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중년의 축구팬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세계축구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의 돌풍을. '언더독'이란 예상을 깨고 한국은 1983년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4강에 올랐다. 한국 국민들은 물론 멕시코 축구팬까지 붉은 유니폼의 투혼과 선전에 열광했다. 4강에서 만난 브라질까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브라질을 상대로 먼저 선취골을 넣었지만 1-2로 역전패했다. 세계 축구팬은 아쉬워했다. 그 붉은 악마들을 조련한 전 박종환 감독이 영면했다.
박종환 감독의 영결식 10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엄수됐다. [사진 = KFA] |
지난 7일 향년 85세로 별세한 고(故) 박종환 감독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엄수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 황선홍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등 많은 축구인들이 고인의 마지막을 지켰다.
박 전 감독의 제자로서 4강 신화를 함께 쓴 신연호 고려대 감독은 추모사를 통해 "고지대 적응을 위해 당시 태릉선수촌에서 마스크를 쓴 채 고통스러운 체력 훈련을 하고, 연습경기에서 한 골을 실점할 때마다 경기장을 열 바퀴씩 돌면서는 솔직히 감독님이 밉고 야속하기도 했다"고 돌아보았다.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축구계 선배님으로서 존경한다. 1983년 청소년대회 4강 신화로 우리나라 축구에 획을 그으셨다"고 박 전 감독을 기렸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치러진 박종환 전 감독의 영결식에서 조문하고 있다. [사진 = KFA]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1983년에 이미 벌떼 축구, 토털 축구를 실현하신 감독님은 한국 축구의 기준을 제시했다"며 "청소년대회 4강은 우리 연령별 대표팀이 최근 좋은 성과를 내는 기반이 됐다"고 추도했다.
박 전 감독은 1938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춘천고·경희대를 졸업하고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로 뛰었다. 1960년 아시아 청소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활약했다. 1970년대 중반 약체팀이던 전남기계공고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1980년부터 1983년까지 U-20 대표팀을 이끌며 두 차례 세계 청소년대회에 참가했다. 1989년 신생 프로팀인 일화 감독을 맡아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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