전이었다. 수색대대장 등 18명은 GOP 철책에서 소형 전술차량과 산악 바이크로 추진철책 소통문까지 이동한 뒤, 기존 수색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어 MDL 방향으로 수십 년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수풀 지대를 공병 요원이 앞장서 탐지와 예초를 번갈아 하며 약 200m 전진했다. 18명 가운데 9명은 탐지조·지휘조·작전지원조로 앞에 섰고, 나머지 9명은 20~100여m 뒤에서 통신, 후방 경계, 의무 지원을 맡았다. MDL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이 철수를 결심했고,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 3명이 동시에 쓰러졌고, 수색 요원이 화구에 빠진 요원을 끌어내던 중 2차 폭발이 이어졌다. "괜찮아?"라고 외치며 달려가던 대대장이 쓰러졌다. 대대장은 왼쪽 발목에 심한 부상을, 오른쪽 허벅지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서 있던 정보참모는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고, 1m 옆에 웅크리고 있던 수색 요원은 다치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 직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에서 하강한 응급구조사가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을 호이스트에 결속하고 있다. 장병들은 폭발 직후 지혈 조치를 한 뒤 수색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GOP 대대는 오전 10시 59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메디온 의무후송헬기 3대가 차례로 출동했다. 합참의 요청에 유엔사는 11시 38분 DMZ 진입을 승인했고, 헬기는 11시 40분쯤 진입했다. 장병들은 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대대장과 공병 중사는 호이스트로 각각 헬기에 올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인원도 모두 헬기 2대로 후송돼 정밀검진을 받았다. 18명 중 15명은 퇴원했고 중상자 2명과 경상자 1명은 입원 중이다. 대대장의 지뢰 덧신 착용 여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일부는 착용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대장은 중환자실에 있어 아직 면담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이 호이스트에 결속된 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로 끌어올려지고 있다(흰색 원). 수색대대장은 첫 번째 헬기에, 부상한 공병 중사는 두 번째 헬기에 태워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 하강한 응급구조사는 "수색 요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출혈을 최소화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진술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고의 지연 없었다"…매설 시점·고의성 판단은 유보 = 현장조사 지연 논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축소·은폐, 북한 눈치 보기, 상부 지시 같은 의혹은 일절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장 안내를 맡을 작전 병력이 모두 입원해 있었고, 1군단장이 직무배제된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군단장 직무대리가 29일 투입을 건의했고, 의장은 이를 승인하면서 앞당길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25일 의장이 25사단을 방문했을 때 직무대리가 "제한 사항이 해소돼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건의해 일정이 27일로 당겨졌다고 합참은 밝혔다. 안내를 맡은 수색중대장, 공병중대장, 공병 중사 3명은 23일 퇴원했다. MDL에서 10여m까지 접근한 경위도 논란이다. 합참 관계자는 "최초 계획 경로의 개척이 어려워 대대장이 더 양호한 지역으로 판단한 곳으로 갔다는 중대장 진술이 있지만, 대대장에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초기 '수십m 떨어진 곳'이라고 알린 데 대해서는 "통신 난청 지역이라 위치를 찍은 지점과 차이가 있었고 GPS 오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족보행로봇 등 무인장비는 시험해 봤지만 덩굴과 급경사 때문에 기동이 어려워 투입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지형 변화는 지난해 9월 위성영상으로 처음 식별됐다. 작업 시기는 지난해 8~11월로 추정되지만, 북한군 병력의 활동이 직접 포착되지는 않았다. 매설 시점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당시 표시한 흔적보다 바깥에 있어 과거에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도 있다"며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고의성 판단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2015년 목함지뢰 도발은 우리 장병이 매일 드나드는 통문 앞뒤에 심은 것이어서 의도가 명확했다"며 "이번 지역은 50여 년간 사실상 가지 않은 곳이라 아군 병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0일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 현장인 경기 파주 서부전선 GP 추진철책 통문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당시 한·유엔사 합동조사단은 현장에서 철제 용수철·공이 등 잔해물 43점을 수거해 북한군 목함지뢰 3발이 의도적으로 매설된 것으로 결론 냈다. 