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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⑤바이마르 공화국의 좌절, 민주주의는 왜 무너졌는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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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1944: 설득이 사라진 공간에서의 언어

바이마르 공화국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그 붕괴는 헌법 조항이나 선거 결과보다 먼저, 의회 속기록의 괄호 안에서 진행되었다. 박수가 줄고 야유가 늘어나는 과정, 토론이 조롱으로 대체되고 발언이 고성으로 덮이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는 서서히 기능을 상실했다. 히틀러가 1933년 1월 총리에 임명된 순간부터 그가 총통(Führer)으로 등극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제3제국이 무너지는 순간까지 연명하고 있었던 의회의 언어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었을 때, 독일은 아직 형식적으로 공화국이었다. 국가 원수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였고,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은 유지되고 있었으며, 의회도 해산되지 않았다. 이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후의 언어 변질을 단순히 권력 장악 이후의 결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정적인 변화는 권력이 완전히 집중되기 이전, 총리라는 제도적 지위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말은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매개도 아니었고, 아직 노골적인 독재의 언어도 발견되지 않는다. 바로 이 중간지대, 즉 언어는 이미 폭력화되었지만 헌정의 외피는 남아 있던 시기가, 정치 언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관찰 대상이 된다.

아돌프 히틀러. [사진=독일 연방 아카이브(Bundesarchiv) / 위키미디어 공용]

1933년 3월 23일, 베를린 크롤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라이히스타크 본회의는 실질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이 무력화된 날로 기록되고 있다. 이날 히틀러는 총리 자격으로 전권 위임법을 요청하는 연설을 했다. 전권 위임법(Ermächtigungsgesetz)은 헌법 48조에 명시된 비상사태 선포권에 기초하고 있지만, 입법부가 행정부에 입법권을 위임하는 법률로서 사실상 행정부가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1933년 2월 27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이후 선포된 비상사태 기간 동안 이 법안이 제출되었다.

이 연설은 약 5천 단어 분량으로, 이전 바이마르 시기 총리 연설과 비교해도 결코 짧지 않다. 그러나 길이는 유지되었지만, 언어의 기능은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이 연설은 고전적 수사학의 범주로 보면 숙의적 연설이 아니다. 논증의 구조는 느슨하고, 반론에 대한 직접적 응답은 거의 없다. 대신 반복, 대조, 도덕적 이분법이 핵심 장치로 사용된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어휘를 집계하면 국민, 국가, 질서, 투쟁, 배신이 두드러진다. 이 단어들은 정책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감정과 충성을 호출하는 기표로 기능한다.

히틀러의 언어 구조적 특징은 명확하다. 통사론적으로 문장은 짧고 단정적이다. 평균 문장 길이는 약 18단어 수준으로, 바이마르 시기 장관 연설의 평균치였던 30단어 내외보다 현저히 짧다. 짧은 문장은 이해를 돕기보다는 반응을 유도하는 리듬을 만든다. 의미론적으로는 법과 헌법이 더 이상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을 방해한 장애물로 재정의된다. 기호학적으로 의회는 숙의의 공간이 아니라, 민족 공동체의 의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무대가 된다. 화용론적으로 이 연설은 설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존 설의 언어행위 이론을 적용하면, 이는 정보 제공이나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한 발화가 아니라, 권한을 창출하는 선언적 언어행위다. 말은 현실을 설명하지 않고, 현실을 자신의 잣대로 재정의한다. 괄호 안에 반복적으로 기록된 박수와 기립 박수는 동의의 표시라기보다, 충성의 수행적 행위다. 오류와 편향 역시 체계적으로 동원된다. 자유주의와 공화국은 무능과 혼란의 허수아비로 단순화되고, 정치적 반대자는 국민 공동체 외부의 존재로 재구성된다. 위협의 논증은 권한 집중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환상을 만든다. 이는 논리적 실수가 아니라,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오류다.

