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오락가락 대출정책 행보에 실수요자·금융권 불만 고조…정책 대출이 가계 부채 급증 원인
신생아 특례 소득기준 완화 등 변수…일관성 없고 일차원적 대출 규제는 또 다른 부작용
[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대출 때문에 아우성이다. 당장 아파트 잔금을 치러야 하는 집주인들은 잔금 대출이 사실상 막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세입자라도 들여 잔금을 치르려 해도 '조건부 전세 대출' 제한에 걸려 세입자 구하기가 쉽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다.
은행들은 은행대로 금융당국 수장의 말이 바뀌는 '냉온탕 규제' 발언에 갈피를 잡지 못해 은행 창구마다 혼선이 일고 있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수요자도, 대출을 해줘야 하는 공급자도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에 도무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총가계 대출 규모가 이미 경고등 켜진 지 오래 된 상황에서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집값 급등을 대출 급증 때문이라고 지목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국은 뭐라도 해야 하는 판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 6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수장이 한데 모여 가계 부채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사실상 대출 옥죄기 강화 기조를 밝히고 가계 부채를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관리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9.06 mironj19@newspim.com |
하지만 최근 임명된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나 금융권 혼선 논란을 일으켰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은 여전히 헷갈린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강력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기조를 피력하면서도 정부의 획일적 통제보다는 '은행권의 자율적인 대출 관리'가 우선임을 강조했다.
대출 혼란 이슈의 중심에 선 이 원장은 앞서 4일 은행의 가계 대출 실무자와의 간담회에선 "가계 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며 상황에 따라 가계 대출이 늘어나는 것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오히려 과도한 대출 규제 책임을 은행들에게 넘기며 대출의 유연성을 주문했다.
대출을 더욱 옥죄겠다는 것인지, 은행에게 자율권을 주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양 수장의 발언 이면에는 "알아서 대출 조이고 책임은 은행들이 져라"는 속내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에 예민해하면서도 정작 책임은 은행에 전가하는 듯한 발언들은 정부 당국자로선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가계 대출의 급증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집값이 오르니 주택 담보 대출(주담대) 규모의 절대 액수가 커졌을 것이고 거래량이 늘면서 대출 수요도 늘어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 신규 분양되는 아파트의 분양가는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집단 대출 액수의 규모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집값 급등의 배경을 따지자면 1년 반 넘게 상승세를 보이는 전셋값의 영향이 크다. 전셋값 상승으로 세입자들은 전세 대출 금액을 더 늘려야 하니 전체적인 전세 대출 규모도 늘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계 대출 급증의 원인 제공을 따져보면 정부 책임이 크다. 지난해 특례 보금자리론과 올해 신생아 특례 등 정부의 정책 대출이 주담대 증가의 원인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올해 주담대 증가액의 70%가 신생아 특례가 포함된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이라는 게 금융권 통계에서 드러나고 있다.
중산층과 인구 감소의 고육책으로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장려를 위한 정책 대출인 만큼 이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서울 집값의 급등을 두고 면밀한 분석보단 국지적 상승으로 치부하고 이에 대한 관리를 정부 스스로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특히 디딤돌과 버팀목 대출은 국토교통부의 소관이다. 특례 보금자리론은 총액 한도가 설정돼 있기라도 했지만 올해 이들 정책 대출의 규모는 거의 무제한급으로 풀리고 있다. 집값 급등세가 두드러졌던 7, 8월에 가계 대출 증가폭이 2016년 이후 최대 폭을 기록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신생아 특례는 여전히 변수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이어 내년까지 두 차례의 신생아 특례 대출 소득 기준 완화를 예고했다. 아직 구체적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대로 실행될 경우 가계 대출 급증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게 뻔하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7월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집값 상승을 추세적 상승이 아닌 '금융 장세' 때문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가계 대출의 70%가 정책 대출 결과로 분석된 만큼 국토부는 주무 부처로서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진현환 국토부 제1차관은 정책 모기지(대출) 부분을 추가 검토할 게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속도 조절 차원에서 총액과 소득 기준 완화 등을 재고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일관성 없고 일차원적인 대출 옥죄기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계층 간, 지역 간 양극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dbman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