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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⑨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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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어찌보면 모두들 지쳤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많은 희생자들의 장례를 참석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아름다움을 새삼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일까. 피비린내 나는 아일랜드 분쟁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노선이 바라는 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것이란 판단을 내리게 됐다. 한 쪽에서는 무력 항쟁을 통한 나라의 통일을, 다른 한 쪽에서는 무력 진압을 통한 치안과 평화의 유지를 꿈꿨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느릿느릿하지만 그 벡터가 평화와 이해와 관용으로 지향되는 아일랜드 국민이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자신의 주장들을 포기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 때가 1990년대 초반이다.

목헌 트리니티대 교수

그리고 세계 여기 저기서 어쩌면 작은 발걸음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나 모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중요한 활동들이 벌어진다.

첫째는 폭탄 테러 및 북아일랜드의 국가 기관 전복을 위한 돈 줄을 끊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가장 큰 옹호 집단이자 결정적인 자금 지원을 해 주었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당시 400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도 200여년 전인 1776년에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사실에 그들이 너무도 감동해서 그런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는 IRA의 재정적 지원이 곧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아일랜드의 민족 통일로 직결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는 아일랜드에게 지원을 주는 동포 단체들이 여럿 있는데 이 중 북아일랜드 구제 위원회인 노레이드(NORAID, Irish Northern Aid Committee)는 그들의 모금액 중의 대부분을 IRA (엄격히 말하면 당시의 명칭은 임시 IRA, Provisional IRA)에게 주어졌다. 노레이드는 심지어 미국 마피아 조직 범죄단의 도움으로 무기를 구입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밀수하기까지 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의 제재로 직접 밀수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리비아를 독재 통치하면서 반 외세를 표방하던 카다피의 도움을 받아 무기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90년대 부터 평화 프로세스가 강조됨에 따라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노레이드에 대한 지원은 끊어지기 시작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컸다.

[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글싣는 순서

1. '감자농사' 빈국서 1인당 명목GDP 세계 2위로
2. 대기근으로 인구 3분의 1 잃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잘사는 비결
3. 더블린 산책과 함께 하는 역사 기행
4. 영국의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독립 투쟁
5. 아일랜드 글로벌 최저 법인세의 두 얼굴
6. 아일랜드의 세계 최고 기업들…기네스맥주에서 의료기기까지
7. 아일랜드 교육의 백미...중고생에 숨통 트여준 전환학년제
8.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上)
9.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下)
10. 한·아일랜드의 디아스포라와 재외동포 역량
11. 골칫덩이 국가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위기극복 DNA 채워진 아일랜드 (끝)

급진노선 IRA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이 주효 

둘째는 IRA 소속의 정치계파인 신 페인 (Sinn Fein)이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전폭적인 측면 지원이 있었다. IRA의 주류는 무력으로 영국의 통치를 거꾸러뜨리고 아일랜드 섬의 통일을 염원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비록 그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파가 생겨 IRA에서는 그들의 일부 활동을 허락하여 준다.

특히 이 새로운 노선을 강하게 피력한 IRA의 제리 아담스 (Gerry Adams)의 신선함에 많은 IRA 사람들이 호응을 하였으나 여전히 주류로 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많은 정부 관료들이 아담스를 음으로 양으로 격려를 주게 된다. 테러 조직으로 정의되어 미국내에서 그 활동이 금지된 IRA임에도 불구하고 제리 아담스에게는 특별히 미국 입국 비자를 허용하고 미국의 주요 정치 인사들을 만나도록 도와주며, 아이리쉬계 미국인들을 통하여 신 페인의 정치 자금 모금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IRA 내부에서도 그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고, IRA 주류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게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협상에도 필수적으로 선결될 IRA의 테러 활동 종식을 1994년으로 앞당기게 되었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정부와 의회,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이의 필요성을 꾸준히 피력했던 아일랜드 정부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북아일랜드에 합헌적인 방법으로 민족주의 이상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회 민주 노동당 (SDLP, Social Democratic and Lbour Party) 이 있었는데 그들의 뛰어난 지도자 죤 휴움(John Hume) 덕분에 평화적인 프로세스를 위한 행보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점이다.