아돌프 히틀러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1933년 3월 5일 총선 이후, 나치당은 제1당이 되었지만 단독 과반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 토론에서 나타나는 언어의 위상은 이미 다수와 소수의 관계가 아니라, 결정자와 추인자의 관계로 이동한다. 질문은 줄어들고, 반대 발언은 고립된다. 괄호 안 반응은 야유와 소란이 아니라, 압도적인 박수로 채워진다. 갈등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표현될 수 없게 된 것이다. 1934년 8월 2일 힌덴부르크가 사망하면서, 히틀러는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총통이 된다. 이 순간은 권력 구조의 결정적 전환점이지만, 언어의 차원에서는 이미 준비된 결과였다. 이후의 의회 언어는 더 이상 설득, 반론, 설명을 포함하지 않는다. 연설은 짧아지고, 어휘는 고정되며, 의미는 반복된다. 1934년 이후 공식적으로 치러진 선거들은 경쟁적 선택이 아니라 찬반 확인의 의례로 기능한다. 의회 회기는 극도로 축소되고, 실제 정책 결정은 당과 내각에서 이루어진다. 속기록의 괄호 안에는 거의 예외 없이 박수와 환호가 기록된다. 야유는 사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합의의 완성이 아니라, 대안의 소멸이다.

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된다. 히틀러의 언어는 개인적 성향의 산물이 아니라, 제도적 위치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 정치 언어였다. 이를 하나로 묶어 평가하면 분석은 참으로 어려워진다. 따라서 그의 연설은 기간별로 분해해 분석되어야 한다.

첫째, 총리 임명 직후의 히틀러의 연설이다. 1933년 1월 30일, 그는 총리로 임명되었지만 국가 원수는 여전히 힌덴부르크였다. 이 시기의 연설은 형식적으로는 헌법과 의회를 존중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언어의 핵심 기능은 이미 설득이 아니라 정당성 압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질문은 답변을 요청하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둘째, 1933년 3월 5일 총선 이후 제1당 당수의 총리로서의 언어다. 공산당이 배제된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 이후, 히틀러는 정치적 우위를 확보한다. 이 시기의 언어는 더 이상 반론을 상정하지 않는다. 의회는 설득의 공간이 아니라 승인 절차의 무대로 변질되었다. 3월 23일 전권위임법 연설은 이 전환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문장은 거의 단문으로 짧아지고, 반복적 표현이 거듭해서 사용되었으며, 도덕적 이분법이 논증을 대체했다. 국민, 국가, 질서, 투쟁, 배신이라는 단어들이 정책 개념이 아니라 감정과 충성을 호출하는 기표로 작동했다.

셋째, 1934년 8월 2일 이후의 히틀러다. 힌덴부르크 사망 이후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한 그는 더 이상 설득할 필요가 없다. 이 시기의 연설은 설명하지 않고 선언한다. 언어는 정치적 가능성을 여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권력을 재현하는 의례가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를 알리는 사전 경고 지수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정치적 변혁이 아니라, 의회 언어의 점진적 변질과 함께 서서히 진행된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CPS-15는 의회 발언이 얼마나 설득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DRHI는 그 설득이 민주주의적 규범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CPS-15는 의회 발언이 얼마나 설득으로서 기능하고 있는가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다. 핵심은 발언이 감정적 선동이나 단순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논증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반론을 인식하고 응답하는지, 청중을 판단 가능한 주체로 대우하는지를 평가하는 데 있다. CPS-15는 문장의 구성, 근거 제시 방식, 인과 연결, 반복과 병렬의 사용, 오류와 편향의 정도 등을 종합해 점수화한다. 점수가 높을수록 의회 발언은 설명과 설득의 기능을 유지하며, 정치적 갈등이 말의 교환을 통해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반대로 점수가 낮아질수록 발언은 설득에서 압박과 동원으로 이동하고, 논증은 구호와 단정으로 대체된다.

