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간부사원 취업규칙 변경
월차 휴가 폐지·연차 일수 제한
간부사원들 취업규칙 불이익 주장
1심 현대차 승소…2심 근로자 일부 승소
대법 "사회통념상 합리성 만으로 허용 안돼"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월차 휴가제를 폐지하는 등 근로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변경된 현대자동차의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지 않아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규칙이 인정될 수 없다는 취지인데 이와 배치되는 종전 대법원 판례 또한 모두 뒤집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현대차 간부사원 A씨 등 4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 2021.06.16 pangbin@newspim.com |
현대차는 근로자들에게 하나의 취업규칙을 적용해 오다가 2004년 7월 주 5일제가 도입되면서 과장급 이상의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마련했다. 기존 취업규칙은 월 개근자에게 1일의 월차 휴가를 부여하고 연차 휴가 일수에 상한을 두지 않았으나, 새롭게 바뀐 규칙은 월차 휴가제를 폐지하고 연차 휴가 일수를 25일로 제한했다.
현대차는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직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에 A씨 등은 사측의 행위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해 무효라고 주장하며 기존 취업규칙에 따라 지급돼야 하는 수당에서 현대차가 지급한 수당 외에 나머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종전 취업규칙에 따른 미지급 연월차 휴가수당을 직접 청구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 휴가 관련 부분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효"라며 원고들의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종래 대법원은 사측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근로기준법이 요구하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더라도 취업규칙의 작성,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고 판단해왔다.
하지만 전원합의체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규칙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종전 판례에 따라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기준으로 규칙의 효력 여부를 판단하고, 노조의 부동의가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지에 관해 판단하지 않은 원심판결에 법리 오해 및 심리 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대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헌법 제32조 제3항에 근거한다"며 "근로기준법 제4조가 명시한 근로조건의 노사대등 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로, 이는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봤다.
이어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그 내용에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건 강행 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명문 규정에도 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전 판례가 들고 있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불확정적"이라며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합리성이 인정되는지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려운 탓에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 등 법적 불안정성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재연·안철상·이동원·노태악·천대엽·오석준 대법관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종전 판례)는 대법원이 오랜 기간 그 타당성을 인정해 적용한 것으로,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별개 의견도 제시됐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취업규칙 변경 절차가 근로조건 기준 결정에 관한 헌법(인간의 존엄성 보장) 및 근로기준법(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자율적 결정)의 이념과 취지에 보다 부합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인정할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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