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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⑧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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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사 20주년 특별기고

아일랜드의 현대사는 참으로 다루기 무거운 주제이다.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이리쉬의 디아스포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안들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되짚어야 한다는 점에서다. 필자도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간 많은 학자와 전문가, 언론인들이 다각적으로 깊이분석하여야만 이해가 되는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면서, 현재까지 온 상황을 한 번은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목헌 트리니티대 교수

슬픈 사실이지만 아일랜드가 그 주권을 영국에게 빼앗긴 기간은 이럭저럭 800년의 세월이다. 원래 족장들이 각각의 지역을 다스리고 있고 이들을 연합하여 지배하는 상왕(High King)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아일랜드 섬은 1169년 앵글로 노르만 족의 침입으로 영국의 지배 하에 있게 된다. 그 후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왕비도 많았던 헨리 8세가, 당시 대륙에서 기독교의 부패를 대범하게 지적했던 마르틴 루터와 죤 칼방 등의 종교 개혁자의 물결에 무임 승차하여 잉글랜드 교회(Church of England, 성공회)를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리시키고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이 박해는 영국과 아일랜드에 소재한 모든 수도원의 해산과 성당 재산 몰수부터 시작하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개신교도들이 아일랜드의 얼스터 지방 (Ulster, 지금의 북 아일랜드 영토와 거의 동일)에 정착하게 되는 식민지 정책으로 이어진다. 이후 크롬웰과 의회주의자들에 의해 영국이 잠시 의회주의 공화국으로 바뀌자 아일랜드에서의 가톨릭 신자들의 핍박은 더욱 가세가 되고, 당시 아일랜드 인구의 5분의 1이 전쟁과 기아와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참극으로 이어진다.

[목헌 교수의 더블린 서신] 글싣는 순서

1. '감자농사' 빈국서 1인당 명목GDP 세계 2위로
2. 대기근으로 인구 3분의 1 잃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잘사는 비결
3. 더블린 산책과 함께 하는 역사 기행
4. 영국의 강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독립 투쟁
5. 아일랜드 글로벌 최저 법인세의 두 얼굴
6. 아일랜드의 세계 최고 기업들…기네스맥주에서 의료기기까지
7. 아일랜드 교육의 백미...중고생에 숨통 트여준 전환학년제
8.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上)
9. 피비린내 나는 분쟁에서 평화로 (下)
10. 한·아일랜드의 디아스포라와 재외동포 역량
11. 골칫덩이 국가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위기극복 DNA 채워진 아일랜드 (끝)

설상가상으로 17세기 내내 천주교인들에게 불평등한 형벌(Penal Laws)들이 제정되어 가톨릭 교도이면 아일랜드에서 교육을 받을 수도, 공직을 가질 수도,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는 등 일방적으로 불리한 종교 탄압이 18세기까지도 이어졌다.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였던 아일랜드 국민에게 가하여진 핍박이었으니 그들에게는 재산도 권력도 취할 기회가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19세기 중반의 감자 역병 대기근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 역시 이들일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아일랜드 섬의 북동편 귀퉁이 북 아일랜드 지역에 몰려 살고 있었던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18~19세기의 산업 혁명의 경제 혜택이 바로 그들의 삶으로 전달되어 조선 공업, 마직 섬유 산업 등의 발달과 함께 삶의 질이 영국 본토와 보조를 맞춰가고 있었다.

즉, 종교적인 차별로 시작된 한 민족에 대한 불평등이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커다란 인권적이고 경제적인 격차를 가져오고 만 것이다. 지금도 간간이 보이는 이 인간 비극에 가슴이 아픈 이유는 가장 순수하고 심오하여야 할 종교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을 분리시키고 가르는 프레임 뿐으로만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더욱 가슴 아픈 것은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 동일한 천주 하나님을 믿고 있는 신앙이며 공통적인 핵심 사상이 희생적인 사랑을 통한 백성의 구원이라는 것을 뻔히 앎에도 불구하고 이 모순된 차별을 이들이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제 논리로만 따지자면 1916년 아일랜드의 부활절 항쟁 이후 이어진 내전에서 당시 인간의 기본권을 빼앗기고 가난에 허덕였던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아일랜드 대부분의 지역이 영국으로부터 자주 독립을 얻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반면 자신들의 생활권이 보장된 북 아일랜드의 사람들이 영국 연방에 귀속되고자는 하는 의지를 밝히는 것도 그리 이상하다고 여길 수는 없다.