DRHI는 설득의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그 설득이 민주주의적 언어 규범 위에서 작동하는지를 평가하는 지표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제도나 절차 이전에 언어적 관계로 이해된다. DRHI는 타자에 대한 인정, 반대 의견의 정당성 존중, 폭력의 언어적 정당화 여부, 시민을 판단의 주체로 호명하는 방식, 진실과 증거에 대한 태도 등을 중심으로 점수를 산출한다. DRHI가 높다는 것은 의회 언어가 갈등 속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낮다는 것은 정치 언어가 배제·적대·침묵을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를 잠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CPS-15가 '어떻게 말하는가'를 본다면, DRHI는 '그 말이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고 있는가'를 묻는 지표다. 두 지표를 함께 놓고 보면, 바이마르의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무너지기 훨씬 이전에 이미 언어 차원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표 2>에서 보듯, 1919년의 수치는 공화국 출범 직후의 긴장 속에서도 의회가 아직 헌정과 절차 중심의 언어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CPS-15 72, DRHI 68이라는 값은 논증 구조와 반론 인식이 비교적 온전했고, 정치적 갈등이 제도 내부에서 말로 조정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1920년과 1921년을 거치며 점수는 빠르게 하락한다. 전쟁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되고, 인신공격과 배신 프레임이 의회 언어에 침투한다. 이 시점부터 설득은 상대를 이해시키는 행위라기보다, 도덕적 낙인을 찍는 방식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DRHI가 CPS-15보다 더 빠르게 떨어진다는 점은 특히 중요하다. 말은 여전히 그럴듯했지만, 그 말이 민주주의적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2년과 1923년은 언어의 급격한 감정화가 나타나는 시기다. 위협과 조롱의 발화가 늘어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표현이 의회 안으로 들어온다. CPS-15가 60까지 떨어지고 DRHI가 50으로 내려가는 이 국면은, 설득의 기술 자체보다 설득의 윤리가 먼저 무너지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말은 더 공격적으로, 더 단순하게, 더 감정적으로 변하지만, 그럴수록 공동의 판단 기반은 약화된다. 이 시기의 의회는 여전히 기능하고 있었지만, 이미 민주주의 언어의 안전장치는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1924년부터 1928년까지 점수는 부분적으로 회복된다. 안정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절차 언어와 숙의적 표현이 일정 부분 돌아온다. CPS-15는 다시 67~68 수준을 유지하고, DRHI도 59~60선에서 버틴다. 그러나 이 회복은 구조적 치유가 아니라 조건부 안정에 가깝다. 경제적 안정과 국제 환경의 완화가 언어의 균열을 덮고 있었을 뿐, 위기를 언어적으로 극복하는 능력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 표가 1928년을 '마지막 제도적 균형'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29년 이후의 변화는 급격하다. 대공황과 함께 적대 언어가 폭증하면서 CPS-15는 58, DRHI는 45로 추락한다. 이 시점부터 의회는 점점 설득의 장이 아니라 무력화의 장으로 변한다. 1930년에는 '의회 무력화', 1931년에는 '시민 배제 언어'가 표의 언어적 특징으로 등장한다. 이는 정치가 시민을 판단의 주체로 호명하지 않고, 동원되거나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설득의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게 된다.

1932년의 '설득 붕괴'는 수치로도 명확하다. CPS-15 44, DRHI 22라는 값은 논증 구조와 민주적 언어 규범이 사실상 동시에 붕괴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점에서 히틀러의 언어는 이미 의회적 설득과 결별한 상태였다. 반론은 사라지고, 설명은 반복 구호로 대체되며, 정치적 판단은 도덕적 선악 구도로 단순화된다. 1933년 '제도적 침묵'은 의회가 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말은 넘쳐났지만, 그 말들이 더 이상 설득도, 심의도, 결정도 만들지 못했다는 의미다.
