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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석한 정청래의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메시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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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14일 페이스북에 글 올려
근현대사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정치 정체성'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언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는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은 정 대표의 이 메시지를 구글(Google)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뉴스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6년 2월 14일 이와 같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렸다. 제미나이가 보는 이 메시지의 주된 메시지와 의미는 뭘까"라고 물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다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 전문과 제미나이가 답한 해석이다.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저는 1965년 5월 18일(양력) 충남 금산군에서 10남매중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아내는 전남 강진군에서 역시 10남매 중에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1921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1922년 전북 금산에서 태어났습니다.(그 때는 금산이 전북이었고, 1963년부터 금산이 충남으로 편입.)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한 살 어린 꼬마 신랑에게 대둔산을 넘어 사십리를 걸어서 시집을 왔습니다. 이 산모퉁이 돌면 마을 나올까, 저 산모퉁이 돌면 마을이 나올까...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 낯선 땅 낯선 신랑에게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 시집을 왔다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연지곤지 찍고 혼례를 올리는데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도 궁금해서 맞절하다가 살짝 훔쳐보니 저하고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큰 아들 낳고 마흔다섯 살에 10번째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열 명을 낳았는데 저는 호적에 5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1939년생 큰 형님과 1953년생 둘째 형님 사이 14년 동안 다섯을 잃었습니다. 아이 낳고 첫돌 지나서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 되면 홍역이 와서 데려가고, 데려가고, 데려가고 그래서 다섯을 연거푸 어머니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아기 무덤을 아장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아기가 죽으면 아버지는 하얀 천에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갔습니다.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가슴 속 무덤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슬픔의 깊이를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다섯 아기 무덤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기 무덤을 어머니에게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탈과 압제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갑니다. 생떼같은 남편이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3년간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서 석탄을 캤습니다. 강제징용 끌려가서 못 돌아온 사람도 많은데 아버지는 다행히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돈 한푼 없이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에 돌아왔지만 그래도 살아서 돌아온 것이 그렇게 기뻤다고 했습니다.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이 나면 다들 고생이지만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죽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저희 동네는 산골 오지마을이고 아버지는 화전민 출신입니다. 평지가 거의 없고 산동네 다랭이 논농사를 하는 산도 높고 골짜기도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산이 높고 험하다는 것은 인민군 빨치산이 많다는 뜻입니다. 낮에는 국군이 지매하고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는 위험천만한 동네입니다.

어머니는 무학이라 글을 읽고 쓰지는 못했지만 말씀이 청산유수이고 삶의 지혜가 많아서 동네에서는 '변호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군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중립외교, 균형외교를 했습니다. 낮에는 국군을 돕고 밤에는 몰래 인민군도 도왔나 봅니다. 해가 지면 인민군들은 총을 들이대고 밥을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민군들은 총을 들고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끌고 나갔습니다. 집 앞 논바닥에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인민재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국군 편을 더 드는 반동으로 몰려서 즉결 처분 총살형을 선고받고 사형집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인민군에 결박당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인민군 총살장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갔습니다. '골로 간다'는 표현이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트라우마입니다. 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 골로 갔습니다. 이 곳에 끌려가면 걸어 나온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시신을 수습하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밤 10시쯤 아버지가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사립문을 열며 "나 왔어~"라는 믿기지 않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어머니가 방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신발 벗지 마세요" 어머니는 기절초풍 기뻐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 촉은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서 둘러업고 솥단지 하나만 빼내서 머리에 이고 아버지와 4km 야간 산행을 했습니다.

