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프로그램으로 만든 발렌시아가 광고 밈으로 확산
재미 목적으로 한 '밈'은 '공정 이용'으로 볼 수 있어
게티이미지 뱅크 소송 판례…'공정 이용' 기준 시사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인공지능(AI)으로 광고를 만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이 아니어도 기획자와 AI 프로그램을 잘 활용만 하면 단 나흘 안에 대중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광고를 만들 수 있다. 광고 전문가들이 밤낮 없이 머리를 맞대고 이어가는 기획 회의, 회사와 출연자간 밀고 당기는 섭외,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촬영과 편집 과정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최근 영화 '해리포터' 속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이들이 발렌시아가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광고를 선보였다. 이 광고는 AI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 demonflyingfox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 AI 이미지 작업 프로그램 미드저니(Midjourney), 음성변환 AI 프로그램 일레븐 랩스(Eleven Labs), 애니메이션 작업 프로그램 D-ID로 작업했다. 사람이 아닌닌 AI 프로그램이 만든 결과물은 온라인에서 화제다.
AI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이 광고는 충분히 '해리포터' 속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명대사도 실제 배우의 목소리로 훈련한 결과로 실감나는 부분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발렌시아가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다.
◆ 밈으로 확산되는 발렌시아가 광고, 저작권 ·퍼블리시티권 문제는?
AI 프로그램으로 만든 발렌시아가 광고 영상은 화제성에서 우선 성공적이다. 디자이너 demonflyingfox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소개한 영상은 공개된지 한 달 여만에 조회수가 800만회(4월21일 오후)를 넘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패러디 영상이 만들어지며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발렌시아가 광고는 '밈(meme ·유행하는 콘텐츠가 영상의 형태로 다양하게 변형돼 확산되는 현상)'을 낳으며 젊은층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내서는 웹툰작가 주호민과 유튜버에서 '침투맨'으로 활동하는 이말년 작가의 얼굴을 등장킨 '침랜시아가', 코미디언 그룹이 등장하는 '메타코미디' 등이 밈 행렬을 이룬다.
밈으로 만들어진 영상물은 법적 문제가 없을까. 우선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되진 않는다. 김혜창 한국저작권위원회 정책연구 본부장은 "우선 AI가 만든 결과물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법상 '저작권 보호'는 인간이 만든 저작물에 대한 보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혜창 본부장은 이어 "발렌시아 광고에서 '해리포터의 원작 동영상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해리포터 영화에 대한 저작권이고, 발렌시아가 의상이 나온다면 이에 대한 저작권은 발렌시아가가 갖고 있다"고 첨언했다.
김혜창 본부장은 온라인상에서 '재미'를 위해 퍼지는 '밈' 영상일 경우, 상업적 목적으로 하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법적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밈 영상이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공정 이용'(법 제35조의 5)조항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발렌시아가측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주장한다면 저작권 문제로 삼을 수는 있다"고 해석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챗GPT를 활용하면 발렌시아가 밈 영상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화제의 인물과 같은 유명인의 사진을 활용할 경우 '퍼블리시티권' 문제다. 이 경우도 상업적인 목적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 완전히 문제가 없다고도 볼 순 없지만 시장에서 어느 정도 허용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거다. 김혜창 본부장은 "퍼블리시티권 이슈도 있지만, 웃음을 전제로 한 밈 영상일 경우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면서도 "명예훼손으로 당사자가 문제를 삼을 순 있다. 선을 그어 법적 문제가 안된다고 설명할 순 없다"고 언급했다.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실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 '딥페이크'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발렌시아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렌시아가의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사진을 공개한 적도 있다. 성직자가 명품 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진은 보는 이들이 놀랄만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안경이 구부려져 있는 등 '딥페이크'임을 알 수 있는 여지가 있다.
AI가 실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술력으로 다다를 경우 사회적 문제가 양산될 수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적 제도나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 AI시대 저작권법 '공정이용'화두…미국 소송에 주목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해외에서도 AI가 만든 창작물이 만들어지면서 저작권을 두고 원작자와 AI 회사 간의 법적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미지와 동영상을 보유하고 이를 제공하는 회사인 미국의 게티이미지는 영국의 AI 이미지 생성 기업인 스태빌리티 AI를 상대로 1조8000억 달러(약 2268조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스태빌리티 AI는 지난해 이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AI 프로그램 '스테이블 디퓨전'을 개발한 신생회사다.
게티이미지 측은 30년간 쌓아온 12000만건을 스테빌리티 AI가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는 "스테빌리티 AI가 이미지 허가를 받지 않고 게티이미지가 소유한 이미지 수만개를 AI 학습에 사용했으며, 스테빌리티 AI는 상업적으로 이익을 위해 이 같은 라이선스 취득의 필요성을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약 4억7000만개의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는 게티이미지가 진행하는 소송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국내서도 이 이슈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이 판례에 따라 국내 AI 창작물에 대한 국내 저작권법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다. 저작권법 제35조의 5인 '공정 이용'은 미국과 FTA 이후 영향을 받은 항목이기 때문이다.
김혜창 한국저작권위윈회 본부장은 "미국의 소송 결과에 따라 AI와 관련한 국내 저작권법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특정 경우를 한정 짓지 않고 저작물의 성격이나 잠재성,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 법원의 재량에 따라 저작자의 허락없이 저작물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공정 이용'인데, 이는 2000년대 초반 한미FTA 결과로 갖고 온 내용이기 때문에 미국의 소성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