1934년 이후의 수치는 민주주의 언어의 사후 기록에 가깝다. '찬동·명령 언어', '선전 중심 발화', '전시 동원 언어'를 거쳐 1944년에 이르면 DRHI는 1까지 떨어진다. 이는 의회 언어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뜻한다. 의회는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는 더 이상 민주주의적 언어가 생산되지 않았다. 말은 명령이 되었고, 명령은 곧 운명과 동일시되었다. 이 표가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의회 언어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의회 언어가 먼저 무너졌기 때문에 히틀러의 권력 장악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분석이 보여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선이 선거 결과나 헌법 조항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설득해야 할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반론이 제기될 자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언어를 통해 공동의 판단을 만들어가려는 태도가 유지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CPS-15와 DRHI의 연도별 궤적은 그 태도가 어떻게 약화되고, 훼손되고, 결국 사라졌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설득의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먼저 손상되었고, 그 뒤 제도는 이를 따라 붕괴했음을 보여준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 속기록은 이 과정을 추상적 교훈이 아니라 경험적 사실로 증언해 주고 있다. 격려, 환호, 박수는 줄고 야유, 방해, 그리고 의사진행 방해가 점차 늘어났으며, 논증은 사라지고 단정과 구호, 그리고 호통으로 대체되었다. 시민은 판단의 주체에서 동원의 대상으로 밀려났고, 의회는 토론의 장에서 승인과 명령의 통로로 변했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언어의 차원에서 종식을 알리고 있었다. 바이마르의 교훈은 민주주의는 무너질 때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무너진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먼저 말을 변질시키고, 다음에 제도를 변경시킨다. 문장과 괄호 안에 표현된 속기록의 역사적 기록은 민주주의의 붕괴가 언제나 언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오늘의 정치에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영국의 역사적 의회 속기록을 분석하면서 의회 토론의 질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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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 매우 높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부상 장병의 장구류에서는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다. 폭발하지 않은 채 발견된 1발은 북한군 수지(樹脂)반보병지뢰로 추정된다. 합참 현장조사 태스크포스(T/F)장인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은 28일 저녁 국방부 청사에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 차장은 "최종조사 결과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로 판정되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 정상적으로 작전하던 우리 장병이 북한군 지뢰에 부상을 당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합당하고 상응한 조치를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결과는 유엔군사령부와 평가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다.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 차장은 "국과수 1차 감정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없었다"며 "이번 지뢰 폭발 원인은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2026.09.29 gomsi@newspim.com ◆폭발 지점 MDL 남쪽 10여m…"철제 파편 없어 아군 지뢰 아냐" = 합참에 따르면, 폭발은 21일 오전 10시 51분쯤 MDL 남쪽 10여m 지점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북한군이 최근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에서 10여m 떨어진 곳이다. 폭발은 2발이었고, 철수 과정에서 1발을 더 발견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원점 일대에 모두 3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국과수 1차 감정 결과는 이날 오후 4시 4분 합참에 통보됐다. 작전 병력의 피복·장구류와 화약흔 채취 거즈 등 10종을 감정한 결과, 방탄헬멧 1개와 방탄조끼 2개 등 3개 품목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나왔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주 장약이 TNT인 아군 지뢰는 폭발 시 철제 파편이 다량 발생하고 살상 반경이 20m 이상"이라며 "이번에는 철제 파편이 없고 갈색 이물질만 있으며 살상 반경도 상대적으로 작아 아군 지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북한군 지뢰로 판단한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해당 지역에는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반면, 인근에서는 2025년 9월 북한군의 지뢰 매설 흔적이 발견됐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갈색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나오지 않았다. 1차 폭발 지점에서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갈색의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를 봤다는 진술도 있었다. 