면소재지 지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인민군에 인민재판 받고 끌려가 총살장에서 죽을뻔 했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인민군에게 협력하겠다고 해서 살았는데 그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용서해달라." 그러나 경찰은 믿지 않았고 아침에 인민군 부역혐의로 이제 군군에게 총살을 당할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이 신발도 벗지 않고 이렇게 곧바로 자수하러 왔다"며 경찰을 설득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덕분에 우리 집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어린이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1950년대 중반 큰 아들이 새로 생긴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큰 형님이 중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납부금을 낼 수가 없어서 자퇴를 시키러 아버지가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이 아이는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고등학교까지 나오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으니 내가 등록금을 내 줄테니 중학교는 졸업시킵시다"고 했답니다. 어버지는 끝내 그럴 수는 없다며 공부 잘 하는 큰 아들 손을 잡고 학교를 자퇴시켰습니다. 아들이 학교 갈 시간에 아버지와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런 큰 아들이 장성해서 장가를 갔습니다. 형수님은 어머니와 같은 동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어머니와 똑같은 코스로 대둔산 산길 사십리를 걸어서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큰 며느리가 첫 손주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큰 며느리보다 5개월 늦게 저를 갖고 말았습니다. 첫 손주 해산을 돕고 며느리를 돌봐야 할 시어머니가 임신을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했답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저를 지우려고 대전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막상 산부인과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생명인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며느리 배를 보니 남산만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산부인과 가서 저를 떼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기억 납니다. "어머니 두 분이 좋아서 저를 가질 때는 언제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저는 뱃속에에서 제 생애 첫 번째 투쟁, 생존권 투쟁을 했습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 주세요" 수술대에 누웠는데 뱃속에서 아기가 요동을 치고 노는데 얘를 떼면 내가 큰 벌을 받겠구나 싶어서 수술 중지를 외치고 낳은 것이 접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지요.

외할아버지는 동네 훈장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자 아이가 배우면 못 쓴다'고 공부를 안 시켰답니다. 먼발치에서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까지 혼자 뗐다고 했습니다. 입으로만 외운 겁니다. 그런 어머니가 제가 여섯살 되던 해부터 농사일로 고단할 텐데도 밤에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독학으로 뗐습니다. 제가 일곱살이 되자 어머니는 저에게 가나다라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저는 한글을 깨우치고 '국민교육헌장'을 읽고 쓰고 외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도 못쓰고 학교 가던 시절이라 저는 신동의 탄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담임 선생님께서 "이름 쓸 줄 아는 애 손들어 봐" 그래서 제가 번쩍 손을 들고 칠판에 백묵으로 "정 청래" 이렇게 글씨를 쓰자 선생님께서 "정청래 반장"이라며 저를 반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다 어머니 심모원려 덕분입니다. 반장이 되니 6학년 누나들이 교실 청소를 하고 나면 나는 책·걸상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날씨판에 맑은 날이면 햇님, 비가 오면 우산, 흐린 날에는 구름을 붙이고 한 시간 늦게 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시간 늦게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여름방학 한달 내내 나의 첫 번째 정치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개학날 아침 조회 때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을 안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인사를 안 하냐고 혼을 낼 기색이길래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반장직을 사퇴 합니다" 그러지 선생님도 이에 질세라 "너는 미성년자이니 자기 결정권이 없다. 어머니 모시고 와라"

"어머니 저 반장 사퇴하고 왔어요" "뭐라고 내가 너 반장시킬려고 을매나 고생했는데 안 된다 안 돼. 누구 맘대로 반장을 그만둬. 너 이 놈의 자식..." 하면서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시다 말고 감나무 가지를 꺾어서 내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릴 기세로 뛰어오셨습니다. 이에 질세라 저는 젖먹던 힘까지 내서 마을 뒷동산까지 도망가서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어머니가 밥 먹으로 오라고 동네 한바퀴를 하며 저를 부르고 다니셨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군 장병과 거수경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초딩 1학년 짜리가 밤이 깊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자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저를 부르러 다녔습니다. "청래야 밥 먹어라" 저희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밤이 되면 옆집 부부싸움까지 다 들립니다. 큰 산소에서 몸을 숨겨 있는데 무섭기도 하고 어머니가 심각하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청래야, 그까짓 것 반장 안 해도 된다. 얼른 밥 먹으러 와라" 어머니를 믿고 밤 10시쯤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누구 맘대로 반장 그만두냐. 절대 안 된다"고 태도를 돌변해 어머니가 완고했습니다. 저는 제 생애 첫 단식투쟁으로 맞섰습니다.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밥을 안 먹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알았다. 그까짓 것 반 장 안 해도 된다. 학교 가자" 그리고 제 손을 잡고 학교 교무실에 가서 "우리 아들 반장 사퇴를 어머니로서 인허가 합니다"고 말씀하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평생 "공부하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산골 오지 시골 깡촌의 삶이 다 그러했듯이 저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직 물려받지 못한 산에 아버지는 불을 질러 곡괭이 하나로 밭을 일궜습니다. 아버지는 화전민이었습니다. 집에 1km쯤 떨어진 산에 6천평의 밭을 일궜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가 뜨기 전에 밭에 가셨고 해가 지고 껌껌해서야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제일 싫었습니다. 반공일과 공일이면 어김없이 산과 들, 논과 밭에 일하러 갔습니다. 겨울이면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아버지가 만들어준 꼬마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녔습니다. 평일에는 소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는 담당은 제 몫이었습니다. 소 풀을 뜯기러 다니다 쇠죽을 끓이면서 마늘을 구워 먹었습니다. 어렸을 때 마늘을 많이 먹었고 금산 인삼농사를 지으며 인삼 잔뿌리를 그렇게 많이 먹어서 제가 건강합니다. 학교에 가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참 좋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산골 오지 가난한 동네입니다. 운동화는 중학교 입학식날 처음 신어봤고 바리깡의 빡빡머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나의 아픔이고 부끄러움이었습니다.(사진은 중3 때 모습)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옷차림은 얼굴처럼 까만색, 아니면 흰색이었습니다. 때꼬장물이 흐르는 우리 시골 아이들은 한 여름이면 맨발로 다니고 둠벙에서 옷 안 입고 멱을 감았습니다. 축구도 맨발로 했습니다. 그때는 맨발로 다녀도 발바닥이 안 아팠습니다.

