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 동네 시장에 갔다. 한 수산물 가게 앞에 긴 줄이 섰다. 철 맞은 꽃게를 사기 위해서다. 부리나케 선점하려는 많은 손님 사이에 구입을 망설이는 손님도 몇몇 보였다. 한 여성은 전화 통화를 하더니 "꽃게 사도 괜찮을까?" 물었다. 어디서 잡은 꽃게냐는 질문도 나왔다.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지 벌써 3주 차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주변 해역에서 해수와 생선 표본을 채취, 정기적으로 삼중수소(트리튬) 농도를 분석해 '기준치 미만'이란 결과치를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은 일본에서 나온 정보라 못 믿겠단다.
최원진 국제부 기자 |
우리 정부도 대대적인 국내 유통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주변 해역에서 방사능 농도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는 등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나름의 조처를 하고 있지만 역부족으로 느낀다.
마트 수산물 코너에 '일본산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전 비축 수산물 판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수산물' 등 안내문이 붙었다. 그런데도 구입이 꺼려지는 현상은 어찌 보면 진작 바닥난 국민 신뢰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는 갤럽 여론조사와 각 기관 자료를 바탕으로 매년 국가별 번영 지수(Prosperity Index)를 발표한다. 연구소는 단순히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 지표만 보고 한 국가의 번영을 판단하지 않는다. 국민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 국가 번영의 일부분이며, 사회자본(social capital)도 중요 고려 사항이다.
사회자본이란 사회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협조나 협동을 가능케 해주는 사회 네트워크나 규범, 그리고 신뢰를 말한다. 위험한 상황 시 112에 연락하면 경찰이 신속히 출동해 줄 것이란 믿음. 정부가 소비자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놓을 것이란 믿음. 그리고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수산물이 엄격한 방사능 검사를 거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일 것이란 믿음. 이 모든 것이 사회자본이다.
전 세계 167개국 중 우리나라의 레가툼 번영 지수 종합 순위는 29위로 미국(19위), 일본(16위)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결코 나쁜 순위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자본 수준은 처참하다. 올해 107위로 10년 전보다 12계단이나 내려왔다.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 지수가 100위다. 세부 항목별로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지수가 155위로 가장 낮았고 군(132위), 정치인(114위), 정부(111위) 등 모두 하위권이다.
사회자본을 구성하는 또 다른 항목인 사회적 네트워크 부문에서도 한국 등수는 162등. 존중(160위), 새로운 친구를 만들 기회(153위), 개인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103위) 등 우리 사회에 기반이 되는 신뢰 자체가 사라진 형국이다.
연구소는 "번영은 모든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보호하는 강력한 사회 계약(social contract·공동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합의)을 갖춘 포용적인 사회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설명한다.
위의 수치만 보면 한국은 표면상으로는 선진 민주 국가일지 몰라도 사회적 신뢰만큼은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일본이 아닌 우리 정부의 적극적이고 신뢰성 있는 대응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사회적 신뢰 회복 여정의 큰 걸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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