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4시간 내 우크라 전쟁 종식" 공언… 젤렌스키 반발 가능성
이란에 '최대 압박' 하면서 이스라엘엔 전폭적 지원할 듯
유럽 각국은 국방비 대폭 늘리고, 독자적 유럽군 창설 논의 가속화 전망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미 대선에서 예상 밖 압승을 거둠에 따라 글로벌 안보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 동안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을 즉각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실제로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이른바 '두 개의 전쟁'에 적극 개입하게 될 경우 전쟁의 양상은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한국 등으로 하여금 군사비 지출을 크게 늘리게 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동맹국들과 충돌하거나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다.
영국 BBC는 "트럼프는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과 전략이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면서도 "그의 백악관 복귀는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겸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난 6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라신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트럼프 "24시간 내 우크라戰 종식"… 젤렌스키 강력 반발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가 내건 핵심 슬로건 중 하나였다.
트럼프는 작년 1월 뉴햄프셔 살렘에서 열린 공화당 연례행사에서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평화협정을 맺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월 CNN 타운홀 생방송에서도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을 위해 푸틴과 만날 것"이라며 "24시간 내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는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의 TV 토론에서 "당선되면 취임 전에 해결할 것"이라고도 했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트럼프의 협상안이 러시아 측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평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고, 우크라이나와 볼로디미르 대통령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는 "젤렌스키는 종전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전쟁 시작에 일조했다"고도 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위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그는 지난 9월 렉스 프리드먼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구체적 아이디어가 있지만 그걸 지금 말하면 그 아이디어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면서 "일부 아이디어는 깜짝 놀랄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종전 방안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현재 상태에서의 종결'을 제시하고,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무기 공급 중단을 내걸어 압박을 가하는 내용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지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기습 침공한 이후 동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5분의 1 정도를 점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지난 8월 러시아 남부서 접경 지역인 쿠르스크에 대한 전격 작전을 단행해 한때 서울 면적의 2배 이상을 장악했다. 최근에는 러시아군이 이중 절반 가까이 탈환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은 지난 9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현재 점유한 영토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종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비무장 지대를 설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우크라이나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현 상태로의 종전은 러시아가 주장하는 내용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모든 영토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1기 때 외교안보 분야에 몸담았던 참모들은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계속 무기를 공급해야 한다"면서 "다만 이런 지원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평화 협상에 나서는 것을 조건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참모들은 러시아에 대해선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염원 중 하나인 나토 가입을 지연시키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는 유럽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변수이다. 트럼프가 러시아 입장을 많이 고려해 종전 협상을 추진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유럽의 반대가 크게 표출될 수 있다.
◆이란에 '최대 압박' 전략… 가자 전쟁 종식 유도할 듯
트럼프는 대선 기간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한다"는 원칙론을 반복하면서도 구체적인 구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줄곧 "중동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한편으론 이란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한편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자 지구와 레바논에서의 전쟁 행위를 끝내려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는 유세 때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그 이유로 이란에 대한 자신의 극대화된 압박(maximum pressure)을 거론했다.
이란에 파상적인 압박을 가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정파인 하마스와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하마스·헤즈볼라 등 프록시(proxy·대리세력)의 최대 후원자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1기 집권 때 강력한 경제 제재를 동원해 이란을 곤경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지난 2018년 '이란 핵 합의'에서 일방 탈퇴한 뒤 이란에 대대적인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후 이란은 4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과 원유 수출 제한, 세금 인상, 물자 부족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트럼프가 '제2의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란 고립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
그는 재임 때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아브라함 협정'을 중재했다. 당시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이해 관계가 충실히 반영된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를 "이스라엘이 백악관에 가졌던 (역사상) 가장 좋은 친구"라고 부른다.
로이터 통신은 "아랍과 서방 외교관들은 트럼프가 이란 경제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란의 핵 시설 타격과 요인 암살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군사비 늘리고 독자군 창설 논의 가속할 전망
트럼프 당선이 확정되면서 유럽 주요국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방장관은 선거 결과가 나오자 이날 오후 긴급 양자 회담을 개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모두 함께 유럽 강화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실감한 유럽 각국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군비 강화를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럽 국가들이 군사비를 더 늘리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지난 2월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끌어올리지 않을 경우 "러시아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해 동맹국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나토 회원국들은 지난 201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방위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지만 작년까지 이 목표를 달성한 나라는 10개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럽 회원국들은 국방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 나토 사무총장은 최근 "올해 2% 목표를 달성하는 나토 유럽 회원국은 23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한 발 더 나아가 목표를 3%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국가방위군협회(NGAUS) 총회에서 "2%는 세기의 도둑질(the steal of the century)"이라고 비난하면서 "3%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유럽을 지키는 데 돈을 내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며 "나는 동맹국이 제 몫을 하도록 만들겠다. 그들은 공정한 분담(fair share)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현재 GDP 대비 방위비가 3%를 넘는 나라는 폴란드(4.3%)와 미국(3.3%), 그리스(3.1%)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유럽이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군대 창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럽에선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의 독자 군대 창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국가는 20개국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은 내년까지 5000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하는 데도 의견을 모은 상태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최근 몇년 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재무장을 선언했다. 작년까지 GDP 대비 1.4%에 불과했던 국방비를 올해 2%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들은 "트럼프가 촉발한 '나토 무용론'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EU가 자체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는 명분이 생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