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뉴스핌] 노호근 기자 = 사업계획승인 대상 주택건설사업에서 분양 승인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높은 가격으로 분양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주택법에 따라 사업계획승인을 받아 주택을 건축해 분양하고자 하면 분양 승인을 받도록 되어있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체와 행정관청은 분양가격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한남동에 2곳 단지가 있다. 이 2곳 단지는 서울시와 분양가격을 놓고 다투다 자신들이 원하는 분양가격으로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자, 전세 분양으로 전환했다. 전세 분양으로 사업자는 자신들이 원했던 가격으로 분양하는 기발한 방법을 사용해 국민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이 해소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는 사업계획승인 대상 토지를 가진 토지소유자가 토지를 여러 신탁사에 신탁한 뒤, 토지를 분할하고 신탁사를 건축주로 하여 사업계획승인 대상 주택사업을 건축법에 의한 건축허가 대상 사업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분양 승인을 피하고 사업자는 임의대로 분양을 하여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지적도.[사진=뉴스핌] |
최근 서초구청이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 구역의 공동주택지 10개 블록에 대한 건축허가를 하면서 고분양가 승인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0일 제보자에 따르면 서초구청은 지난달 말 건축주 코람코자산신탁(4개 블록), 교보자산신탁 (2개 블록), KB부동산신탁 (2개 블록), 신영부동산신탁 (1개 블록), 무궁화신탁 (1개 블록) 등이 10개 블록에 대해 신청한 건축허가를 완료했다.
사업 구역 내 토지 3만여 평을 매입한 개발업체가 블록별로 신탁사에 신탁을 한 뒤 신탁사를 건축주로 해 건축허가를 한 것이다.
이 건축허가를 바탕으로 개발업체는 현재 사전청약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핌 확인한 결과 홍보와 함께 사전청약을 하는 신축 예정 주택의 분양가격은 평당 1억 원 ~ 1억 5000만 원 수준이었다.
결국 서초구청이 개발업자와 부자들의 불편을 해소하는데 기여한 건축허가를 한 셈이다.
서초구청이 건축허가를 한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은 대지를 조성해 종전 토지소유자에게 환지를 하는 방식의 도시개발사업이다.
뉴스핌은 이 기상천외한 건축허가를 짚어 보았다.
우선 '건축법' 제11조 제11항은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주택의 건축허가를 받으려는 자는 해당 대지의 소유권을 확보하도록 되어있고 '건축법 시행규칙' 제6조 제1항은 허가권자가 건축할 해당 대지의 소유에 관한 권리를 증명하는 서류로 등기사항증명서를 확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초구청이 건축 허가한 10개 블록의 공동주택단지 중 1개 블록을 제외한 9개 블록은 대지의 소유권을 완전하게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건축허가를 하여 토지소유자들의 반발과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건축과는 "위 10개 블록은 도시개발법에 따라 환지예정지가 지정된 토지로서 환지예정지가 지정되면 예정지로 지정받은 자는 주택법에 따른 사업 승인이나 건축법이 정한 건축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도시개발법에는 해당 허가의 신청 시에는 해당 대지에 대해 사용 또는 수익이 시작된 날 이후에 신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개발사업부지 내에는 헌인교회가 정상적으로 목회 활동을 하고 있고 주민들 또한 여전히 거주하고 있음에도 서초구청은 신탁사들이 해당 대지에 사용 또는 수익을 하고 있다고 판단해 건축허가를 한 것이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환지예정지 지정이 되면 종전토지의 지번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향후 환지처분인가 후 지번이 새로이 부여되기 때문에 허가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서초구청은 존재하지도 않는 지번의 대지를 대상으로 향후 지번이 부여될 것을 가정하여 건축허가를 한 것으로, 향후 법적 다툼 등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당히 이례적인 행정처분으로 보여진다.
어찌됐든 '초호화, 최고급, 럭셔리' 주택을 분양하고자 하는 개발업자들에게는 전세로 분양했다가 다시 매매하는 편법을 사용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덜 수 있어 환영할 만한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헌인마을 토지소유자 중 한 사람은 "서초구청은 내 땅을 내 요청이나 동의 없이 남의 땅에 환지를 하고 또 내 땅은 다른 사람에게 환지하는 것도 모자라 수십 년 살고 있는 주택을 철거하라는 허가까지 했는데 건축허가를 내줬다고 해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며 "결국 자신의 땅은 빼고 건축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토지소유자는 "서초구청은 이같이 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울시가 2021년 3월 4일 실시계획 인가를 하면서는 토지소유자들에게 종전 토지 위치에 환지받을 수 있도록 하였는데 2021년 8월 27일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하면서 토지소유자들은 종전토지 위치에 환지받을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결국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이 부임하자마자 개발업자가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 모두를 차지하도록 큰 선물을 하였지만 결단코 내 땅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주택건립 및 분양 관련 일을 했던 한 시행업자는 "참으로 기발하고 기이하다"며 "개발업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무리한 계획을 수립하여 허가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인가권자인 서초구청까지 건축허가를 한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향후 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다른 지자체들과 개발업자 간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 도시개발전문가는 "서초구청이 도시개발법에 정한 '사용 또는 수익'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개발법에 따라 환지예정지 지정이 된 토지에 대하여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하더라도 종전토지 소유자들이 거주하고 있어 신탁사들이 해당 토지를 온전하게 '사용 또는 수익'을 하고 있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사용 또는 수익'을 하고 있다는 가정하여 건축허가를 하였다면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한편 서초구청의 환지계획 인가와 관련해 현재 감사원의 조사가 현재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개발부지 내 헌인교회가 조합을 상대로 환지계획 인가에 대한 무효 소송을 진해중으로 오는 8월10일 1심 선고를 행정법원에서 앞두고 있다.
이번 서초구청의 헌인마을 건축허가의 진행은 판결을 한 달 앞두고 무리한 보여주기식 요식행위가 아닌가라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만약 조합을 상대로 헌인교회가 낸 무효소송이 받아 들여질 경우 '이 모든 허가행위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제보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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