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 단어로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 메시지"
일본 언론·미국 정부도 尹 메시지에 긍정적 반응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며 강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일 3각 관계를 고려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2일 뉴스핌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어제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메시지는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대통령이 직접 발신한 것"이라며 "거기에는 일본이 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한미일 3국 공조를 강조하는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3.03.01 photo@newspim.com |
박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거기까지 계산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데 이게 단기간에 잘 안될 경우 결국은 미국을 낀 3자관계 측면에서 미국 측의 어떤 책임론 같은 것들이 늘 얘기가 됐었다"며 "이런 면에서도 한국은 최선을 다 했는데 결국은 일본이 호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삼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기념사를 보면 핵심 키워드로 '세계시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있을 때 기후변화와 관련된 교육 분야의 핵심으로 나온 개념이다. 그거는 세계 대표적 가치로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서겠다는 개념"이라며 "세계시민이란 개념을 썼다는 것은 (한일관계 속에) 배타적 민족주의적인 면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 발신 이후 앞으로 한일관계가 어떻게 전망되느냐는 질문에는 "2~3가지 관건이 있다"며 "일단 한국 정부가 제시한 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 방식에 일본 전범기업들이 들어와야 한다는 부분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일본이 사과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일단은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걸로 상당히 얘기가 좀 된 것 같다"며 "물론 그게 수준과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일본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지 사과하겠다는 것은 어느 정도 밝혀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박 교수는 "지지도도 높지 않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향해 이 정도로 전향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은 그만큼 현안 해결에 필요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한국은 이만큼 일본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관계 개선에 아주 적극적인 의지가 있으니 이제는 일본이 이것을 받아서 할 수 있는 몫을 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윤석열 정부로선 지지도가 낮아질 수도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본에 긍정적인 관계개선의 메시지를 던졌으니 이제는 일본 정부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할 때라는 지적이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도 전날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기념사는)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 그리고 미래가 더 중요하다 이런 것을 강조함으로써 이제는 일본에 대해서도 그렇고 한미일 협력에 대해서도 그렇고 상당히 선제적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니냐 이렇게 보여진다"고 언급했다.
국내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선 윤석열 정부가 3·1절 기념사를 통해 오는 4월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과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등에서 한일관계를 주도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본 언론들도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을 반영한 듯 기시다 후미오 정부를 향해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날 '윤 대통령 연설 살려 기시다 총리 징용공(일제 강제동원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 움직여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고조되는 자리에서 굳이 일본과 협력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한 것은 의미가 있으며 평가할만하다"며 "일본 정부는 윤 정권과 협력해 징용공 문제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문은 윤 대통령 기념사와 관련해 "한·일을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로 인식한 역대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며 "미래지향적 관계 조성에 나선 윤 정권하에서도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면 한일관계 정상화는 멀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외교당국의 노력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반복해 말하는 데 그쳤는데 일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해줬으면 한다"며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할 때"라고 강조했다.
일본 보수우익을 대변하는 요미우리신문도 "일본을 견제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로 명확히 규정했다"며 "일본이 오랫동안 호소해온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로 중심을 옮기는 자세를 선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아사히신문은 "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일본을 파트너로 평가했다"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위협 등을 거론하며 안보 위기 극복을 위해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일단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며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형태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와 계속해서 긴밀히 의사소통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일 3각 공조를 강조해온 미국 정부도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일본과 더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했다"며 "우리는 이 비전을 매우 지지한다"고 밝혔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최근 몇 달간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우리는 한일 양국이 과거사 이슈를 치유와 화해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권고해왔다"고 피력했다.
그는 한미일 3국 협력에 대해 "이는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과 도전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더해 인도·태평양 지역 안팎의 도전에도 매우 가치가 있다"며 "우리는 한국, 일본과의 3자 협력이 21세기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독도에 대한 한일 간 갈등에 대한 질문에는 "동맹국 간에 해결해야 할 남은 이슈들이 있다"며 "우리는 한일 양국 및 한미일 3국 간 차원에서 진전을 계속하도록 하는 생산적인 방법을 찾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104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 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하여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며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되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며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그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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