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방어경매시 감정가보다 높은 매입가 부담
갭투자 노린 경매 참여 가능성도 높아
싸게 매입할 권리 제공 목표 달성 어려워
무리한 입찰 우려는 과도…제도확대는 경계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전세사기 피해 구제를 위한 정부 대책의 핵심인 우선매수청구권 부여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우선매수권을 사용하더라도 선수위 채권자들이 방어 경매 참여가 예상되는 만큼 시세보다 비싸게 주택을 매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사라진 피해자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피해주택을 보유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책에 포함됐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셈이다. 정교한 분석 없이 급조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이를 대체할 뾰족한 대책도 없어 피해자들은 보증금 일부 보전 등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열린 대한변협 전세사기사건 피해자지원 긴급 대책 TF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정일구 기자] |
◆ 선순위 방어경매·갭투자시 피해자, 감정가보다 높게 매입할 수밖에 없어
3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기로 한 국토교통부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기대하는 가격수준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대항력을 갖춘 후순위 세입자가 있는 경우 명도 문제 등이 발생하는 만큼 경매가 조기 종료되기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몇차례 유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우선매수권을 가진 세입자가 싸게 매입할 수 있다는 구도다.
다만 일정 가격수준으로 내려가기 전에 제3자가 경매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대출을 일으켜 공동주택을 지은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례 가운데 경매가 유찰된 물건을 살펴보면 1억2000만원의 임차인 보증금과 그에 앞선 순위인 새마을금고의 선순위 근저당권 1억7700만원이 설정돼 있다.
우선 해당 주택은 선순위 채권자의 방어경매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채권자 입장에서 1억7700만원 이하에 경매가 낙찰되면 채권 액면가를 전부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채권자가 액면가인 1억7700만원을 경매에 적어낼 경우 세입자는 최고가낙찰액으로 우선매수권 사용해야 하는 규정을 적용받는다.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을 포함하면 임차인은 2억9700만원에 주택을 매수하는 셈이다. 경매시 최초 감정가로 책정된 2억6400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비싸게 주택을 사지 않으면 우선매수권을 포기해야 한다.
방어경매는통상 2금융권 등에서 시행한다. 이들은 주택의 시장가치와 부동산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 1885가구 대부분이 부실채권(NPL) 매입기관으로 넘어가 방어경매 위험성이 존재한다.
방어경매보다 더 큰 우려는 갭투자를 노린 이들이 경매에 참여할 유인이 높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경우 선순위 근저당이 잡혀 있어 1억2000만원 보증금에 전세를 들어왔지만 경매를 통해 근저당이 사라지면 보증금이 올라갈 유인이 커진다. 1억5000만원에 전세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가격 이하로만 낙찰받아도 무자본 갭투기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입찰액을 1억3000만원으로 적어 낙찰받는다면 2000만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감정가와 보증금 등을 고려할 때 1억4400만원 이상에 낙찰을 받으면 가치보다 비싸게 산다고 볼 수 있다. 이미 투입된 보증금과 경매에서 추가로 투입하는 금액의 합계가 감정가보다 높으면 손해를 본다는 의미다. 이런 판단에서 피해자들은 우선매수권을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시장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더욱 낮은 금액에 사야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미추홀구의 빌라를 당장 해당 가격수준에서 팔 수 있는 가능성이 낮고 시장 전망도 밝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매수권을 사용해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 저렴하게 피해주택의 소유권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방해 위해 무리한 금액 입찰 우려는 과도…우선매수권 확대 비판도
그렇다고 해서 우선매수권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를 늘려주는 등의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피해자들은 최소 3번째 낙찰액까지 우선매수권을 사용할 수 있게 확대 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
다만 소위 경매꾼 등이 우선매수권 사용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입찰액을 과도하게 높은 금액으로 적어낼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성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낙찰받은 사람이 낙찰을 포기할 경우 보증금으로 내는 입찰액의 10%를 몰수당하기 때문이다. 선순위 채권자가 1억7700만원을 입찰액으로 제출해 낙찰받았으나 이를 포기할 경우 1770만원을 손해본다는 것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소장은 "우선매수권은 다른 누군가의 손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재 도입돼 있는 공유자우선매수권도 한 번만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제한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며 "정부가 이번에 도입하기로 한 우선매수권은 피해 구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선매수권을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포기한 우선매수권을 양도받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우선매수권 행사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지역의 낙찰가율 등이 기준에 사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 낙찰가율은 아파트가 평균 60%, 오피스텔은 59.6%, 빌라는 67.9%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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