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막''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등 해외영화제서 주목
'최후의 증인'은 박찬욱 등 후배 감독들에게 영감 줘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19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두용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감독으로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영화 '뽕'을 비롯하여 한국적인 향토색이 짙은 문예영화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경지를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영화 '뽕'의 여주인공 안협집 역 이미숙(오른쪽) [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자료실 제공]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2024.01.21 oks34@newspim.com |
'초분'(1977)과 '물도리동'(1979)을 시작으로 토속적인 소재의 영화를 잇달아 내놓은 그는 '피막'(1981)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4)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에 진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토속적인 문예영화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거머 쥔 '뽕'(1986)은 나도향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숙이 여주인공 안협집으로, 변강쇠로 유명한 이대근이 머슴 삼돌이로, 이무정이 남편 삼보 역으로 출연했다. 이미숙의 뇌쇄적인 연기로 에로영화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예술성은 남달랐다.
주인공 안협집은 먹고 살기 위해 뽕밭에서 동네 남정네들에게 치마를 올린다. 머슴인 삼돌이는 호시탐탐 안협집을 노리지만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다. 부아가 치민 삼돌이는 수시로 집을 비우는 남편 삼보에게 안협집의 매춘 행각을 일러 바친다. 이두용 감독은 안협집의 남편을 원작과 달리 노름을 일삼는 난봉꾼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 항거하는 독립운동가로 그렸다. 이미숙은 이 영화로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로 이미숙은 섹시한 여배우의 상징으로 부각됐으며, 많은 아류작을 양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젊은 시절 이두용 감독 [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2024.01.21 oks34@newspim.com |
또 다른 대표작 '피막'도 토속적인 샤머니즘과 에로티시즘이 결합한 수작이었다. 유지인과 남궁원이 주연한 이 작품으로 피막(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안치해 두는 외딴집)이라는 전통적인 소재로 해외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존재감을 알렸다.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원미경이 주연한 이 작품으로 조선 시대 유교적인 가부장제 아래 여성이 겪는 수난사를 그렸다. 당시의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페미니즘적인 사각으로 탄압받던 여성의 인권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이두용 감독이 만든 본격 범죄 스릴러이자 하드보일드 작품인 영화 '최후의 증인'은 박찬욱, 유승완 등 후배 감독이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꼽힌다. 김성종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과거 지리산 토벌대와 빨치산의 싸움이 현재의 살인사건과 오버랩 되면서 펼쳐지는 추리물이다. 이감독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펼쳐보였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이감독은 작고하기 전까지 영화 연출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지 않았다는 게 주변 영화인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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