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로 고통받는 신용유의자 3명 심층 인터뷰 ②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은 목숨과 직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한국에서 경제적 어려움은 자살 원인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어려움 중 가장 큰 고통은 채무, 즉 빚이다. 뉴스핌은 자살 요인으로서 빚을 바라보고, 빚이 채무자들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더 나아가 경제 문제가 자살로 이어지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 본다.
[서울=뉴스핌] 지혜진 윤채영 신도경 기자 = 한번 빚을 지면 위기에 취약해진다. 애초에 위기가 닥쳤을 때 기댈 안전망이 없어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가 된 이들이기 때문에 보통의 신용 수준을 유지하는 이들에 비해 위기대응 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빚, 빛] 글싣는 순서
1. 그 죽음 뒤엔 빚이 있었다…자살 원인 2위
2.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빚…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3. 위기에 취약한 삶…제도권 대출도 헤어나오기 힘든 '늪'
4. "회생 신청자는 그나마 나아"…벼랑 끝 불법사금융 채무자들
5. "돈(Money) 워리, 비 해피"…경북, 상담사가 경제위기군 직접 발굴
6. 자살예방 최전선 응급실 사례관리자들...현실은 6개월 임시직
7. 새정부 서민금융·자살예방책 살펴보니…"정책 간 연계성 부족"
8. 채무자에게 필요한 것은…"조기발굴·정서 지원 등 원스톱 서비스"
![]() |
◆ 위기에 취약한 저신용자들
예상치 못한 지출은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이다. 재연씨는 당장 140만원을 구할 곳이 없어 근심이다. 중학교 2학년인 둘째가 충치 때문에 이가 아파서다. 치료비가 어림잡아 140만원정도 들 것 같다는데 신용등급이 안 좋아서 생활비대출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다 희소식이 민생회복 소비쿠폰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 3인가족 기준으로 하면 120만원이 나올 터였다. 그 돈이 나오면 치료해주려고 했는데 거주 지역에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그마저도 물거품이 됐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치아 뿌리가 다 내려오지 않았다고 유치보존과가 있는 대학병원 치과로 가라고 해서다. 재연씨가 사는 인천에는 그런 곳이 없고 서울까지 나가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재연씨는 소비쿠폰을 받아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고 전했다.
재연씨는 주민센터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생각이다. 두려움이 커서다. 과거 긴급생계비가 필요해 주민센터를 찾은 적이 있는데, 생계비는커녕 그동안 주민등록이 말소됐던 남편의 주소지가 살아나면서 한부모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한부모 자격을 잃었다. 매달 70만원씩 지원받던 게 26만원으로 줄었다. 힘들어서 갔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진 셈이다.
예린씨의 산업재해 휴업급여는 3개월마다 갱신된다. 그 말은 곧 3개월 후 삶은 보장받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월급의 최대 70%까지 인정해 산재 급여가 나오는데, 연장이 안되면 당장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처럼 언제 끊길지 모르는 산재급여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 행복주택을 빌리는 데는 소득이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
예린씨는 "소득이 있는 청년으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보증금이 높게 책정됐다"고 했다. 그런데 "보증금을 빌려주는 은행에서는 소득이 없는 신용불량자"로 분류된다. 그래서 전세금 2000만원을 빌리는데 이자율이 15%에 달한다고 한다. 예린씨는 3개월마다 산재급여를 신청하며 연명하는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이 자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들은 이른바 '제도권' 내에서 대출을 이용해왔다. 이들 중 '사채'로 불리는 불법사금융을 이용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삶은 팍팍하다. 재연씨는 "사채나 대부업을 이용한 적은 없고 은행이나 지역 신용재단을 이용해 빚을 낸 건데 (빚을 갚으라는) 형식적인 문자만 받아도 엄청난 스트레스"라며 "정부가 말하는 배드뱅크 대상자인 7년 이상 연체가 실제로 가능할까 싶다. 저라면 아마 극단적 선택을 할 것 같다"고 했다.
◆ 예상치 못한 빚 독촉…소멸된 채권 추심에도 속수무책
또한 이들은 모두 용어도 낯선 비금융렌탈채권(생활서비스 채권) 때문에 채무 독촉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이미 위기에 빠진 이들의 숨통을 더욱 조였다.
냉장고·정수기 등 렌탈회사에서 빌린 금액을 갚지 못하게 될 경우 렌탈회사에서 이들의 정보가 담긴 채권을 추심업체 등에 팔아 넘기면서 독촉이 시작된다. 대부분 소멸시효(3년)가 지난 채권이지만 현행법상 신용회복지원협약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데다 개인채무자보호법에도 포함되지 않아 이용자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경우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들다.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인데도 독촉에 시달리다 소송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재연씨는 남편과 살던 집을 나오면서 렌탈비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다. 정수기 등 다른 렌탈 제품들은 연체되면서 연락이 와서 다 계약을 해지했는데 반려동물용 드라이룸이 문제가 됐다. 연체됐다는 연락이 없어서 미납됐는지도 몰랐는데, 렌탈업체에서 재연씨 정보를 채권추심 업체에 팔아 넘긴 것. 원금 107만원 미납에 이자율 25%를 적용해 280만원가량을 내라고 했다. 추심 금액도 260만원이었다가 280만원이었다가 그때그때 조금씩 달랐다. 설상가상 남편이 집세를 안내서 명도소송이 걸렸고, 집주인이 짐을 다 빼 버린 상태인데 렌탈기기를 횡령했다고 형사고소까지 당했다. 담당 형사와 판사조차 재연씨가 돈을 갚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예린씨는 전 남자친구가 예린씨 명의로 빌린 렌탈 서비스 비용이 밀렸다며 채무 독촉을 받았다. 어떤 기기를 빌렸는지도 모르고 약 7년 정도 지난 채권인데 난데없이 원금 30만원에 이자까지 포함해 120만원가량을 내라고 했다.
다행히 이 둘은 비영리단체 롤링주빌리의 도움을 받아 비금융렌탈채권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소민씨 어머니는 렌탈을 시작한 후 한 번도 구독료를 내지 않아서 약 850만원이 연체된 상황이다.
소민씨는 "롤링주빌리에서도 장기 미납돼 있어 손쓸 수 없다면서 금액을 낼 수 있으면 내라고 했다. 다른 무료 법률상담소에서도 미납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형사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고 했다. 소민씨가 어머니의 개인 파산을 진행하게 된 까닭이다.
heyj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