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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기자에서 국회의원으로…부친 꿈 대신 이룬 정연욱

기사입력 : 2025년01월16일 17:00

최종수정 : 2025년01월16일 17:00

'부산 사나이' 정연욱 "부친도 법대 출신, 자연스레 법조인 길 생각"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동아일보 입사…"85학번 시대적 고민들 있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한나라당 당무감사 결과' 단독 보도로 반향
"은사는 故 박세일 교수…한국 정치의 새로운 모티브 제공했다 자부"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과 정치 입문 과정 및 가치관에 대해 진솔하게 소개했다.

정 의원은 16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좌우명을 묻는 질문에 "거창한 건 없다"고 답했다. 다만 "좌절하고 이제 고개 숙이고 이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던 그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접했던 '알을 깨라'라는 표현을 지금도 의미있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은 "판단은 빨리 하지 않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30여 년간 언론인의 삶 이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회상했다. 문장의 강조점은 '무모'가 아닌 '도전'이었다. 정 의원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며 "대한민국을 어떻게 더 키워나갈 건지, 업그레이드시킬 건지가 정치의 영역"이라고 역설했다.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난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학사를 마치고 1991년 동아일보에 입사, 32년동안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총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당무감사 결과' 자료를 단독 보도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한국언론대상을 수상했다.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2025.01.16 right@newspim.com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 보도본부 정치부장을 비롯해 시사프로그램인 '쾌도난마' 진행 등 방송에서도 활약했다. 201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귀해 정치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칼럼을 게재하다가 2023년 12월 퇴직했다.

2024년 국민의힘 부산시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해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부산진구을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 과정에서 현역인 이헌승 의원에 패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후보였던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과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막말 논란으로 공천 취소되면서 3월17일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후보로 전략공천됐다. 개표 결과 50.33%를 득표하며 더불어민주당 유동철 후보(40.47%), 무소속 장예찬 후보(9.18%)를 따돌리고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소속 상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다.

다음은 박 전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이바름 기자, 이하 이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정치부 이바름 기자입니다. 오늘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스웨덴 린네대학교 최연혁 최 교수 모셨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네 안녕하십니까?

(이 기자) 오늘은 '이재명은 안 됩니다' 현수막의 주인공이시죠? 이제는 '이재명 저격수' 부산 수영구 국회의원 정연욱 의원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 교수) 어서 오십시오.

(이 기자) 의원님 사실 기자 출신이시고 방송 진행도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사실 자리가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정 의원) 아닙니다. 저는 이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자) 의원님 이력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부산에서 졸업을 하셨거든요. '부산 사나이'라고 불리시는데 학창시절 겪었던 뭐 특별한 경험이나 추억 같은 게 있으실까요?

▲(정 의원) 제가 태어나서 그 다음에 초등학교, 중·고, 12년 다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바로 대학으로 와서 이제 서울 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제가 아직 뼛속 깊이 부산 사나이라는 건 지울 수가 없는 거죠.

(최 교수) 부산 사나이의 특징이 뭡니까?

▲(정 의원) 거칠다는 지적도 받습니다만 약간 좀 선이 분명하다고 그럴까요. 좀 말이 짧죠. 뒤끝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이 기자) 그러면 혹시 유년 시절 가정 환경은 어떠셨는지 좀 궁금하거든요.

▲(정 의원) 네, 뭐 유복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무난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 중반에 아마 저희 아버님이 와병을 하셔서 좀 이렇게 어려워진 적은 있습니다. 그래도 뭐 버틸만 했습니다.

(이 기자) 20살이 되면서 대학을 서울로 진학을 하셨거든요. 서울대 법대에 입학을 하셨는데 당시에 그럼 장래 희망이 법조인이셨나요?

▲(정 의원) 네, 저희 아버님도 법대 출신이기도 해서 저도 이제 자연스럽게 저 개인적으로도 이제 법조인의 길을 한번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는 대개 골목대장 출신이었습니까? 그런 성향이었습니까? 아니면 뭐 조용히 책을 읽는 스타일이었습니까?

▲(정 의원) 어떻게 보면 골목대장이라기보다는 그냥 누가 봐도 그냥 모범생 그런 이미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활달하게 다녔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모범생 이미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 어떤 분이 가장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정 의원) 아무래도 아버님입니다. 아버님은 이제 법대 출신이긴 했지만 영어 교사를 하셨고, 하시다가 당시에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생활을 하셨습니다. 출마 준비까지 하셨는데 그 무렵에 와병을 하셔가지고 출마를 접게 된, 좀 아픈 기억이 제 고등학교 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대학을 가고 이후에 모든 제 삶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기억은 계속 오래 남았습니다.

