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영국 정부가 지지부진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본격화하기 위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민간 사업자가 추진하고 있는 원전 건설이 공사 지연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자 정부 주도로 사업을 끌고 가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영국은 신규 원전으로 서퍽의 사이즈웰C와 서머싯의 힝클리포인트C 원전을 건설 중이다. 둘 다 발전 용량이 3.2GW(기가와트)에 달한다.
이중 프랑스전력공사(EDF)가 건설을 맡고 있는 힝클리포인트C 원전은 2018년 공사를 시작했고, 당초 2023년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완공 시기가 계속 늦춰졌고 현재는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총 건설 예산은 180억 파운드에서 460억 파운드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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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동부 서퍽에 있는 사이즈웰 B 원전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9일(현지시간) 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사이즈웰C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 142억 파운드(약 26조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사이즈웰C 원전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총 178억 파운드에 이르게 됐다.
BBC는 "사이즈웰C 원전은 완공되면 약 600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이 프로젝트로 약 1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안보 장관은 "청정에너지의 황금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원전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가정의 재정을 보호하고, 에너지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영국 에너지 수요의 15%를 맡고 있는 원전 5곳 중 4곳이 노후화로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가동을 멈출 예정이지만 신규 원전 개발은 더디게 진행돼 왔다.
영국 정부는 힝클리포인트C 원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이즈웰C 원전은 외국 자본 비중을 줄이고 영국 정부 주도로 진행하기로 했다.
사이즈웰 C 원전도 2010년 처음 구상이 됐지만 아직 본격적인 공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당초 프랑스 EDF와 중국핵전집단공사(CGN)가 사업을 운영했으나 지난 2022년 보수당 정권이 중국 지분을 사들여 영국 정부가 84%, EDF가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정부 결정은 건설을 민간에 맡긴 힝클리포인트C 원전과는 달리 원자력 에너지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정책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만 프랑스 EDF의 지분이 적지 않은 만큼 다음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하는 시기에 맞춰 이 프로젝트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계획과 계약을 확정할 계획이다.
FT는 "업계 관계자들은 완공 시점까지 이 프로젝트의 총비용이 400억 파운드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영국 정부와 프랑스 EDF 이외에 사이즈웰C 지분 인수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인 투자자로는 캐나다 퀘벡주연기금(CDPQ), 앰버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 브룩필드 자산운용, 영국대학연기금(USS), 슈로더 그린코트, 센트리카, 보험사 로데세이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1950년대 세계 최초의 상업 원전 가동을 시작했지만 1995년 준공된 사이즈웰B 이후 원전 신설은 없다. 전체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25%에서 15%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