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정우성이 '서울의 봄'으로 김성수 감독과 재회했다. 개인적인 욕망에 휩싸여 12.12를 일으키려는 세력에 맞서 본분과 신념을 지키려는 군인 이태신 역이다.
정우성은 '서울의 봄' 개봉을 앞둔 인터뷰를 통해 김성수 감독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이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은 허구를 덧댄 인물로 운신의 폭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만큼 애매모호하고 어려운 지점도 많았다.
"영화 보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니 기분이 좋아요. 일단 감독님 생각하니 그래요. 오랜만에 하시는 작품이라 잘되면 가장 좋죠. 배우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기도 해요. 촬영은 꽤 전에 끝냈지만 다시 영화를 보는 순간 이태신의 감정에 다시 이입했죠. 출연 전엔 '헌트'와 역할이 겹친단 생각에 고민이 많았어요. 정도나 이태신이나 동일인물을 대척점에 두고 있어서 감독님께 우려를 말씀드렸었죠. 물론 다른 캐릭터고 다른 관점의 해석, 다른 구성을 취하지만 관객들은 어쩌면 '정우성이 비슷한 연기하네'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서울의 봄'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3.11.22 jyyang@newspim.com |
정우성은 이태신을 온전히 이해시키는데 스스로를 장애물이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들은 모두 이태신은 그였어야 한다고 말할 법하다. 어떤 이슈나 사건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쉽사리 입장을 바꾸지 않는, 제 자리를 지키는 그의 태도에서 이태신을 발견한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김성수 감독 아니었다면 거절했겠죠. 감독님은 저를 배우를 넘어 영화인으로 만들어주신 분이에요. 젊은 나이에 경력도 얼마 안된 배우를 현장에서 동료로 대해주시고 배우로서의 이상의 작업을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격려해주셨죠. 영화인으로 더 확장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어요. 이태신을 마주했을 때 무엇보다 막연함이 크게 다가왔고 온통 안갯속, 망망대해에 있는 기분이었죠. 스토리의 구성 자체로 보면 이태신이 혼자 보이는 캐릭터라 더 그런 감정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정우성에게 과거 난민 문제에 대해 그가 인터뷰하고, 발언했던 영상들을 보여주며 '이태신'이라고 말한 사람이 김성수 감독이었다. 정우성은 처음에는 "감독님이 미쳤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막막했던 심경을 털어놓으며 웃었다.
"처음 제안하시고 참고하라고 주신 영상이 다 저인 거예요. 제가 인터뷰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가 이 사태에 놓인 이태신의 모습이었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조심스럽고, 강요하거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는 모습. 군복을 입은 이태신이란 사람이 자기 직무와 이 사태에 대해서 대처하는 자세, 엄청난 공격을 받으면서도 의연하게 꿋꿋이 서있는 정우성의 이런 부분을 끄집어와서 얹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이태신일 수 없어요. 아무리 좋은 배역으로 평가받는다고 해도 거기 머물 수도 없죠. 또 새로운 역을 해야 할 것이니까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서울의 봄'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3.11.22 jyyang@newspim.com |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했고, 허구의 드라마를 가미했지만 어떤 판단이나 평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전두광과 하나회가 그 당시 '그랬다'고 표현할 뿐 선악구도를 강렬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태신에게 감정이입하고, 그의 시각으로 작품을 따라가게 되고 자연히 응원하게 된다.
"감독님은 '서울의 봄'이란 무대에 모든 인간을 올려놓고 거리감을 두고 냉소적인 관점을 유지하죠. 우리 내면엔 모든 인간군상이 다 있어요. 전두광도, 노태건도, 이태신도요. 그 무리들이 모두 내면에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이태신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를 응원하고 싶은 거겠죠. 삶이 정의로울 수는 없어요. 그냥 선택하고 무리 지어지고 함께 살고 그런 모습이에요. 감독님은 그걸 다루면서 영화를 통해 내 안의 이태신을 발견해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품으신 거죠. 강요하지 않는 영화적 언어로 담으신 거고요. 그래서 더 편하게 이태신에게 관객들이 다가설 수 있는 게 아닌가 해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이태신은 전화통을 붙들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서울을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서도 불같이 강렬한 욕망을 내뿜는 전두광에 비해 감정을 절제하고, 신중하고, 호소력 짙은 신념을 드러내야 했다. 놀랍게도 이태신이 느꼈을 막막함이 스크린을 넘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네버엔딩 앵벌이 상태였죠.(웃음) 대부분이 전화로 간청하고 부탁하고 와달라고 버티셔야 한다고 하고. 상대가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감독님이 상대 배우의 목소리를 녹음하셔서 서로 주고받고 했지만, 상대가 명확히 답을 주지도 않잖아요. 그 답답함이 이태신한테 씌워지는 거죠. 저 사람 진짜 지난하고 먹먹한 싸움을 혼자 하고 있네 하고 다행히 느껴주신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도 상당히 피곤했죠. 하지만 감정적으로 폭주하는 전두광이 있으니 절대 같이 휘몰아쳐서도 안됐어요. 이성적이고 더 안으로 삭히고 고민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다만 본분을 지키려 하는 이태신으로 남아야 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서울의 봄'에 출연한 배우 정우성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3.11.22 jyyang@newspim.com |
정우성은 이정재가 첫 감독으로 나선 '헌트' 출연을 앞두고도,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 앞에서도 자신이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럼에도 결국은 수락했고 당초의 우려를 모두 씻어냈다. 30년차가 된 배우로서 이제는 장밋빛 미래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의 냉혹함을 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정우성이라 할 수 있는 도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정재 씨의 새로운 도전인데 짐을 여러개 들고 여행의 첫 발을 뗄 필요가 없다 생각했어요. 우리 둘이 해서 좋을 수도 있지만 둘이 해서 얻을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결과적으로 책임질 준비를 해야 했죠. 동의하고 시작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다 책임 지고 간다는 생각으로 가는 거죠. '서울의 봄'에서도 수많은 배우들이 다 나와서 하모니가 좋게 이루어졌으니 다행이지만 리스크가 그만큼 많았던 거죠. 모두 동의한 후엔 결과를 감내하는 건 당연해요. 결과에 상처 입을 수 있고 인정하고 가야 한단 걸 너무도 잘 알죠."
끝까지 군인의 본분을 놓지 않았던 이태신과 비교해 연기를 잘하는 게 바로 정우성의 본분이다. 마지막 홀로 바리케이트를 넘어가는 장면에서 놓을 듯 놓지 않는 폭발하는 감정은 끝까지 절제된 채로 연출됐지만 관객들은 눈물을 참지 못한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정우성은 이정재도 감탄했던 김성수 감독의 '정우성 활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배우가 갖고 있는 직업적 특성의 본분은 명확해요. 경력이 가져다주는 여러 기회가 있고 어느 시점에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거, 젊은 배우들에게 강요할 필요 없는 도전들을 남기며 선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죠. 마지막 신에선 자신의 소신과 본분을 지키는 사람이 느리지만 천천히 바리게이트를 넘어가며 뚝심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이정재 씨가 그건 누가 만들었냐고. 아! 김성수 감독 훌륭하다고 감탄하더라고요. 저를 멋있게 찍으려는 두 감독의 건전한 경쟁이라고 생각하고 누가 더 잘했다기보다 제가 멋지기 때문에 잘 나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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