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컬처톡] 유쾌하고 흥 넘치는 향연의 법정…서울시극단 '트랩'

기사입력 : 2024년09월27일 18:05

최종수정 : 2024년09월27일 18:05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 서울시극단(단장 고선웅)의 신작 '트랩'이 가장 상징적인 모의재판을 통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죄와 양심, 죄의식을 들여다본다.

서울시극단의 하반기 첫 작품 '트랩'이 27일 개막했다. 이날 프레스콜에서 전막 시연을 통해 공개된 작품은 스위스 출신 소설가이자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소설 '사고'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1979년 초연된 유럽 연극의 극한의 부조리와 기막히게 담아낸 현실 인식을 느낄 수 있다.

서울시극단 '트랩'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트랩'에서는 작은 사고로 주인공 트랍스(김명기)가 시골 마을의 한 저녁식사에 초대받게 되고, 전직 판사인 집주인(남명렬), 전직 검사 초른(강신구), 전직 변호사 쿰머(김신기), 전직 사형집행관 필렛(손성호)과 모의 재판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가사도우미 시모네(이승우)의 에스코트와 화려한 저녁식사, 뛰어난 피아노 연주를 즐기며, 트랍스는 죄없이 살아왔다고 믿었던 인생 궤적을 훑는다.

트랍스는 섬유회사 판매 총 책임자로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다. 4명의 아들을 기르느라 힘겹게 살아왔지만 떳떳하지 못한 일은 하지 않았다 자부한다. 네 명의 전직 법조인을 만난 그는 게임처럼 시작한 모의 재판에서 끊임없이 의심받고, 어떤 죄를 지었는지 추궁당한다. 술과 맛있는 식사, 떠들썩한 파티에서 점차 흥이 오른 그는 전혀 죄라고 생각지 않았던 과거의 일들과 당시 심경까지도 모두 털어놓는다. 그가 경멸했던 상사 기각스의 죽음과 그 전후사정을 이야기하며, 트랍스는 급기야 스스로의 무결함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서울시극단 '트랩'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전직 판사였던 집주인을 비롯해 검사, 변호사, 사형집행인은 트랍스를 마구 부추긴다. 고급스러운 만찬을 즐기며 그에게 지금의 성공한 지위를 얻기까지 저질러온 죄를 추궁한다. 네 사람은 그를 코너로 몰며 일명 '뇌피셜'을 동원하기도 한다. 검사는 트랍스가 거쳐온 일거수일투족을 하나씩 짚어가며 그 의도를 묻는다. 트랍스는 "나는 죄를 지은적이 맹세코 없다"고 주장하지만, 의심을 살 만한 자백이 터져나올 때마다 변호사는 "조심해!"라고 소리친다. 

'트랩'은 남성 6인극, 심지어 중후한 중장년 배우들만 출연한 연극임에도 재밌고 유쾌하고 흥이 넘친다는 점에서 놀랍다. 스릴러의 형식을 취한 덕에 중요한 단서가 등장할 때마다 배가되는 극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극중 나오는 '법정'과 동음이의어인 '향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만찬장은 그야말로 트랍스를 위한 파티다. 고조되는 갈등과 추궁, 트랍스의 부인, 궁지로 몰리고 전환되는 인물의 서사와 함께 관록의 배우들의 티키타카는 그야말로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트랩'의 연극적 공간, 만찬장이 우리가 아주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모든 장소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친구나 가족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과 식사를 하거나, 술을 진탕 마시고 고무되는 순간은 스스로 나도 모르게 경계가 풀어질 수 있는 자리다. 법조인의 의상을 입은 네 사람의 존재는 그 어떤 일상의 순간에도 누군가의 발언을 제 멋대로 해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모두를 의미하는 듯하다. 게임에 불과했던 모의재판이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 전체로 확대되는 순간이다. 

주인공 트랍스가 거쳐가는 감정의 궤적도 독특하다. 성공한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해왔다는 그의 자부심은, 네 사람의 추궁과 의심 앞에 자존심과 객기로 변해간다.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으며 감상에 젖은 그 때부터 그의 '진실의 입'은 점차 열리기 시작한다. 아주 솔직하고 숨김없이 과거와 심경을 꺼내 보이는 트랍스는 모두의 환심을 살 수는 없어도, 모두의 공감을 사기 충분하다. 그가 정말로 죄를 지었는지 판단하는 일 역시 극과는 별개로 관객들의 몫이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유죄'를 향해 몰아가는 전직 법조인들에겐, 그들이 반복해서 말하는 '누구나 죄를 짓는다'는 주장에 비추어 그들은 트랍스에게 '떳떳하게 살지 못했다'고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약 50년 전에 초연한 연극임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법조 이슈들과도 연결성이 느껴진다. 트랍스를 몰아가고, 결국은 당사자가 그 주장에 동화되는 행태를 두고 관객들 역시 판단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서울시극단 '트랩'의 한 장면. [사진=세종문화회관]