1998년 오마(Omagh) 시의 폭탄테러. [사진=목헌 교수 제공]

셋째는 아일랜드 공화국도 북아일랜드의 이슈를 함께 풀어주는 주체 중의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영국 정부는 IRA가 감행하는 갖가지 테러 활동을 북아일랜드 내부의 치안 문제로 간주하였으며, 미국이나 서방 세계가 이에 대하여 의견을 표현하면 이를 내정 간섭이라 여기며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정보국에서도 IRA의 완벽한 진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여기에 미국이 그 동안 북아일랜드에서의 인권 유린을 강력하게 비난하여 1985년에 영국-아일랜드 협정 (Anglo-Irish Agreement)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영국과 미국의 기여가 컸다.

넷째, 양 진영의 준군사조직(paramilitary organization)의 무장 해제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살상용 무기를 가까이 둔 상황에서 진정된 평화 프로세스의 추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이치였다. 그러나 이를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그리고 형평성 있게 해체를 할 수 있는 기구도 전례도 없었다. 그러나 1995년 미국의 상원의원 죠지 미첼 (George Mitchell)을 위원장으로, 핀란드의 전임 총리 하리 홀케리 (Harri Holkerri), 그리고 캐나다의 전임 군 최고 사령관인 죤 드샤스틀레인 (John deChastelain)과 함꼐 구성된 무장 해제 위원회가 (예정보다 수 년 지연이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이를 가능케 하였다. 이 작은 발걸음에는 미국·영국·아일랜드 정부 당국이 큰 기여를 하였다.  

다섯째, 경제적인 협력을 통하여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1992년 미국 경제의 불황을 타개하겠다고 공약하여 선출된 클린턴 대통령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약속을 하게 된다. 즉,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이리쉬 계통의 미국인 보다 좋은 예가 없으며 만약 평화를 되찾도록 온 민족이 노력을 하면 미국의 큰 투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 뿐만 아니라 EU 도 큰 기여를 했으니 미국은 아일랜드 국제기금(The International Fund for Ireland) 을 통하여 25여년에 걸쳐 9억 달러의 지원을 하고, EU 도 북아일랜드 평화와 화해를 위한 프로그램(Programme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in Northern Ireland) 을 통하여 20여년에 걸쳐 약 13억 유로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실로 많은 나라의 수 많은 사람의 노력을 배경으로 드디어 1996년 6월 10일에 미국 상원의원 죠지 미첼을 의장으로 다자협의체가 구성되었으며, 미첼의 어록처럼 '700 여 번의 실망'을 모든 참여자들이 경험 하였다. 이 기간 중에 IRA 내의 소수 분파가 테러 활동을 재개하여 연방주의 준군사조직들이 이내 보복을 할 것으로 염려가 되었으나 다행하게도 자제를 하였고, 연방주의를 표방하는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연방당 (UUP, Ulster Unionist Party)은 당수 데이비드 트림블 (David Trimble)의 용감한 리더쉽이 아니었다면 언제라도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아일랜드 정부의 대 양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헌법 틀은 1937년 제헌 때부터 존재해왔던 것으로 아일랜드 국가 영토에 (북아일랜드 영토를 포함하여) 아일랜드 섬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주의자들의 북아일랜드 영토의 주권에 대한 염려를 십분 고려하여 아일랜드 헌법의 개정을 전격적으로 용인한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의 개정안은 아일랜드의 영토를 정의했던 기존의 제2조와 달리, 개정된 제2조는 아일랜드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였으며 개정된 제3조는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양 국가의 국민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에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진행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 체결을 위하여 자국 헌법의 가장 기조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새삼 묻게 된다. 그리고 이 헌법 개정안이야 말로 그간 700여일 서로를 부둥켜안고 머리 터지도록 대화에 임한 다자간 협의체의 진정성을 상징한다고 하여야 될 것이다. 또 이 협정의 성공 요인은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 주고 양보하는 정신(winning-by-giving-up)을 실천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평화 여정의 소중한 결실이 된 벨파스트 협정

이 눈물나고 감동적인 노력은 1998년 4월 10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협정 또는 성금요일 협정 (Belfast Agreement or Good Friday Agreement)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협정은 크게 세 가지의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와 정부의 구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관계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과의 관계가 포함됐다. 새로 설립되는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는 권력 공동 책임제(power-sharing)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연방주의 대표와 민족주의 대표가 (의석 수에 비례하여) 북아일랜드 정부의 수상(First Minister) 또는 부수상(Deputy First Minister)을 맡도록 했다. 또한 모든 업무에 있어서 합의를 원칙으로 나라를 꾸려가도록 하였다.