그리하여 1922년에 체결된 영국-아일랜드 조약(Anglo-Irish Treaty)에 의하여 북쪽의 6개 카운티는 스코틀랜드, 웨일즈, 잉글랜드와 동등한 위상으로 영국에 귀속되는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로, 나머지 26개 카운티는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으로 분리되고 만다.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등장과 폭력 투쟁

이 조약으로 성향과 경제적인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북아일랜드가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개신교 다수 사람들 틈 속에 소수의 가톨릭교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의거한 다수결의 원칙을 실행하면서 소수 의견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수에 대한 차별과 이들을 내쫓고자 하는 폭력 행위가 곧바로 북아일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아일랜드의 통일을 염원하며 혹독한 내전을 치른 민족주의 노선의 아일랜드 공화군(Irish Republican Army, IRA)은 소수의 카톨릭 교도들이 핍박받는 데에 분개하여 북아일랜드에 사는 다수 개신교도들에 대해 역시 동일한 폭력으로 대항하였다. 이로써 아일랜드 내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형제 이웃 간의 피흘림이 북아일랜드에서 계속된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는 초기에는 종교의 탄압으로, 그리고 잉글랜드 민족이 아일랜드 민족을 이등국민으로 강등시키는 차별 정책이 400여년 동안 계속되다 보니 이제는 그 본래의 원인을 잊고 아일랜드 민족 간의 인권 탄압과 기득권의 유지를 비롯한 정치·경제·사회 문제로 고착화되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모든 문제들이 폭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아이리쉬인들 때문에 한정 없이 그 비극이 계속되고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름하여 북 아일랜드 분쟁 (The Troubles)이다. 이는 1960년대 말부터 약 30년간 아일랜드 통일을 목적으로 구성된 준군사조직(paramilitary group)인 IRA, 친영 준(準) 군사조직인 얼스터 의용군 (Ulster Volunteer Force, UVF), 그리고 이들간의 무력 살상을 막기 위하여 파견된 영국군과 왕립 얼스터 경찰 (Royal Ulster Constabulary, RUC) 등 네 개의 집단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아일랜드의 참극이다. 이 과정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이 3500여명, 부상을 입은 자들이 4만명 이상이었으며,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사람 누구든 사상자의 가족 또는 친분이 없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 비극을 피한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피의 일요일' 당시 영국군이 데리 주민들을 진압하는 모습. [사진=목헌 교수 제공]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라면 1972년 1월 30일 벌어진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을 들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영장없이 피의자를 강제 구금할 수 있었던 북아일랜드 당시 이 제도를 반대하며 인권 평등과 회복을 되찾고자 데리(Derry)시의 시민이 평화 시위를 하던 중 영국군이 무차별 발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로 13명이 즉사하고 부상자 중 1명이 후일 사망하여 총 14명의 사망자를 가져왔다. 북아일랜드 분쟁 기간 중의 가장 어두운 나날 중의 하나로 기억되는 이 사건에 대해 영국 정부의 즉각적인 조사가 있었으나 영국군 공수여단의 진압이 정당하였다는 정부 옹호 결론만 나오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26년 후인 1998년에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에 의해 이 사건은 재조사에 들어갔고, 그로부터 12년 후인 2010년 데이비드 카메론(David Cameron) 총리는 공식적인 정부의 깊은 사과를 의희에서 발표하면서 영국군의 과잉 폭력 진압으로 데리의 시민이 부당하게, 그리고 일체 정당화될 수 없는 방식으로 희생 당하였음을 선언하였다.

한편 1981년의 메이즈(Maze) 형무소에서 일어난  IRA 소속원들의 단식 투쟁도 언급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초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IRA테러범들은 전쟁 포로로 간주되어 다른 재소자들처럼 죄수복을 입지 않고 강제 노역에 가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형무소 내에서도 IRA 소속원들간의 지휘 명령 체계가 유지됨을 본 영국 정부는 1976년 부터 전쟁 포로 특별 대우를 없앴으며, 이에 반발한 재소자들은 모포 투쟁(Blanket Protest)을 시작으로 여러 방식의 투쟁을 하다가 1981년 3월 부터는 연쇄 단식 투쟁에 들어간다.

단식을 최초로 개시한 사람은 IRA 지휘관 출신 보비 샌즈 (Bobby Sands)였는데, 이 와중에 북아일랜드에서 영국 하원 의원 보궐 선거가 발생하여 후보로 등록하고 민주적으로 옥중 선출되기도 했다. 샌즈로 시작된 단식 투쟁은 총 23명까지 늘어갔으며 66일만에 사망한 샌즈를 포함하여 총 10명의 IRA (또는 유사조직인 INLA) 소속 재소자들이 아사하게 되었다.  당시 들끓는 여론과 정치적인 논쟁 속에서도 마가렛 대처 총리 정부는 무력 집단과는 어떠한 협상도 완강하게 거부하였으며 평화적이고 정치적인 대화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암시하였다.

보비 샌즈를 추모하는 벨파스트의 벽화. [사진= Wikimedia Commons]

이에 대항해 IRA 는 오히려 무장 폭력 테러의 수위를 높이고 대처 총리에게 복수를 하고자 영국 보수당의 1984년 전당 대회가 열리고 있는 영국의 해변 휴양 도시인 브라이튼에서 대처 및 영국 내각이 숙소로 삼고 있었던 그랜드 호텔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였다. 새벽에 터진 폭탄에 5명이 사망하였으며 당시 호텔 방에서 집무를 보고 있었던 대처 총리는 다음 날 아침 예정된 전당 대회 연설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붕괴하는 테러를 부정하는 영국인의 의지는 그 어느 누구도 굽힐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는 IRA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대중의 지지를 얻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노벨상에 및나는 아일랜드 펑화주의 활동

