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황정민 주연의 연극 '맥베스'가 예언 앞에 선 나약한 인간과 권력의 최후를 그린 고전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맥베스'가 공연 중이다. 배우 황정민, 김소진, 송일국, 남윤호 등이 출연하는 이 연극은 원작의 세 마녀를 다양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남성 캐스트로 바꾸고, 시대적 배경도 명확하지 않은 제3의 세계를 설정하면서 더 현대적이면서도 차가운 비극의 느낌을 살렸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맥베스'의 한 장면 [사진=샘컴퍼니] 2024.07.23 jyyang@newspim.com |
◆ 대극장에서 즐기는 셰익스피어 연극… 익숙한 배우들을 무대에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황정민)가 승전 후 동료인 '뱅코우'(송일국)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서 장차 왕이 된다는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되고 권력과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 속 계속되는 전쟁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어느 시대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극중 인물들은 총을 들고, 검은 군복에 스커트를 두른 채 등장한다.
황정민은 맥베스 역을 맡아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잔혹하고, 동시에 나약한 면을 드러낸다. 아내 레이디 맥베스(김소진)의 꾐에 넘어가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을 끝까지 주저한다. 결국 저지르고 난 후엔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며 살인을 반복하게 된다.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듯,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그의 눈빛엔 광기와 함께 극심한 불안함이 서려 있다. 시대적 배경을 현대적인 시점으로 바꾸었지만, 황정민이 읊는 고전 특유의 대사의 맛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감흥을 전달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맥베스'의 한 장면 [사진=샘컴퍼니] 2024.07.23 jyyang@newspim.com |
레이디 맥베스 역의 김소진은 남편보다도 야망이 가득 찬 마녀 같은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손에 묻은 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권력을 향한 욕망의 말로는 늘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물 중 하나다. 뱅코우를 연기한 송일국, 맥더프 역의 남윤호는 비주얼부터 믿음직한 존재감으로 신의를 지키고 소신껏 행동하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 모던함을 살짝 끼얹은 고전의 맛…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한정판' 무대
연극 '맥베스'의 양정웅 연출은 마치 콘크리트로 지어진 도시의 하수구 같은 욕망의 배출구를 무대에 구현했다. 양 연출은 앞서 "현대인들의 욕망의 하수구 같은 미장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곳을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와 그보다 더 시끄럽고 지저분한 욕망을 예언으로 읊어대는 세 마녀들의 활약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함께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선량한 맥베스가 내면의 욕망을 들춘 예언으로 파멸을 맞았듯 어쩌면 스스로의 가장 더러운 욕망을 간직한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연극 '맥베스'의 한 장면 [사진=샘컴퍼니] 2024.07.23 jyyang@newspim.com |
'맥베스'의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누가 뭐래도 황정민이다. 세 마녀 가운데 센터를 맡은 임기홍은 2막을 여는 익살스러운 연기와 뛰어난 몸 연기로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맥더프 역의 남윤호는 예상치 못했던 1인 2역을 훌륭히 소화한다. 조금은 괴짜 같은, 그러면서도 동시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 작품에서 호흡한다.
각색을 통해 원작의 설정을 흐려놓은 대신, 현대의 삭막한 콘크리트와 더러운 하수구 속을 흐르는 인간 욕망이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는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