1998년 4월 10일 벨파스트 협정에 서명하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버티 에이헌 아일랜드 총리. [사진=목헌 교수 제공]

항상 편파적으로 연방주의자들만을 위한다고 민족주의자들의 의심을 받아왔던 얼스터 왕립 경찰 (RUC, Royal Ulster Constabulary)은 완벽하게 새로이 개편하여 북아일랜드 경찰청(PSNI, Police Service of Northern Ireland)으로 개명되었다. 아울러 무장 해제를 완성하도록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IRA·UVF 등의 준군사조직 소속으로 실형을 살고 있었던 재소자들의 석방이 이루어졌다.

이토록 어렵게 살얼음을 걷듯 다자간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담은 벨파스트-성금요일 협정에는 한 가지 남은 숙제가 있었다. 이의 채택을 국민 투표로 결정할 필요가 있었고, 협정 체결 약 한 달 후인 1998년 5월 22일에 선거가 이뤄졌다. 예측이 가능한 부정적인 미래를 선택할지 또는 예측 불허의 잠재적으로 밝은 미래를 선택할지를 가르는 순간이었다. 이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까 아니면 자식의 앞날을 고려할까를 다루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고 또한 용감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결과는 채택을 압도적으로 선택하는 쪽으로 나왔다. 북아일랜드에서의 국민 투표에서는 81%의 투표율에 71.12%의 찬성을 받았으며, 아일랜드 공화국에서의 헌법 개정 투표에서는 56%의 투표에 94%의 찬성을 받았다.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든, 한 민족의 800년 역사의 숙명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결정을 아일랜드 백성들은 해냈던 것이다.  

협정의 세부 내용 중에는 그 실행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조항도 있었다. 또 IRA가 협정에 참여한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참 IRA(Real IRA)' 라는 분파가 1998년 8월 오마(Omagh)시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29명이 목숨을 잃는 대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이 모두에 대한 반응이 일체의 극단적인 행동 없이 최대의 자제를 모두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민주적인 절차로 기획한 민족의 대 청사진에 공동 책임을 지겠다는 답을 전 세계에 알려준 것이다.  

이 협정이 체결된지 25주년이 되는 올해 짚어보야 할 대목도 있다.

우선 슬픈 사실이지만, 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는 점이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경우 생명을 잃은 사람이 3532명, 부상을 입은 자들이 4만명 이상이었다. 통계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IRA 등 민족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사람이 전체의 59%, 연방주의 진영에 의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이 29%, 영국군 또는 얼스터 경찰에 의하여 목슴을 잃은 자들이 10%였다. 다시 말해 약 90%의 희생이 공권력이 아닌 양 진영의 군사 조직 테러에 의하여 자행됐다.

둘째는 민중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시민의 권익을 개인의 권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 또는 단체가 참으로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저 당시의 세태와 상황과 감정이 북받치는 대로, 올곧게 서 있지 못하고 비참한 소용돌이 속에 모두가 함께 휘말려 있었던 긴 30년 기간의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공화국, 그리고 영국이었다.

앞서 16세기에는 종교의 차이를 명분으로 핍박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으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계속하면서 20세기에 까지 종교를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잘못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종교 제도권이 희생적인 사랑으로 계속되는 불의를 끊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본다. 

셋째는  흔히 북아일랜드의 분쟁을 우리나라의 남북 관계와 비교하는 신문 기사나 논문을 보게 된다. 하지만 유사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확연하게 다른 점들을 형평성 있게 다루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상대방도 그에 못지 않게 원 상태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에 공통적으로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었다. 즉 폭력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3500 여명의 희생자들 중 90%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지 않고 합헌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성금요일 협정 당시의 다자간 대화 때에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테이블에 나온 사회민주노동당(SDLP) 와 얼스터 연방당 (UUP)이 있었으며 이들의 지도자인 죤 휴움과 데이비드 트림블은 1998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 받았다. 