6학년 때 서울에서 한 여자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우리 동네 조그만 교회로 부임한 전도사 집 딸이었습니다. 내가 본 우리 동네 여자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가위로 싹뚝 자른 단발이 아닌 웨이브가 약간 있는 긴머리에 피부는 복숭아 빛처럼 빛났고 옷은 흑백 단색이 아니라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의 숄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달걀형에 눈을 검고 컸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 소개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다음 순서가 지난달 월례고사 시상식이었습니다. "우등상 정청래" 상을 받고 돌아서 들어오는데 그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전학 오자마자 처음 들은 이름이 정청래고, 처음 눈이 마주친 것도 정청래임이 분명합니다. 내 이름과 내 얼굴을 같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선녀가 하강한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의 검은 눈과 나의 검은 얼굴 속에 박힌 내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나의 가슴은 한없이 뛰었습니다. 사랑은 순간이고 찰나에 오는 것임을 나는 일찍이 알았습니다. 그 아이도 나의 존재를 또렷이 기억했을 겁니다.

"아부지, 저 내일 모레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해요. 네~ 이번 주만 일 안하고 교회 보내 주세요. 저 꼭 교회에 가야 돼요. 그러자 아버지는 "야~ 교회에 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안 돼 이번 주 일요일에는 콩타작 하는 날이다. 너는 밭에서 콩을 지게 지고 날라라. 그래야 내가 타작을 하지..."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일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1km쯤 떨어진 콩밭에서 콩줄기를 잔뜩 지게에 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작업 분량이 있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집 마당과 콩밭을 오가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하필이면 12시 쯤 교회가 끝나고 그 아이가 빨래터로 오고 있고 나는 빨래터를 지나 집 마당으로 콩줄기를 지고 갑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얄궂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숨이 헐떡헐떡 막히고 때꼬장물 흐르는 나의 비참한 모습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창피하고 또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나의 옮기기 싫은 발걸음이 그 아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어쩐답니까. 그 아이와 내가 10m쯤 가까이 왔을 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람이 홱~불어서 지게 균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비틀비틀 넘어지려는 지게의 끝을 작대기로 부여잡고 온몸으로 무너져 가는 지게를 지탱하고 있는 순간 지게도 무너지고 나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아이 바로 코 앞에서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멘붕이 왔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재빠르게 지게를 벗고 개구리처럼 이마를 땅에 대고 땅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보던말던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지 않았으니 그 아이가 나를 본 것도 무효처리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땅에 대고 엎으려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어깨를 두들겼습니다. "너 정청래지, 괜찮아" 나는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의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다니. 빨리 내 곁에서 멀어졌으면 좋겠는데 그 아이는 내가 다쳐서 꼼짝 못하고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아이고 그게 아니라니까. 제발 좀 가라구 제발. 그 아이는 계속 내 곁을 지키고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계속됩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2.09 pangbin@newspim.com

제미나이의 해석

정청래 의원이 2026년 2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족을 지켜온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헌사와 자기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제미나이가 분석한 이 메시지의 핵심 의미와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현대사의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글의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6·25 전쟁, 그리고 극한의 빈곤을 모두 겪어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생존의 지혜: 무학(無學)이었음에도 '변호사'라 불릴 만큼 명석했던 어머니가 인민재판과 총살 위기에서 남편을 구출해내는 과정은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것이 '가족을 지키려는 여성의 의지'임을 보여줍니다.