(최 교수) 그럼 아버님의 꿈을 실현하신 거네요?

▲(정 의원)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기자) 그러면 이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셨는데 졸업 후에 동아일보에 입사를 하셨거든요. 그때부터 30년 넘게 언론인의 길을 걸으셨는데 계획을 하셨던 걸까요?

▲(정 의원) 85학번이기 때문에 갖는 약간의 80년대 대학생들이 갖는 아마 시대적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부분이 저에게 있어서는 제가 평생 갖고 가야 되는 제 대학 시절이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이 기자) 정통 기자의 삶을 사셨더라고요. 기자 이력을 보면. 이제 사회부 기자로 시작을 하셨고 정치부 기자로 가셔서 청와대 출입하셨고 또 법조팀장을 거쳐서 정치부장 논설위원까지 하셨거든요. 또 방송 진행도 하셨고. 이게 소위 '잘 나가는 기자'라고 다들 알고 있는데, 당시의 삶을 좀 기억을 하고 계십니까?

▲(정 의원) 기자들은 잘 나간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건 같이 고생하는 '원팀'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누가 잘 나간다 못 나간다 그런 얘기할 건 아닙니다. 특히 정치부장을 방송, 신문을 다 해봤기 때문에 느끼는 현장에서 지금도 이제 그 후배들과 간혹 보기는 하지만, 언론인이나 기자 현장 취재라는 건 팀웍으로 같이 가야 됩니다. 그게 같이 가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를 뭐 잘 나왔다 못 나왔다 그렇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최 교수) 기자로서의 사명도 필요할 것 같고요. 또 기자로서의 자질도 필요할 것 같은데 특히 이제 자질 면에서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셨나요?

▲(정 의원) 글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최 교수) 잘 쓰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정 의원) 제가 평가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최 교수) 본인 스스로도 그래도 재밌다, 글 쓰는 게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그런 나름대로의 자체 평가가 있지 않을까요?

▲(정 의원) 저는 그렇게 평가했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 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대한도로 제 진심을 담아서 쓰려고 했고 그렇게 취재를 했고요. 책은 많이 읽었습니다. 여러 고등학교 시절에도 웬만한 세계문학 과정은 제가 따로 다 읽고 싶었고 읽었고요. 군에서도 저도 차트병을 했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건 저도 자신 있었습니다. 사명감이라는 부분은 제가 그렇게 거창하게 얘기할 건 없지만 기자라는 게 그런 겁니다. 아시겠지만 뭔가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접근할 때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거 아닙니까? 저희는 이제 어떤 기사를 쓸 때 이게 좋든 싫든 반응이 나옵니다. 그걸 갖다가 어떤 사태를 해결해 줬거나 뭐 진상을 파헤쳤거나 즉각적인 반응이 올 때 나는 그 약간의 희열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자들의 그 엔돌핀은 거기서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부분이 조금씩 사회가 조금씩은 나아가는 한 발자국씩 이렇게 나가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거, 아마 그건 기자들이 갖는 가장 큰 사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 교수) 내가 이 기자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어떤 면을 좀 바꿔보겠다든지, 아니면 뭐 정론 언론을 한번 내가 한번 나름대로 또 기여를 해 보겠다라는 그런 나름대로 각오가 있으셨나요?

▲(정 의원) 네, 있었죠. 특히 저는 주로 정치 현장에서 많이 뛰었기 때문에 정치권의 변화, 정치권이 조금은 나아져야 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항상 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제가 가장 큰 나름대로 제가 회심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제가 2004년도 한나라당 현장반장을 하면서 썼던 기사가 그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당무감사 문건을 저희가 폭로한 게 있었습니다. 그게 이제 그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의 당무감사 결과를 A·B·C·D·E 등급을 나눠서 그게 이제 그 결과가 공천 자료로 즉각 활용되는 거기 때문에 그 데이터 자체가 아주 민감했던 숫자입니다. 그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었습니다. 과연 이 당무감사 A·B·C·D·E 등급이 과연 제대로 매겨진 것인지, 어떤 근거에서 나왔던 건지 이 부분이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정 의원) 그러니까 좀 편의적으로 어떤 부분을 좀 이렇게 유리하게 봐주고 말고 하는 이게 좀 우리가 속된 말로 표현하면 '마사지를 한다'는 그런 표현을 쓰죠. 그런 표현이 그런 것들이 가미가 되니 그럼 이 당무감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나왔고 이런 식의 당무감사가 의미가 있느냐, 현역 의원 100명 정도의 전화가 몰려와서 휴대폰을 제가 받지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모든 아마 웬만한 정당은 당무감사 지역구 조사를 하면서 그 결과를 공천자료로 활용을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도 공정성을 기여할 수 있는 당무감사 자료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기자) 사회부나 정치부 경험을 하시면서 또 기억에 남는 기사나 아니면 인터뷰이가 뭐 있을까요?