너무도 많은 희생이란 대가를 치룬 북아일랜드의 소용돌이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함께 중지를 모아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지혜롭게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목헌 교수는 = 아일랜드에 2006년에 정착한 후 현재까지 트리니티 대학교 (Trinity College Dublin)의 생화학⋅면역학부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단백질 3차 구조 연구 및 항암제 개발을 수행하고, 신약 개발 회사인 해믈리트 파마 (HAMLET Pharma, 스웨덴)의 기술 고문을 맡고 있다. 또, EU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40여개국의 산업 기술 개발을 위하여 설립한 공동 연구개발 R&D네트워크인 유레카 (Eureka)의 전문 심사 위원, ICMRBS 의 이사 등을 지내고 있다. 목 교수는 서울 대학교 약학 계열 1학년 과정을 이수한 후 도미, 버클리 대학교 (UC Berkeley) 에서 학사, 퍼듀 대학교에서 (Purdue University) 박사, CJ제일제당 종합 연구소 선임 연구원, 그리고 영국 외무성 치브닝 Chevening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그 실천을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하는 아름다운 분들을 벗삼으며, 더블린 한글 학교 발기위원장 그리고 아일랜드 한인회장을 역임하고, 수행하는 연구와 더불어 아일랜드에서의 재외 한국인의 위상 제고 및 그늘진 곳에 살며 탄식하는 아일랜드 인의 구제 활동에 몸과 마음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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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ADR 30일부터 전환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서(ADR)와 국내 보통주 간 전환 절차가 오는 30일부터 시작된다. 다만 국내 원주를 ADR로 바꾸려면 별도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하고 발행 물량에도 제한이 있어, 두 시장의 가격 차이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ADR 상장의 의미를 단기적인 주가 흐름보다 글로벌 투자자 기반 확대와 미국 자본시장 진출에 두고 있다. ADR 발행과 키옥시아 지분 매각 등으로 확보한 현금의 일부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추가 환원 방안도 연내 공개할 계획이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의 모습. [사진 = 뉴스핌DB] ◆30일부터 양방향 전환…차익거래는 '제한적'SK하이닉스는 29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한국거래소 원주 추가 상장이 완료되는 다음 날인 오는 30일부터 ADR을 원주로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ADR 10주를 국내 증시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보통주 1주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ADR 1주가 국내 보통주 10분의 1주(0.1주)에 해당하도록 발행됐기 때문이다. 29일 현재 SK하이닉스 주가는 130만원, SK하이닉스 ADR은 130달러다. 현재 환율은 감안하면 ADR 10주는 188만원으로 국내 주가 보다 높은 상황이다. 미국 투자자가 ADR을 원주로 바꿔 국내에서 팔 경우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신고 절차·물량 제한…가격 괴리 당분간 지속가격 차이를 이용하려면 국내 원주를 사서 ADR로 바꾼 뒤 미국에서 매도해야 하지만, 원주에서 ADR로의 전환에는 규제상 신고 절차와 발행 한도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양방향 차익거래가 자유롭지 않아 ADR에 붙은 가격 프리미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국내 기업의 기존 주식예탁증서(DR) 사례를 고려하면 원주를 ADR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규제상 신고 절차가 필요할 수 있으며 통상 수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물량에도 제한이 있다. 현재 ADR 전환 한도는 이번 공모를 통해 발행한 신주 규모인 1779만주로 설정돼 있으며, ADR 총 발행 잔량도 이를 초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30일부터 양방향 전환 체계가 시작되더라도 원주와 ADR 사이의 가격 차이가 단기간에 완전히 해소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원주에서 ADR로의 전환에는 시간과 물량 제약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ADR은 공모가(149달러)를 밑도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AI 투자 둔화 우려와 글로벌 반도체주 조정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글로벌 자본시장 진출"…주주환원도 확대 검토다만 SK하이닉스는 이번 ADR 상장의 의미를 단기 주가보다 글로벌 자본시장 진출과 투자자 기반 확대에 두고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나스닥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기술 경쟁력과 성장성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신뢰를 확인한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주요 고객 및 파트너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향후 ADR 비중 확대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회사는 "ADR 비중 확대는 규제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보유 현금 활용 방향도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 지분 매각과 ADR 발행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AI 시대 성장 기회를 위한 적기 투자 ▲안정적인 재무구조 유지 ▲주주환원 확대라는 세 가지 원칙 아래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주주환원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SK하이닉스는 "시장의 높은 관심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의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ADR 공모와 관련한 규제와 절차상 