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불가피 이해하지만 수익성 악화 우려"
"제한된 인상으로 한전채 발행 추세 이어질 듯"
[서울=뉴스핌] 백진엽 선임기자 = 2분기 전기와 가스 요금이 16일부터 인상된다. 이에 산업계는 인상해야할 상황인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생산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인상에도 한국전력의 재무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기 때문에 한전채 발행은 지속될 것이고, 이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5일 2분기 전기·가스요금을 각각 인상하다고 밝혔다.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당 8원, 가스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 오른다. 인상된 요금은 오는 16일부터 바로 적용되며 지난 기간 소급 적용은 하지 않는다.
◆ 기업들 "'인상 불가피' 이해하지만 비용 증가에 한숨만"
기업들은 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재무상황 등을 감안할 경우 인상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분위기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전기나 가스의 원가, 한전과 가스공사의 경영상황 등을 감안했을 때 인상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나마 우려했던 것보다 많이 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전기·가스요금을 지속 조정해왔음에도 과거부터 누적돼 온 요금 인상요인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며 "국제 에너지가격이 다소 안정화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높은 수준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국제 에너지가격의 급등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인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한전이 지난주 발표한 공시에 따르면 한전의 1분기 연결기준 경영실적은 6조2000억원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공사의 경우 민수용 미수금이 지난 1분기 11조60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말 기준 8조6000억원보다 3억원 증가했다.
다만 산업계는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어들고, 고금리 등의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로 짐이 더 늘었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국내 전체 전기 사용량(5334억㎾h) 중 산업용(2913억㎾h) 비중은 절반이 넘는 약 55%다. 특히 한국 경제의 주축이지만 최근 업황 악화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도체, 철강, 디스플레이 등이 전력을 많이 사용한다.
2021년 기준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기업은 삼성전자로 1만8412GWh의 전력을 사용해 1조7461억원을 납부했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단순히 계산하면 이번 인상으로 삼성전자가 연간 내야할 전기요금은 1500억원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전력 사용이 많았던 곳은 SK하이닉스(9209GWh, 8670억원, 현대제철(7038GWh, 6740억원), 삼성디스플레이(6781GWh, 6505억원), LG디스플레이(6225GWh, 5862억원) 등이다.
전력비용이 원가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철강업계도 걱정이 크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요금이 1KW당 1원 오르면 일반적으로 철강업체의 비용은 약 100억원 증가한다. 이는 수익성 악화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기나 가스 요금 인상에 대해 어쩔 수 없다며 이해하는 것과는 별도로 비용 증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크다"며 "기업들마다 시설 스마트화, 재생에너지 자가 발전 등으로 대응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자금여력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워 걱정이 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용광로 작업 모습 [사진=뉴스핌DB] |
◆갈길 먼 한전 정상화에 "한전채發 채권시장 불안 이어질 것"
이와 함께 기업들은 한전채 발행 기조 지속에 따른 자금시장 불안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인상에도 한전의 재무 위기 상태 해소는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상으로 한전은 전체 적자 중 약 2조원 규모를 만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32조원, 올해 1분기 6조2000억원 등 누적 적자가 쌓인 상황에서 2조원 정도는 위기 해소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한전채 발행으로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온 추세는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들어 발행한 한전채는 약 9조9000억원으로 지난 2021년 발행 총액인 10조4000억원에 거의 근접했다. 현재 한전채 발행한도(약 104조원)를 감안하면 발행 가능 규모는 27조원 정도다. 지난해말 여야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기존 '적립금과 자본금 합산의 2배'에서 5배로 대폭 늘렸지만 이미 한도의 75%를 채운 것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한전이 자금 마련 경로가 한전채에 집중됐다는 의미이고, 올해 역시 상황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당분간은 한전이 자금 마련을 위해 한전채를 발행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전채가 채권시장에 쏟아지는 것은 수급 악화를 유발하고 이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난항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보증하는 우량채인 한전채가 시장에 대거 풀리면 자금은 그쪽으로 몰리게 되고 이에 회사채, 특히 비우량 등급 기업들은 자금 조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한전채 발행규모가 급증하면서 채권시장의 자금경색을 초래했다. 올해도 이같은 불안감이 여전한 것이다.
강승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전채의 발행 축소를 위해서는 한국전력의 수익구조가 개선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전기요금 상승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총선을 감안할 때 하반기에도 전기 요금 인상폭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 봤다. 이어 "다만 한전채의 발행세가 지속되더라도 지난해처럼 전반적인 채권시장의 자금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지난해와 달리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가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고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 등으로 발생한 자금 경색 국면도 정부의 유동성 지원 대책으로 안정세를 찾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