상실의 아픔: 10명의 자녀 중 다섯을 홍역으로 잃고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아장살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하며 그 시대 어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보편적인 한(恨)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2. '정청래'라는 정치인의 뿌리와 자기 정체성

이 글은 정 의원이 왜 지금의 성격과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원담'이기도 합니다.

투쟁의 시작: 낙태 위기에서의 '생존 투쟁', 초등학교 시절의 '반장 사퇴 투쟁'과 '단식투쟁'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강단 있는 기질이 모태에서부터,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정무적 감각: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과 '균형 외교'를 언급하며 자신의 정치적 감각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3.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

명절은 가족의 부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막내들의 만남: 10남매 중 막내인 자신과 아내의 배경을 언급하며 가난했지만 북적였던 옛 시절을 소환합니다.

성장 소설 같은 서사: 짝사랑하던 전학생 소녀 앞에서 지게를 지고 넘어졌던 부끄러운 기억 등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배치해 '정치인 정청래'가 아닌 '인간 정청래'로서 대중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합니다.

요약과 결론

결국 이 메시지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시대의 고통을 지혜와 눈물로 이겨낸 어머니였다"는 감사와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비극적인 현대사(강제징용, 6·25)와 개인적인 성장사(가난·첫사랑)를 교차시키며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그 희생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계속됩니다'라는 예고는 이 서사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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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도 없네"…청계천 자율주행버스로 달린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버스가 스스로 달리는 것도 신기한데, 창밖으로 야경까지 볼 수 있네요."(서울시민 박모(53)씨) 지난 22일 저녁 청계광장 '청계 A01' 정류장. 은색 자율주행버스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하나둘씩 버스에 올라탔다. 운행 시작까지 20분가량 남은 시점에 이미 정원 8석이 모두 찼다.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버스 사진을 찍었다. 버스 내부에는 운전석이 있어야 할 앞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와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일반 차량과 다름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옆차선에서 갑작스레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정류장에 '청계 A01'이 정차돼 있다. 2026.10.22 blue99@newspim.com 서울시는 이날부터 청계천 자율주행버스 '청계 A01'의 야간 운행에 돌입했다. 청계 A01은 '청계광장~청계3가(세운상가)~청계5가(광장시장)' 4.8km를 왕복으로 오간다. 지난해 9월 운행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운영됐다. 앞으로는 주간 운행을 중단하고 첫차가 오후 7시, 막차가 밤 11시에 청계광장에서 출발한다. 해당 노선에는 차량 2대가 투입돼 순환 운행한다. 양방향 총 11개의 정류소에 정차한다. 청계광장 기준 30분 간격으로 하루 9회 운영한다. 운영은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맡는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에서 '청계 A01'을 검색하면 정류소 위치와 실시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버스를 야간 시간대에 정기 운행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서울시는 청계천이 광화문·종로·을지로 일대의 관광명소와 상권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퇴근 이후에도 산책, 식사, 관광 등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많아 심야 교통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계 A01 노선 인근에는 광화문광장, 보신각 등 명소와 종각·관철동의 음식점 거리, 을지로 상권, 광장시장 등이 위치한다. 서울시는 이번 야간 운행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명소와 상권을 하나의 교통축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청계 A01' 내부 좌석. 2026.10.22 blue99@newspim.com 이날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운영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계광장에서 버스에 올라 광장시장에서 하차한 김모(29)씨는 "직장인들은 밤에 버스를 운영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야간 운영 방식이 반갑다"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서도 자율주행버스를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향후에도 또 탈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율주행버스로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집트에서 여행을 왔다는 30대 마리얌씨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율주행버스가 운행 준비 중인 것을 보고 궁금해서 타봤는데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며 "서울의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새로운 기술까지 경험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했다. 해당 기간 452명이 버스에 탑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일대는 밤 시간대 유동인구가 많아 자율주행버스 야간 운행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실제 서울시민과 내국인·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계 A01은 자율주행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안전관리자가 조이스틱으로 수동운전한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운행 시간대를 주간에서 야간으로 전환한 만큼 안전성 확보에 더욱 주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8월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하면서 외부 전문가와 함께 안전성을 미리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정규 대중교통수단 정착을 위해 단계적인 유료화를 추진한다. 서울 순환버스 요금(1400원) 수준을 고려 중이다. 우선 야간운행 초기에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한다. 요금은 부과되지 않지만 탑승 시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밤을 체류와 소비의 시간으로 만드는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청계 A01 야간 운행이 시민들의 야간 이동 편의를 높이고 지역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blue99@newspim.com 2026-10-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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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佛 시위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세종=뉴스핌] 김범주 기자 = 프랑스 주요 도시들이 대규모 시위에 이어 폭력사태로 혼란에 빠졌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축소,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긴축 기조에 대한 반발까지 겹쳤다. 