▲(정 의원) 많은 부분에 대해서 저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분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제 은사이기도 했던 그 박세일 교수님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이제 정치권에 들어오는 과정, 2004년도 들어오시고, 그 중간에 이제 결국 정치적 이렇게 좀 이견이 있어서 나가시고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정치가 약간 속된 표현이죠. 패거리를 지어서 다니는, 그러니까 진영이라기보다도 진영의 가치라도 제대로 있으면 되지만, 그냥 이렇게 사람들이 뭉쳐 다니는 옛날에 3김식 정치에 있었다면 하나의 이제 진영의 가치를 놓고 이념을 한번 추구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될 하나의 국가적 어젠다를 고민하는 하나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정 의원)저는 박세일 교수께서 정치권에 들어오는 과정부터 많은 얘기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가 한 발짝 나가가기 위해서는 이념적 가치나 보수의 가치도 정립을 해야 된다, 그런 부분은 많이 저도 공감을 했고요. 그래서 선진화라는 얘기도 나오고 선진화가 이제 산업화, 민주화 그다음 넥스트 선진화로 가는 국가적 목표를 놓고 각 분야별로 어떻게 정리를 해 나가야 될지, 물론 현실 정치는 그게 바로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어려운 한계는 있었지만 그런 정도의 정치적 어젠다를 걸 수 있는 새로운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한국 정치의 새로운 좀 모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나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자부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 기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어떤, 보수도 마찬가지고, 정치적인 어떻게 보면 입문의 기회가 조금 됐다 하는 거는 뭐 부인할 수 없겠습니까?

▲(정 의원) 입문이라고 할 수는 없죠. 저는 이제 기자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기자도 어느 정도는 이제 사회적 여러 가지 이슈에 Involve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이제 그렇게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한 것이죠.

(이 기자) 30년 동안 기자 생활로 사명감을 가지시다가 작년 국민의힘 부산시당에 입당하면서 이제 정계에 발을 들이셨잖아요. 당시에 정치인 정연욱이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어땠습니까?

▲(정 의원) 기자나 언론인이라는 건 제3자적 좀 객관적,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으로 항상 기본적인 이 전제가 바탕에 깔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 보면 항상 균형이라는 걸 찾게 되고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불가피하게 그걸 요구받게 되고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 숙명이고 언론이. 과연 그렇다면 과연 그 길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저는 좀 했습니다. 고민도 했고 또 이제 뭐 수많은 저희 언론 동지들이 있는 것이고. 저는 좀 이 부분이 더 좀 한 발자국이라도 이렇게 진행이 되는 과정은 뭐 결국은 정치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는 국민적 비난과 비판의 항상 대상이 되고 있지만 정치를 통해서 사회가 원래 어차피 한 발자국 나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한번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했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인생을 표현해 주는 혹은 내가 나는 이것이 신조로 한다 혹은 믿음이나 원칙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들이 있는지요?

▲(정 의원)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여러 가지 소설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조금 숙독을 했습니다. '알을 깨라'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이게 알을 깨고 나와야 된다는 표현들이 그 헤세가 얘기하는 몇 가지 강조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데미안이 이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여러 가지 묘사가 나오는데. 저는 군대도 현역으로 다녔습니다. 저는 강원도 철원에서 FM대로 군 생활을 하고 나왔습니다. 아마 좀 법대생 치고는 좀 드물 겁니다. 아시겠지만 기자 생활 초년병은 무척 힘듭니다. 잠도 거의 뭐 한두 시간 만에 못 자고 그런 생활을 했고. 결국은 일련의 과정에서 좀 이렇게 이렇게 헤쳐 나간다는 그런 느낌으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권 도전도 저로서는 좀 상당히 무모하다 싶은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고 제가 지켜는 봤지만 현실에서 뛰어보는 건 다른 거거든요.

▲(정 의원) 중도에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 또 이렇게 상대 진영과의 또 싸우는 과정. 그래서 제가 조금 헤쳐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좀 무모하리만큼 도전했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좌우명이나 좋아하는 단어나 뭐 이런 건 있나요?