제약으로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방식과 규모를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되는 대로 연내 시장과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syu@newspim.com 2026-07-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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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상반기 美로비 자금 34억원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쿠팡이 국내 규제 현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워싱턴 정관계를 상대로 한 로비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쿠팡Inc가 올해 상반기 신고한 로비 지출액은 237만달러(약 34억4200만원)로, 자체 조직과 외부 전문업체를 통해 백악관과 미 의회, 주요 행정부처 등을 폭넓게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제재를 미국 기업 차별로 규정하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공화당 의원들의 연명서한과 하원 조사보고서, 외국 공무원 입국 제한 법안 발의로 구체화됐다. ◆ 상반기 237만달러…외부업체 6곳 가동 29일 미국 상원 로비공개법(LDA) 공시에 따르면 쿠팡Inc가 올해 상반기 신고한 로비 지출액은 총 237만달러(약 34억4200만원)다. 이는 지난해 연간 지출액 227만달러(약 32억9700만원)를 이미 10만달러 웃도는 규모다. 올해 1분기에는 109만달러(약 15억8300만원), 2분기에는 128만달러(약 18억5900만원)를 지출했다. 2분기 지출액은 1분기보다 17.4%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지출액 110만달러(약 15억9800만원)와 비교하면 올해 상반기 로비 비용은 115.5% 증가했다. 쿠팡Inc는 자체 조직과 ▲볼러드파트너스 ▲컨티넨털스트래티지 ▲크로스로드스트래티지 ▲밀러스트래티지 ▲모뉴먼트애드버커시 ▲윌리엄스앤드젠슨 등 외부 업체 6곳을 활용했다. 접촉 대상에는 미국 상·하원과 백악관, 국무부·상무부·미국무역대표부(USTR) 등이 포함됐다. [AI 인포그래픽=김정인 기자] ◆ 서한·보고서 거쳐 법안까지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제재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는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은 올해 들어 조사와 서한, 보고서,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지난 2월 쿠팡Inc에 한국 정부의 조사·제재와 관련한 문서와 통신 기록 제출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쿠팡 관계자의 증언도 요구하며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 차별 여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어 마이클 바움가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지난 4월 공화당 하원의원 54명과 함께 한국 정부에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한국 온라인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밀려날 경우 테무와 알리바바, 쉬인 등 중국계 플랫폼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조사 내용을 토대로 지난 1일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 차별 의혹을 다룬 중간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반복적으로 조사하고 경쟁사보다 과도한 규제와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이 제출한 자료와 관계자 증언도 보고서에 활용됐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뉴스핌DB] 정치권의 문제 제기는 법안 발의로도 이어졌다. 바움가트너 의원은 지난 22일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을 경제적으로 차별한 외국 정부 당국자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고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민·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 공무원 입국 제한법안'으로 불리는 H.R.9834는 차별적 정부 조치에 관여한 외국 공무원을 입국 불허·추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현재 하원 법사위원회에 회부된 발의 초기 단계다. 바움가트너 의원은 법안 설명자료에서 한국 당국의 쿠팡 조사와 과징금을 미국 기업 차별 사례로 제시했다. 다만 법안은 쿠팡과 한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며 유럽연합(EU)의 구글 규제와 브라질의 미국계 플랫폼 규제도 함께 언급했다. ◆ 쿠팡 "합법적 활동…수출 확대 목적" 쿠팡은 미국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한 로비가 미국 헌법과 관련 법률에 따라 보장된 합법적인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자사의 로비 규모도 미국 주요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과 비교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공식 로비 의제가 미국산 상품 수출과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한미 경제·통상 관계 강화라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포춘 글로벌 500 첫 진입을 발표하면서도 자신을 시애틀에 본사를 둔 미국 기술기업으로 소개하고, 지난해 미국 상품·서비스·농산물의 해외 판매액 가운데 50억달러 이상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쿠팡을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차별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 국적과 관계없이 플랫폼 사업자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kji01@newspim.com 2026-07-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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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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