그 배경에는 누적된 재정적자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약 5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절감 방안을 담겠다고 밝힌 것이 '저항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없다면 내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5%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추산이다. 한국 경제는 이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월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 1200억달러를 넘어섰고,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63조원 넘게 더 걷힐 전망이다. 하지만 연초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한 성장률은 1%대에 그쳤다.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비와 유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복면을 쓴 한 시위자가 불타는 자전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실적 따라 출렁이는 법인세…의무지출은 계속 불어나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수출 확정치는 1211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3.7% 늘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605억달러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도체 호황에 나라 곳간도 두둑해졌다. 올해 국세수입은 추가경정예산 대비 63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세입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은 584조4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2000억원 늘었다. 특히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올해 추경 기준보다 115조4000억원 많다. 문제는 법인세가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한 세목이라는 점이다. 실제 법인세 수입은 2022년 103조6000억원에서 2023년 80조4000억원,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41조1000억원 줄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업 실적 악화와 세제 변화 등이 맞물리며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동력도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제시한 IT 부문 제외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감소했다. 수출과 세수는 호황인데 일자리와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세수는 경기 흐름에 따라 급변할 수 있지만, 한번 늘린 지출은 다시 줄이기 어렵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사업을 확대하면, 경기 하강기에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GDP 대비 의무지출 비율은 2025년 13.9%에서 2072년 21.6%로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의무지출에는 연금과 복지급여, 지방이전재원, 이자지출 등이 포함된다. 전체 정부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4.4%에서 64.3%로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쓰는 돈 100원 가운데 64원 이상을 법률과 기존 제도에 따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35년 71.5%에서 2055년 126.3%까지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현행 제도와 일정한 경제·인구 가정을 전제로 한 전망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채무비율은 통계 범위가 다르다. 한국의 장기전망은 국가채무(D1)를, 프랑스는 일반정부부채(D2)에 해당하는 범위를 쓴다. 숫자만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 상황이 프랑스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위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위기 때 늘린 지출, 끝내 되돌리지 못한 프랑스 재정 측면에서 프랑스 위기를 들여다보면, 경기침체기에 늘린 지출을 이후 충분히 줄이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프랑스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프랑스와 유로존은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을 비슷한 폭으로 늘렸다. 하지만 2019년까지 유로존이 증가분의 약 4분의 3을 되돌린 반면, 프랑스는 절반가량을 줄이는 데 그쳤다. 그 결과 2019년 프랑스의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2.1%포인트(p)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코로나19·에너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재정 부담이 더해졌다. 올해 2분기 말 프랑스 정부부채는 3조5955억유로로 GDP의 119%에 달했다. 전 분기보다 1.5%p 높아진 수치다.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커졌지만 교육·복지·생활비 지원 등 공공서비스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긴축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려운 배경이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프랑스 사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 생활비 부담,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다만 장기간 누적된 재정적자가 정부의 대응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이 열린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를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 반도체가 벌어준 '골든타임' 고령화는 한국에 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OECD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한국이 29.3명으로 프랑스(40.2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2054년에는 한국 84.5명, 프랑스 53.4명으로 역전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5~2030년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이 0.7%p 늘어 프랑스(0.1%p)의 7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이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프랑스의 재정 여건과 사회·정치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번 늘린 지출의 지속 가능성과 향후 구조조정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번 늘린 지출을 앞으로 들어올 세수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구상 중인 미래대응기금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일반회계에서 100조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그만큼을 기금에 넣는 게 바람직한지는 정부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장기적인 재정위기로 가는 길을 택했다기보다는 새로 생긴 세원을 두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되돌릴 수 없는 지출에 세수를 모두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 시간을 미래에 쓸 돈을 마련하는 데 쓸지, 미래에도 계속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wideopen@newspim.com 2026-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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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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