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산중마을 왕버들이 선사하는 연록의 경이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중략>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신록예찬』일부>
봄이다. 시냇물은 제 몸을 한층 부풀리고 온 산과 들판은 새 생명을 피워 올리는 노래로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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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수액을 끌어 올려 새순을 피워 올린 풀과 수목은 연록의 빛깔을 세상에 마구 퍼뜨린다. 겨우내 짙은 푸른 빛을 내내 달고 있던 솔잎의 묵은 빛깔은 새롭게 돋은 연록에 떼밀린다.
동해연안 항구도시 울진군 북면 하당리 '당거리' 마을 고령의 할미가 돌복상꽃 흩날리는 봄 바람을 타고 가지 모종을 심고 있다.
열여섯 나던 해에 당거리마을로 시집왔다는 분옥 할미(82)는 이맘 때 부는 바람이 제일 좋단다.
철도 덜난 열여섯 나이에 가마타고 30리 바깥 마을 '깨밭골'에서 '당거리' 마을로 들어 오던 날, 꼭 이날처럼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복사꽃이파리가 하늘을 날았단다.
백발의 머리칼을 반가리마로 빗어 넘긴 이마가 곱다. 평생 산 아래를 제 스스로 지줄대며 흐르는 시냇물처럼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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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울진의 산중마을인 북면 하당리 '당거리마을'의 신록. 2023.04.08 nulcheon@newspim.com |
"연록이 초록을 제압한다." 초록보다 더 도드라진 빛깔을 머금은 연록은 물가에서 비롯해 산허리로 치닫는다.
일년 내내 초록빛깔을 과시하던 소나무는 '장강(長江)의 뒷 물결' 처럼 밀려오는 연록의 당찬 숨결에 저만치 물러선다.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떼밀어 강이 강을 만나 바다로 나아가듯, 세상의 이치도 이와 다를 바 아니다.
이 중 가장 으뜸이 마을 어귀를 흐르는 실개천에 뿌리 내린 왕버들이 피워 올리는 새순이다.
살랑이는 봄 바람에 하루가 다르게 물이 오르는 오래된 왕버들이 피워 올리는 연록은 가히 봄이 선사하는 환희 중 압권이다.
오래된 왕버들 아래에 서서 연록의 새순 사이로 펼쳐지는 봄 하늘 빛깔을 바라보면 저절로 봄 색깔에 물드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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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 연록으로 물드는 산중 마을도 겨우내 꼭꼭 닫아 놓았던 바깥 문을 열고 환한 봄 기운을 들인다.
태어나고 마감하는 것이 세상의 순리인 것을 누구나 알지만 애써 모른 체 한다.
평생 농사꾼으로 경북 영양군의 산중마을에서 자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 온, '영원한 우익(?)'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라며 온갖 추악한 세상살이를 조롱했다.
돌복상꽃 이파리 하늘거리며 날리는 산중마을, 가지모종 심는 분옥 할미의 쪽진 가리마처럼 잘 일군 밭이랑 너머 산중 마을 고요하다.
nulche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