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프랑스 칸 해변에서 맛 본 감동
칸영화제, 한국 영화 전멸은 예고된 참사
일본은 경쟁부문 '르누아르' 등 초청작만 6편
주춤한 한국영화의 재도약 서둘러야 할 때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제78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이다. 예년 같으면 많은 영화 관계자와 영화 담당 기자가 남프랑스의 해변의 작은 도시 칸으로 몰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 영화의 선전(善戰) 소식 대신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현지 뉴스가 전부다. 올해의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실종됐다. 경쟁 부문 등 공식 부문은 물론 감독·비평가주간 등 비공식 부문에서 단 한 장의 초청장도 받지 못했다. 1999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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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2002년 임권택 감독에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겼던 영화 '취화선'. [사진 = 태흥영화사] 2025.05.16 oks34@newspim.com |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5월 기자는 프랑스 칸에 있었다. 말로만 듣던 칸영화제 첫 취재였다. 눈앞에 세계적인 스타들이 오갔고, 해변에는 가슴을 드러낸 미녀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동양에서 온 기자에게 가슴 뛰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가슴 뛰는 일은 따로 있었다.
영화제 중반쯤부터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이 상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개를 든 것이다.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당시 삼총사로 불렸던 임권택 감독과 제작사인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 촬영을 담당한 정일성 감독이 부지런히 칸 곳곳을 누볐다. 아직도 뤼미에르 극장에서 임권택 감독의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간신히 국제전화를 걸어 당시 근무하던 신문사에 보낸 기사에도 그 감동이 묻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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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칸국제영화제에 경쟁 부문 후보에 오른 일본 영화 '르누아르'(감독 하야카와 치에). [사진 = 칸영화제 홈페이지] 2025.05.16 oks34@newspim.com |
'한국 영화가 칸의 높은 파도를 마침내 넘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제작 태흥영화사)이 제5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취화선'이 처음이다. 26일 오후 7시(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취화선'은 조선 시대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린 점을 호평받아 세계 각국에서 출품된 21편과 경합을 벌인 끝에 칸영화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 뒤로도 한국 영화는 칸국제영화제의 단골이 됐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박찬욱 감독은 '박쥐'와 '올드보이', '헤어질 결심'으로 각각 심사위원상과 심사위원대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배우 중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서 주연을 맡았던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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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칸국제영화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된 일본 영화 '연애재판'. [사진 = 칸영화제] 2025.05.16 oks34@newspim.com |
우리가 단 한 장의 초청장을 받지 못하는 동안 이웃 나라 일본은 올해의 칸국제영화제에 경쟁 부문 '르누아르'(감독 하야카와 치에)를 비롯해서 '연애재판'(프리미어), '먼 산줄기의 빛'(주목할 만한 시선), '국보'와 '전망세대'(이상 감독 주간), '8번 출구'(미드나잇 스크리닝) 등이 초청됐다.
이러한 한국 영화의 부진은 이미 예견된 결과다. 코로나와 영화계의 불황이 이어지면서 이렇다 할 작품들이 제작되지 못했다. 그나마 실력을 인정받았던 감독들 중에 상당수가 넷플릭스의 드라마 시리즈 등 제작을 위해 차출됐다. 봉준호 등 한국 영화의 간판 감독들은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드는 영화에 투입됐다. 독립영화 제작 시장은 어떤가. 대개의 독립영화들은 전망을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제작비 지원을 노린 미시적인 소재의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실험정신이 넘쳐나는 신예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문화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 등 정부기관들이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을 위해서 대대적인 지원책을 내놨다는 뉴스도 보지 못했다.
대중문화 시장이야말로 모든 시장 중에서 가장 민감한 시장이다. 그동안의 성과에 취해서 주춤하는 사이에 또 다른 도전자들로부터 추월당하기 일쑤다. 앞에서 이끌던 기성세대들이 그동안의 성과에 취해서 안주하면 그 뒤를 이어야 할 청년세대들이 나아갈 길이 열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찾지 않고 있을 뿐이다. 모두들 다시 그 길을 찾아 걸음을 재촉해야 할 때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