▲(정 의원) 저는 거창한 건 없습니다. 다만, 좌절하고 이제 고개 숙이고 이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합니다. 저는 판단은 빨리 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스타일입니다. 제가 뭐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가급적이면 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기자) 작년 한 해가 의원님의 삶에 큰 의미였을 것 같은데, 어떤 한 해였는지 궁금합니다.

▲(정 의원) 저로서는 작년 한 해가 10년간 벌어질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압축해 놓은 게 아니었나. 1년이 10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뭐 선거 준비부터 선거를 치르고 나서 국회 생활을 하고 그리고 또 지난 연말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이 한꺼번에 벌어졌기 때문에 저도 지금 상당히 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쉬는 곳에 가서 항상 저는 자기 정리를 합니다. 이게 좀 어떻게 풀어야 될지 그리고 이게 어떻게 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최 교수)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아마 이걸 시청하시는 분들이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알에 갇혀서 어떻게 이걸 깨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 좀 전해주시죠.

▲(정 의원) 45년 해방 이후에 올해 그럼 80년이 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가장 최빈국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떻게 전쟁을 치른 나라가 이렇게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가장 어려운 생활을 산업화를 거치면서 헤쳐 나왔고. 그러면서도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민주화까지 완성해서 이 나라를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이게 누구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을 부러워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절대 폄훼해서도 안 되고 폄훼받을 나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스스로 절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를 자기 비하해서도 안 되고 그럼 이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저는 그게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문에서 경제도 그렇고 말씀하신 하나의 그 가치나 이념적 부분에 민주주의, 제도적 성숙의 문제도 같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진짜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돼야 됩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 어제 발표한 거를 봤더니 대한민국이 수출 기준으로 세계 5위더군요. 참 대단한 국가죠.