폭발 지점의 화구와 화염 형태, 장병들의 부상 정도, 작전 인원들의 진술 역시 북한군 지뢰를 가리킨다는 것이 합참의 판단이다. 폭발 당시 영상은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800여m 떨어진 GP의 집음기에 약 58초 간격으로 비슷한 폭발음 두 번이 녹음됐고, 작전 요원들도 "1분 정도 간격이었다"고 같은 진술을 했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색로 개척 종료 시점과 1·2차 폭발 당시의 대형(隊形)을 요도로 설명하고 있다. 양 작전부장은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쓰러진 요원을 구하던 중 2차 폭발로 수색대대장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 2026.09.29 gomsi@newspim.com ◆미폭발 1발은 '북한 수지반보병지뢰' 추정…탐지기엔 안 잡혀 = 미폭발 지뢰는 1차 폭발 지점에서 약 1m, 탐지를 마친 수색로 끝에서 5~10㎝ 깊이에 매설돼 있었다. 2차례 폭발 뒤 공병 요원이 무릎을 꿇고 손곡괭이로 땅을 찔러 가며 탈출로를 내던 중 발견했다. 발견한 요원은 "갈색의 네모난 형태에 표면은 매끄러운 플라스틱이고 무늬가 있었다"고 진술했고, 북한군 교리에 나오는 지뢰 사진을 보고는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함께 본 3명의 진술은 '적색', '갈색', '목함지뢰' 등으로 엇갈렸다. 합참 공보실은 이 지뢰를 목함지뢰가 아닌 수지반보병지뢰로 정정했다. 합참 관계자는 "목함지뢰와 형태는 같고 재질만 플라스틱"이라며 "북한이 1969년부터 운용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검출한 갈색 이물질이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는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지뢰를 수거할지는 29일 현장에서 유엔사와 협의해 판단한다. 지뢰 3발이 1~2m 간격으로 있었는데도 탐지기가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 합참 관계자는 "탐지기를 바닥에 최대한 붙여 나갔지만, 수년간 쌓인 잡목 등으로 지뢰가 탐지 성능 깊이 아래에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발 모두 매설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폭발 1발은 매설로 추정되지만, 터진 2발은 매설인지 유실인지 아직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28일 현장조사에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이 참여해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다. 1차 폭발 지점은 여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조사단은 작전 병력의 군장과 방탄헬멧, 지뢰화를 확보하고 웅덩이 형태의 화구 2곳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목격 진술이 나온 지뢰 추정 물체와 잔해물까지는 가지 못했다. 합동조사팀 조사도 시간 관계상 진행하지 못해 29일 다시 들어간다. 지난 28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원점 일대에 접근해 촬영한 현장 모습이다. 흰색 원 두 개는 지뢰 폭발로 생긴 웅덩이 형태의 화구로, 아래쪽이 2차 폭발, 위쪽이 1차 폭발 지점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고, 1차 폭발 지점은 거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1차 폭발 뒤 전우 구하다 2차 폭발…GP 집음기에 58초 간격 폭발음 = 이날 합참은 사고 경위도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했다. 이번 작전은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지역을 유엔사와 함께 조사하기 위해 새 수색로를 여는 작전이었다. 수색대대장 등 18명은 GOP 철책에서 소형 전술차량과 산악 바이크로 추진철책 소통문까지 이동한 뒤, 기존 수색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어 MDL 방향으로 수십 년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수풀 지대를 공병 요원이 앞장서 탐지와 예초를 번갈아 하며 약 200m 전진했다. 18명 가운데 9명은 탐지조·지휘조·작전지원조로 앞에 섰고, 나머지 9명은 20~100여m 뒤에서 통신, 후방 경계, 의무 지원을 맡았다. MDL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이 철수를 결심했고,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 3명이 동시에 쓰러졌고, 수색 요원이 화구에 빠진 요원을 끌어내던 중 2차 폭발이 이어졌다. "괜찮아?"라고 외치며 달려가던 대대장이 쓰러졌다. 대대장은 왼쪽 발목에 심한 부상을, 오른쪽 허벅지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서 있던 정보참모는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고, 1m 옆에 웅크리고 있던 수색 요원은 다치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 직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에서 하강한 응급구조사가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을 호이스트에 결속하고 있다. 