극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집주인이 따는 와인이 고급스러워질수록 트랍스의 사건은 심각해져 '살인' 혐의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 신 직전에 변호인의 최후 변론을 듣고 모욕에 차 자신의 유죄를 주장하는 트랍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짙은 씁쓸함을 안겨주는 블랙코미디 그 자체다. 그가 살아온 모든 성과를 인정하고 추켜세워준다면 살인 유죄를 주장해도 받아들이고, 그의 삶을 깎아내리고 부정한다면 '무죄 주장'도 거부하는 트랍스는 첨예한 사회적 갈등 국면에서 과연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모르는 이들과 겹쳐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결말 직전의 춤추는 트랍스는 일면 홀가분해보인다. 자신이 유죄여서가 아니라, 성공을 위해 달려오며 차곡차곡 쌓였던 죄책감을 한 방에 털어낸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맞이한 충격적인 결말 앞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관객들은 고민하게 된다. 트랍스가 결국 자백하고, 춤을 추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삶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jyyang@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남편 신분증으로 대리투표자 구속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 배우자 신분증으로 대리투표를 한 선거사무원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염혜수 판사는 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60대 여성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증거 인멸과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 배우자 신분증으로 대리 투표를 한 혐의를 받는 60대 선거사무원이 1일 구속됐다. 사진은 지난 5월 29일 한 유권자가 사전투표하는 모습. [사진=뉴스핌DB] A씨는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2동 한 사전투표소에서 남편의 신분증으로 투표용지를 발급받아 대리 투표를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약 5시간 뒤 자신의 신분증으로 다시 투표했는데 동일인이 두 번 투표하는 모습을 본 참관인의 신고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강남구 보건소 소속 계약직 공무원이던 A씨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사무원으로 위촉돼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선거법 제248조는 성명을 사칭하거나 신분 증명서를 위조·변조해 사용하거나 기타 사위의 방법으로 투표하거나 하게 하거나 투표를 하려고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특히 선거사무에 관계있는 공무원이 사위투표 행위를 하거나 하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A씨를 공직선거법상 사위투표 혐의로 고발하고 사전투표 절차를 방해할 목적으로 배우자와 공모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A씨 배우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30일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이날 오후 1시30분께 법원에 출석하며 '대리 투표가 불법인 것을 몰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혀 몰랐다. 순간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답했다. shl22@newspim.com 2025-06-01 19:37
사진
극우단체 댓글 여론 조작 의혹 [서울·청주=뉴스핌] 한태희 지혜진 기자 = 극우 단체가 댓글 조작팀을 만들어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반란 행위"라고 규정하며 국민의힘과의 연관성도 거론했다. 국민의힘은 댓글 조작팀은 김문수 대통령 후보뿐 아니라 당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평택=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1일 경기도 평택시 배다리 생태공원 앞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2025.05.31 yooksa@newspim.com 이재명 후보는 31일 경기 평택 배다리 생태공원에서 선거 유세에서 "국민 여론을 조작하려는 것은 사실상 반란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어 "댓글을 조작하고 가짜뉴스를 쓰는 행위를 용서할 수 있나"라며 "마지막 잔뿌리까지 다 찾아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댓글 조작팀이 국민의힘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명 후보는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힘 관련성이 높다는 것으로 국회의원이 그 단체를 오갔다는 말도 있고 가짜 기자회견을 함께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나라 뒤집어질 중범죄 행위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거들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충북 청주 오창프라자 앞 광장에서 긴급 브리핑을 통해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은 저열한 여론조작에 어디까지 가담했는지 실토하라"고 말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12·3 쿠데타의 실패에도 또다시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극우 내란 카르텔의 여론조작을 규탄한다"면서 "김 후보와 국민의힘은 여론 조작 공작에 어디까지 가담했는지 밝혀야 하며 보도에 거명된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조정훈 의원은 직접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릉=뉴스핌] 최지환 기자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3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중앙시장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 현장에서 이재명 후보와 부인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5.05.31 choipix16@newspim.com 국민의힘은 반박문을 내고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중앙선대 미디어법률단은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는 '리박스쿨'이나 '자손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민주당이 드루킹 댓글조작단을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허위 사실로 해당 단체들과 국민의힘을 억지로 연관시키고 있는데 무리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디어법률단은 "뉴스타파와 민주당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쓴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며 "유권자 민심을 왜곡할 수 있는 불공정 보도,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온라인매체 뉴스타파는 전날 '리박스쿨'이라는 보수단체가 '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자손군)'를 만들어 이재명·이준석 후보를 비방하고 김문수 후보를 추켜세우는 댓글을 올리고 댓글을 올린 사람에게 초등학교 늘봄학교 강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여론 조작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ace@newspim.com 2025-05-31 17:07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