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뉴스핌] 고인원 특파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점령당한 자국 영토를 수복하면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의 미래를 협상할 의사가 있다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고위 보좌관이 밝혔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부실장은 5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전장에서 전략적 목표 달성에 성공하고 크림반도 경계까지 도달하면, 크림반도 문제 논의를 위한 외교적 페이지를 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FT는 이에 대해 지난해 4월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 결렬 이후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의 발언 가운데 종전 협상 의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시비하 부실장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군을 통한 (크림반도) 해방을 배제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4월 초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 인근 지역인 부차에서 민간인 학살을 벌인 게 확인되자 러시아와의 협상을 중단했다. 이후 지난 10월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9월 자국 영토로 병합한 우크라이나 내 4개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을 되찾을 때까지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어떤 협상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법령에 서명했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크림반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을 떠나기 전까지 평화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따라서 고위 정부 관료의 이 같은 발언은 기존의 강경한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번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탈환을 시도할 경우 러시아가 핵무기로 대응할 가능성을 우려해 온 서방의 우려도 누그러뜨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 주재 영국 대사관의 무관으로 있는 팀 우즈 해군 소장은 "크림반도 내 군병력 밀집도와 우크라 군의 크림반도 진입이 의미하는 바를 고려하면, 크림반도 문제는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단시간에 이를 해결한 군사 해법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기존의 강경한 입장에서 선회해 크림반도를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국내 반발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월 두 달 간 키이우 국제사회연구소( Kyiv 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ology)가 우크라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평화를 위해 영토를 양보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9%만이 지속적인 평화가 가능하다면 평화 협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해당 조사에서 과반이 넘는 64%의 응답자는 "서방의 지지가 줄고 전쟁이 장기화할 위험이 있더라도,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비롯한 모든 영토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안드리 시비하 부실장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서 외교 정책을 담당하는 베테랑 외교관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요한 시기마다 대통령 곁을 지켰던 인물이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 대변인은 그의 이 같은 발언 내용과 관련한 FT의 인터뷰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