장병들은 폭발 직후 지혈 조치를 한 뒤 수색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GOP 대대는 오전 10시 59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메디온 의무후송헬기 3대가 차례로 출동했다. 합참의 요청에 유엔사는 11시 38분 DMZ 진입을 승인했고, 헬기는 11시 40분쯤 진입했다. 장병들은 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대대장과 공병 중사는 호이스트로 각각 헬기에 올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인원도 모두 헬기 2대로 후송돼 정밀검진을 받았다. 18명 중 15명은 퇴원했고 중상자 2명과 경상자 1명은 입원 중이다. 대대장의 지뢰 덧신 착용 여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일부는 착용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대장은 중환자실에 있어 아직 면담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이 호이스트에 결속된 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로 끌어올려지고 있다(흰색 원). 수색대대장은 첫 번째 헬기에, 부상한 공병 중사는 두 번째 헬기에 태워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 하강한 응급구조사는 "수색 요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출혈을 최소화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진술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고의 지연 없었다"…매설 시점·고의성 판단은 유보 = 현장조사 지연 논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축소·은폐, 북한 눈치 보기, 상부 지시 같은 의혹은 일절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장 안내를 맡을 작전 병력이 모두 입원해 있었고, 1군단장이 직무배제된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군단장 직무대리가 29일 투입을 건의했고, 의장은 이를 승인하면서 앞당길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25일 의장이 25사단을 방문했을 때 직무대리가 "제한 사항이 해소돼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건의해 일정이 27일로 당겨졌다고 합참은 밝혔다. 안내를 맡은 수색중대장, 공병중대장, 공병 중사 3명은 23일 퇴원했다. MDL에서 10여m까지 접근한 경위도 논란이다. 합참 관계자는 "최초 계획 경로의 개척이 어려워 대대장이 더 양호한 지역으로 판단한 곳으로 갔다는 중대장 진술이 있지만, 대대장에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초기 '수십m 떨어진 곳'이라고 알린 데 대해서는 "통신 난청 지역이라 위치를 찍은 지점과 차이가 있었고 GPS 오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족보행로봇 등 무인장비는 시험해 봤지만 덩굴과 급경사 때문에 기동이 어려워 투입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지형 변화는 지난해 9월 위성영상으로 처음 식별됐다. 작업 시기는 지난해 8~11월로 추정되지만, 북한군 병력의 활동이 직접 포착되지는 않았다. 매설 시점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당시 표시한 흔적보다 바깥에 있어 과거에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도 있다"며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고의성 판단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2015년 목함지뢰 도발은 우리 장병이 매일 드나드는 통문 앞뒤에 심은 것이어서 의도가 명확했다"며 "이번 지역은 50여 년간 사실상 가지 않은 곳이라 아군 병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0일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 현장인 경기 파주 서부전선 GP 추진철책 통문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당시 한·유엔사 합동조사단은 현장에서 철제 용수철·공이 등 잔해물 43점을 수거해 북한군 목함지뢰 3발이 의도적으로 매설된 것으로 결론 냈다. 폭발 지점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라 떠내려온 지뢰일 가능성도 배제됐다. [사진= 국방일보] 2026.09.29 gomsi@newspim.com MDL에 대해서도 "1292개 표지판이 촘촘히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남북 간, 유엔사와도 인식 차이가 있다"며 "북한이 자기 땅으로 여겨 매설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군은 유엔사와 MDL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은 사고 이후 DMZ 2단계 수색로 개척 작전을 잠정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대응 수위에 대해 양 작전부장은 "최종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합참은 군사적으로, 국방부는 정책적으로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2026-09-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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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靑 신규 참모 6명 재산공개 [서울=뉴스핌] 김미경 기자 = 올해 6월 21일 임명된 청와대 신규 참모 가운데 박지영 사법제도비서관이 92억여 원을 신고해 