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명 시민들 '인산인해'..."깨끗한 정치인"
여야 지도부·문재인·한덕수 등 참석
일부 시민들, 여권 향해 야유·비난
[김해=뉴스핌] 박성준 기자 = "선거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찍었어요. 처음 봤을 때 그 따뜻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과 다르게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박선희·69·부산 동구 거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번째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일대는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노란색 종이 모자를 쓰거나 노란 우산을 든 약 4000명 시민들로 마을 전체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해=뉴스핌] 박성준 기자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인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한 한 시민이 방명록에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2023.05.23 parksj@newspim.com |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가 주제인 이날 추도식은 최고기온 약 23도의 맑은 날씨 속에 엄수됐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특설무대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입구에는 노란색 부스가 줄지어 설치됐다. 약 15m 간격으로 배치된 부스에는 음식과 노란 종이 모자, 부채 등이 놓였다.
곳곳에 국화꽃을 판매하는 사람도 보였다.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은 국화꽃 한 송이씩 구매해 마음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 묘소 앞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여야 지도부 등의 이름이 적힌 조화 20여개가 줄지어 있었다.
시민들은 각자 방식으로 노 전 대통령을 기억했다. 추모 메시지가 적힌 방명록 앞에 선 한 시민은 떨리는 손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김해=뉴스핌] 박성준 기자 =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3.05.23 parksj@newspim.com |
방명록에는 '조금 더딜지라도 진보하는 시민이 되겠습니다', '영원한 나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등 메시지가 빽빽이 적혔고, 글을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도 있었다. 한 시민은 노 전 대통령 사진을 표정 없이 바라보다 한동안 눈 감고 고개를 숙여 추모의 뜻을 표현하기도 했다.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김숙진(67·여) 씨는 "(노 전 대통령은) 제가 알고 있는 정치인 중에 가장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이었다"며 "매번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는데 오늘도 왔다. 5월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같은 마음인 사람들 덕분에 힘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1시45분쯤이 되자 정치권 주요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회색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유 전 이사장은 시민들을 향해 고개를 연신 숙이며 행사장으로 향했고, 시민들은 "유시민"을 연호했다.
[김해=뉴스핌] 박성준 기자 =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진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침착한 표정으로 행사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2023.05.23 parksj@newspim.com |
이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박광온 원내대표, 조정식 사무총장, 김민석 정책위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가 입장했다. 이 대표는 "반갑습니다", "화이팅" 등을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이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절제된 표정으로 등장했다. 일부 참석자 사이에서는 "김기현은 물러가라", "여기엔 왜 왔냐" 등 야유가 나왔지만 김 대표는 구자근 비서실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정점식 경남도당위원장 등과 함께 침착하게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외에도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자녀 노건호·정연씨를 비롯한 유족, 문재인 전 대통령, 김정숙 여사가 추도식에 참석했다.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정미 정의당 대표,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여야 주요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김해=뉴스핌] 박성준 기자 =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진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는 김진표 국회의장. 2023.05.23 parksj@newspim.com |
오후 2시, 추도식은 시작했고 좌석은 만석이 됐다. 일부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행사장 바깥에 있는 언덕 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추도식이 시작하자 이재명 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 유 전 이사장 등 야권 인사들을 향한 박수, 환호 소리가 행사장을 울렸다. 반면 한덕수 국무총리, 김기현 대표 등 여권 인사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한 국무총리가 추도사를 위해 무대에 오르자, 참석자들은 "내려와", "그만두지 않고 뭐하냐"고 소리쳤다. 추도사가 시작된 뒤에도 소란스러운 야유가 이어졌고, 사회를 맡은 김여진 아나운서는 "정숙해 달라"고 거듭 양해를 구했지만 고성은 끊이지 않았다.
[김해=뉴스핌] 박성준 기자 =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등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3.05.23 parksj@newspim.com |
국민의례와 순국선열·민주열사 묵념을 한 뒤 '시민이 답이다'라는 제목의 시민추모영상이 상영됐다. 이후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한가영 팝페라 가수가 '마음에 산다'를 불렀고, 권양숙 여사는 두 손을 모은 채 차분한 표정으로 공연을 지켜봤다. 김정숙 여사는 눈을 꼭 감았다가 감정이 벅찬 듯 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도 보였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노무현재단은 올해 추도식 주제로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를 선정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집필한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인간이 소망하는 희망의 등불은 쉽게 꺼지지 않으며, 이상은 더디지만 그것이 역사에 실현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고 했던 말에서 따온 것이다.
노무현재단은 "노무현 대통령 말씀처럼 인간의 존엄, 자유와 평등의 권리는 꾸준히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해 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해=뉴스핌] 박성준 기자 =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진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시민들. 2023.05.23 parksj@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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