폭발 지점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라 떠내려온 지뢰일 가능성도 배제됐다. [사진= 국방일보] 2026.09.29 gomsi@newspim.com MDL에 대해서도 "1292개 표지판이 촘촘히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남북 간, 유엔사와도 인식 차이가 있다"며 "북한이 자기 땅으로 여겨 매설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군은 유엔사와 MDL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은 사고 이후 DMZ 2단계 수색로 개척 작전을 잠정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대응 수위에 대해 양 작전부장은 "최종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합참은 군사적으로, 국방부는 정책적으로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2026-09-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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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靑 신규 참모 6명 재산공개 [서울=뉴스핌] 김미경 기자 = 올해 6월 21일 임명된 청와대 신규 참모 가운데 박지영 사법제도비서관이 92억여 원을 신고해 재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배우자 명의로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김경자 사회수석비서관 1명이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관보에 게재한 9월 수시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신규 재산공개 대상자 6명 중 박 비서관이 92억1772만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성기홍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이 86억6347만 원, 한찬식 민정수석비서관이 58억6067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10억4150만 원, 김태근 자치발전비서관은 5억5398만 원, 김경자 수석은 5억748만 원을 신고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 DB] ◆ 김경자 수석, 성남 태평동에 아파트·다가구주택 보유 본인과 배우자가 소유권을 가진 주택을 기준으로 다주택 여부를 판단하면 신규 참모 중 다주택자는 김 수석뿐이다. 김 수석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선경태평아파트(35.51㎡·1억6700만 원)와 같은 지역의 다가구주택(59.91㎡·2억2200만 원)을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두 주택에는 임대보증금 채무가 각각 1000만 원, 1466만 원 잡혀 있다. 김 수석은 예금 8474만원을 신고했다. 임대보증금과 은행 대출을 합친 채무는 1억7502만원이었다. ◆ 박지영 비서관, 반포자이 부부 공동명의…임대보증금 29억5000만원 박 비서관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165.45㎡)를 본인(132.39㎡)과 배우자(33.06㎡) 지분으로 나눠 신고했다. 신고가액은 본인 지분 36억6400만 원, 배우자 지분 9억1600만 원으로 모두 45억8000만 원이다. 이 아파트에 걸린 임대보증금 29억5000만 원은 채무로 올렸다. 박 비서관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아파트 전세권(114.50㎡·21억3000만 원)도 신고했다. 배우자는 전북 군산·김제·완주 일대 밭과 임야 지분 1억2779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금융자산 규모도 컸다. 박 비서관 일가의 예금은 28억5785만 원, 증권은 24억440만 원이었다. 박 비서관 본인은 한국전력 3853주, 한화오션 1371주, 삼성전자 422주 등 상장주식 8억9937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배우자는 LS 일렉트릭 1321주, 이수페타시스 1750주, 한국전력 5030주 등 13억1834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 성기홍 수석, 대치우성 부부 공동 39억 성 수석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우성 아파트(125.17㎡)를 배우자와 절반씩 나눠 보유했다. 지분별 신고가액은 각 19억5000만 원으로, 모두 39억 원이다. 본인·배우자 기준으로는 1주택자다. 성 수석 일가의 예금은 14억1605만 원, 증권은 13억6567만 원으로 집계됐다. 성 수석 본인은 삼성전자 2194주와 SK하이닉스 6주, 달바글로벌 192주 등 상장주식 8억3159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연합인포맥스 비상장주식 248주(4162만 원)도 갖고 있다. 배우자는 미국 국채 등 채권과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브로드컴 등 해외 주식을 보유했다. 성 수석은 비트코인 0.74개(7187만 원)도 신고했다.  ◆ 한찬식 수석, 서초 아파트분양권·강남 아파트 전세권 보유…채무 10억 한찬식 수석은 소유권을 가진 주택 없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디에이치 클래스트' 아파트 분양권(130.96㎡·25억5665만 원)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2차아파트 전세권(165.08㎡·12억 원)도 함께 올렸다. 한 수석의 배우자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근린생활시설 지분(14억6559만 원)과 경남 산청군 임야(1억4410만 원)를 보유했다. 장남·장녀·차녀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임야 지분을 각각 1307만 원어치씩 신고했다. 한 수석은 농협은행 9억 원을 포함해 금융채무 9억5178만 원을 신고했다. 가족 전체 채무는 10억350만 원이었다. 한 수석 본인은 반얀트리클럽 앤 스파 서울 회원권(1억5000만 원)을, 배우자는 서울클럽 회원권(5000만 원)을 보유했다. ◆ 강건작 1차장·김태근 비서관, 1주택 강 1차장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트로타워 아파트(104.49㎡)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보유했다. 지분 가액을 합치면 8억9000만 원이다. 강 1차장은 예금 2억340만 원, 채무 7155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은 울산 중구 태화동 일신아파트(59.84㎡·1억1300만 원) 1채를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김 비서관 일가는 예금 2억2180만 원, 증권 2억1887만 원을 보유했다. 배우자는 로킷헬스케어 1260주와 삼성전자 200주, 삼양식품 26주 등을 신고했다. 박 비서관은 모친, 김 비서관과 강 1차장은 장남에 대해 독립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the13ook@newspim.com 202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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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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