재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배우자 명의로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김경자 사회수석비서관 1명이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관보에 게재한 9월 수시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신규 재산공개 대상자 6명 중 박 비서관이 92억1772만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성기홍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이 86억6347만 원, 한찬식 민정수석비서관이 58억6067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10억4150만 원, 김태근 자치발전비서관은 5억5398만 원, 김경자 수석은 5억748만 원을 신고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 DB] ◆ 김경자 수석, 성남 태평동에 아파트·다가구주택 보유 본인과 배우자가 소유권을 가진 주택을 기준으로 다주택 여부를 판단하면 신규 참모 중 다주택자는 김 수석뿐이다. 김 수석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선경태평아파트(35.51㎡·1억6700만 원)와 같은 지역의 다가구주택(59.91㎡·2억2200만 원)을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두 주택에는 임대보증금 채무가 각각 1000만 원, 1466만 원 잡혀 있다. 김 수석은 예금 8474만원을 신고했다. 임대보증금과 은행 대출을 합친 채무는 1억7502만원이었다. ◆ 박지영 비서관, 반포자이 부부 공동명의…임대보증금 29억5000만원 박 비서관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165.45㎡)를 본인(132.39㎡)과 배우자(33.06㎡) 지분으로 나눠 신고했다. 신고가액은 본인 지분 36억6400만 원, 배우자 지분 9억1600만 원으로 모두 45억8000만 원이다. 이 아파트에 걸린 임대보증금 29억5000만 원은 채무로 올렸다. 박 비서관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아파트 전세권(114.50㎡·21억3000만 원)도 신고했다. 배우자는 전북 군산·김제·완주 일대 밭과 임야 지분 1억2779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금융자산 규모도 컸다. 박 비서관 일가의 예금은 28억5785만 원, 증권은 24억440만 원이었다. 박 비서관 본인은 한국전력 3853주, 한화오션 1371주, 삼성전자 422주 등 상장주식 8억9937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배우자는 LS 일렉트릭 1321주, 이수페타시스 1750주, 한국전력 5030주 등 13억1834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 성기홍 수석, 대치우성 부부 공동 39억 성 수석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우성 아파트(125.17㎡)를 배우자와 절반씩 나눠 보유했다. 지분별 신고가액은 각 19억5000만 원으로, 모두 39억 원이다. 본인·배우자 기준으로는 1주택자다. 성 수석 일가의 예금은 14억1605만 원, 증권은 13억6567만 원으로 집계됐다. 성 수석 본인은 삼성전자 2194주와 SK하이닉스 6주, 달바글로벌 192주 등 상장주식 8억3159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연합인포맥스 비상장주식 248주(4162만 원)도 갖고 있다. 배우자는 미국 국채 등 채권과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브로드컴 등 해외 주식을 보유했다. 성 수석은 비트코인 0.74개(7187만 원)도 신고했다.  ◆ 한찬식 수석, 서초 아파트분양권·강남 아파트 전세권 보유…채무 10억 한찬식 수석은 소유권을 가진 주택 없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디에이치 클래스트' 아파트 분양권(130.96㎡·25억5665만 원)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2차아파트 전세권(165.08㎡·12억 원)도 함께 올렸다. 한 수석의 배우자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근린생활시설 지분(14억6559만 원)과 경남 산청군 임야(1억4410만 원)를 보유했다. 장남·장녀·차녀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임야 지분을 각각 1307만 원어치씩 신고했다. 한 수석은 농협은행 9억 원을 포함해 금융채무 9억5178만 원을 신고했다. 가족 전체 채무는 10억350만 원이었다. 한 수석 본인은 반얀트리클럽 앤 스파 서울 회원권(1억5000만 원)을, 배우자는 서울클럽 회원권(5000만 원)을 보유했다. ◆ 강건작 1차장·김태근 비서관, 1주택 강 1차장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트로타워 아파트(104.49㎡)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보유했다. 지분 가액을 합치면 8억9000만 원이다. 강 1차장은 예금 2억340만 원, 채무 7155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은 울산 중구 태화동 일신아파트(59.84㎡·1억1300만 원) 1채를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김 비서관 일가는 예금 2억2180만 원, 증권 2억1887만 원을 보유했다. 배우자는 로킷헬스케어 1260주와 삼성전자 200주, 삼양식품 26주 등을 신고했다. 박 비서관은 모친, 김 비서관과 강 1차장은 장남에 대해 독립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the13ook@newspim.com 202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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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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