▲(정 의원) 우리가 과거는 잊을 수 없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고, 그리고 과거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지만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뭐라고 다툴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하나의 거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계속 나가야 되니 이걸 지켜야 된다는데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더 키워 나갈 건지, 그리고 이걸 한 단계 업그레이드 어떻게 시킬 건지 결국 이게 정치의 영역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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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신공항 시공사 교체되나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장기간 표류한 부산 가덕도신공항 사업의 정상화를 위해 국토교통부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건설 컨소시엄(현대건설,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등) 교체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시공사가 전면적으로 바뀔지 주목된다. 2029년 개항이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국토부가 사업 진행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공사측은 공사기간 연장, 공사비 증액을 포함한 게약조건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덕도신공항 공사 입찰 당시에도 우선협상대상자가 수의계약으로 결정된 만큼 국토부가 재입찰을 진행해도 대체 시공사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결국 양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 상당기간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가덕도신공항 공사 개요 및 국토교통부, 현대건설 컨소시엄 간 부지조성공사 기본설계 조건 입장 차이.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현대건설 "국토부 공기·공사비 못 맞춰… 안전 1순위" 8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가덕도신공항 기본설계안 변경 사유를 담은 시공단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수의계약 취소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개항 연기는 막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이번 주 중으로 정부에 공사기간을 기존 7년에서 9년으로 연장해야 하는 사유를 담은 설명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컨소시엄은 지난주 국토부에 기본설계도서를 제출하면서 공사기간을 108개월로 제시했다. 국토부는 즉각 입찰공고에 제시된 공기(84개월)보다 2년이 더 필요한 구체적 사유와 설명자료 제출 등을 요구했다. 가덕도신공항 공사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일대 666만9000㎡에 활주로와 방파제 등을 포함한 공항 시설 전반을 건설하는 10조5300억원의 규모 사업이다. 당초 2035년 6월 개항으로 추진됐지만 '2030 부산 세계 박람회'(엑스포) 유치 국면을 맞아 5년 이상 당겨졌다. 엑스포 유치가 무산된 후에도 정부의 가덕도신공항 조기 개항 방침은 그대로 유지됐다. 현대건설은 최대 깊이 60m에 달하는 대심도의 연약 지반을 매립해야 하는 공항 부지 특성상 지반 개량을 위해 해상 구조물인 케이슨을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케이슨은 육상에서 만든 뒤 해상으로 옮겨 바다에 가라앉힌 다음 안에 흙이나 모래를 채우는 방식으로 설치한다. 이 과정에서 약 7개월의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사업지 주변은 태풍이 발생하면 파도가 12m에 이르는 먼바다에 해당하는 지역이기에 높은 파도에 대비한 안전 시공법도 적용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보고서에도 "파랑의 영향을 크게 받는 12월~2월이나 태풍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7월에는 해상작업일수가 한 달에 10일 미만"이라며 "해상운반, 거치, 케이슨 속채움 등의 해상작업이 어렵다"고 적혀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6개월간 25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사업성을 재검토한 결과 안전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설계하려면 108개월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며 "현재로서는 기본설계를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공사비 역시 정부가 내놓은 10조5000억원보다 최소 1조원을 증액해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 형평성 안 맞아 시공단 바꾼단 국토부… 업계 반응은 "글쎄" 부산시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적정 공사 기간과 현장 여건, 시공 역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건설 계획을 제시해달라"며 "지역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신속히 착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국토부도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 컨소시엄이 기본설계 기간을 준수하지 않으면 재입찰을 진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즉시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구성해 차회 입찰방식 등을 신속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 또한 지난달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대건설이 국토부가 내건 조건에 맞춰 기본설계를 보완해온다면 그에 맞춘 조치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플랜B'를 가동할 수밖에 없다"며 재입찰 검토에 힘을 실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부터 공기 준수를 주요 요건으로 내세운 만큼 현 컨소시엄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입찰 의사를 보였다가 포기한 타 건설사와의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분위기다. 업계에선 국토부가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실격 처분(DQ)을 내리고 재입찰을 진행하는 것보다 공기 협의를 하는 방향이 사업 속도를 높이는 데에 더욱 유리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항 건설 자체가 고난도인데다 해상 매립까지 수반하는 공사임에도 주어진 기간이 과도하게 짧다 보니 선뜻 손을 드는 회사를 찾기 어려울 가능성이 커서다. 최초 입찰 때도 이 같은 이유로 네 차례나 입찰이 유찰된 바 있다. 당시 공동도급 제한 조건이 과도하게 까다롭다는 비판이 일었다. 공사 규모가 10조원 이상인데 10대 건설업체 중 2개 업체를 초과해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없어 공사를 마치기 위한 위험 부담과 비용이 크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토부는 3개사까지 참여 가능한 것으로 조건을 수정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기가 당초 계획보다 절반가량 줄어든 데다 해안가 공사라 지반 침하 문제도 있어 난도가 매우 높다"며 "금액을 떠나 이런 공사는 위험 부담이 커서 참여하려는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또한 공사기간 연장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박영강 동의대 명예교수는 "파도가 많은 외해에 속하는 가덕도 앞바다에 플로팅(해상에 부유하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방식)과 같은 획기적인 공법을 적용하는 데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훈구 KDI 재정투자평가실장은 "해외 유사공항 사례에서 보듯이 해상공항은 사업기간이 6~9년 정도 소요된다"며 "통상 매립공사에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연약지반 처리, 호안공사(매립지 테두리를 만드는 공사) 등에도 다수의 인력이 장기간 사용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5-05-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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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첫날 교황 선출 실패...검은 연기 [뉴욕 런던=뉴스핌]김근철· 장일현 특파원=새 교황 선출을 위해 7일(현지시간) 시작된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 회의)에서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9시쯤 콘클라베가 열리고 있는 바티칸시티 시스티나 성당 굴뚝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는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 133명의 첫 투표에서 선거인단 3분의 2 이상인 최소 89명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없었다는 의미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고 있는 바티칸시티 시스티나 예배당의 지붕 굴뚝에서 7일(현지시간) 밤 교황 선출 실패를 알리는 검은 색 연기가 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kckim100@newspim.com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단의 3분의 2 이상 지지로 새 교황이 선출되면 교황청은 투표 용지를 태워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흰 연기를 피우고, 아니면 검은 연기로 투표 결과를 알린다. 첫날 회의에 새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추기경들은 시스티나 성당에 계속 머물면서 8일부터는 오전과 오후 각각 두 차례, 하루 최대 네 차례 투표해 제267대 교황을 뽑게 된다. 지난 2013년에는 다섯 번째 투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다. 콘클라베는 가톨릭 규정에 따라 교황이 선종한 뒤 15∼20일 사이에 시작한다. 콘클라베 방식의 교황 선출은 1274년 그레고리오 10세가 정립했다. 정치적 외압이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추기경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차기 교황을 뽑을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시스티나 성당은 19세기 후반부터 콘클라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콘클라베에서는 모든 추기경이 후보인 동시에 유권자이다. 따로 후보를 정하지 않은 채 각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적어 내며,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벽화가 있는 제단 앞에서 비밀 투표를 반복한다. kckim100@newspim.com 2025-05-08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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