다행히 서로가 서로를 폭력과 억압으로 맞대응하는 시도만큼이나 눈앞에 전개되는 이 비극을 종료시키기 위한 노력 역시 수 없이 많았다. 1976년 한 IRA 소속원이 운전 도중 영국군의 총격을 맞고 즉사하면서 그 자동차가 인도를 침범해 마침 걸어가고 있던 어머니와 세 자녀를 덮쳐 자녀들 모두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이를 직접 목격했던 33세의 베티 윌리엄스, 그리고 목숨을 잃은 어린 세 아이의 이모였던 32살의 메어리드 코리건은 1만여명의 천주교와 개신교 여성들과 함께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다. 이어 3만 5000여명의 '평화를 위한 여성회 (Women for Peace)'의 행진을 벨파스트 시에서 개최하게 된다. 그 이후 여성들에게만 제한되지 않는 운동이다 보니 그 이름이 바뀐 '평화인 공동체 (Community of Peace People)' 는 계속하여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위하여 시위를 하게 되었고 이듬해 1976년에 윌리엄스와 코리건은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주의와 만민 평등을 염원하는 아일랜드 국민들은 한동안 묵묵히 목도하기만 했던 비극의 연속과 혼몽과 좌절의 대물림을 끊고자 의지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게 된다. 그 연장선으로 외교적인 차원에서도 북아일랜드의 문제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리쉬 민족 및 미국 그리고 유럽연합(EU) 등이 함께 풀어 가야할 숙제임을 깨닫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북아일랜드 정부가 아일랜드 정부의 자문을 받으며 북아일랜드 국민의 과반수의 찬성이 있을 시에 아일랜드 섬의 통일이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영국-아일랜드 협정(Anglo-Irish Agreement)을 1985년 영국의 대처 총리와 아일랜드의 가렛 피츠제럴드 총리가 체결하게 된다.

* 목헌 교수는 = 아일랜드에 2006년에 정착한 후 현재까지 트리니티 대학교 (Trinity College Dublin)의 생화학⋅면역학부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단백질 3차 구조 연구 및 항암제 개발을 수행하고, 신약 개발 회사인 해믈리트 파마 (HAMLET Pharma, 스웨덴)의 기술 고문을 맡고 있다. 또, EU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40여개국의 산업 기술 개발을 위하여 설립한 공동 연구개발 R&D네트워크인 유레카 (Eureka)의 전문 심사 위원, ICMRBS 의 이사 등을 지내고 있다. 목 교수는 서울 대학교 약학 계열 1학년 과정을 이수한 후 도미, 버클리 대학교 (UC Berkeley) 에서 학사, 퍼듀 대학교에서 (Purdue University) 박사, CJ제일제당 종합 연구소 선임 연구원, 그리고 영국 외무성 치브닝 Chevening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그 실천을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하는 아름다운 분들을 벗삼으며, 더블린 한글 학교 발기위원장 그리고 아일랜드 한인회장을 역임하고, 수행하는 연구와 더불어 아일랜드에서의 재외 한국인의 위상 제고 및 그늘진 곳에 살며 탄식하는 아일랜드 인의 구제 활동에 몸과 마음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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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ADR 30일부터 전환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서(ADR)와 국내 보통주 간 전환 절차가 오는 30일부터 시작된다. 다만 국내 원주를 ADR로 바꾸려면 별도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하고 발행 물량에도 제한이 있어, 두 시장의 가격 차이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ADR 상장의 의미를 단기적인 주가 흐름보다 글로벌 투자자 기반 확대와 미국 자본시장 진출에 두고 있다. ADR 발행과 키옥시아 지분 매각 등으로 확보한 현금의 일부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추가 환원 방안도 연내 공개할 계획이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의 모습. [사진 = 뉴스핌DB] ◆30일부터 양방향 전환…차익거래는 '제한적'SK하이닉스는 29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한국거래소 원주 추가 상장이 완료되는 다음 날인 오는 30일부터 ADR을 원주로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ADR 10주를 국내 증시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보통주 1주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ADR 1주가 국내 보통주 10분의 1주(0.1주)에 해당하도록 발행됐기 때문이다. 29일 현재 SK하이닉스 주가는 130만원, SK하이닉스 ADR은 130달러다. 현재 환율은 감안하면 ADR 10주는 188만원으로 국내 주가 보다 높은 상황이다. 미국 투자자가 ADR을 원주로 바꿔 국내에서 팔 경우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신고 절차·물량 제한…가격 괴리 당분간 지속가격 차이를 이용하려면 국내 원주를 사서 ADR로 바꾼 뒤 미국에서 매도해야 하지만, 원주에서 ADR로의 전환에는 규제상 신고 절차와 발행 한도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양방향 차익거래가 자유롭지 않아 ADR에 붙은 가격 프리미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국내 기업의 기존 주식예탁증서(DR) 사례를 고려하면 원주를 ADR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규제상 신고 절차가 필요할 수 있으며 통상 수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물량에도 제한이 있다. 현재 ADR 전환 한도는 이번 공모를 통해 발행한 신주 규모인 1779만주로 설정돼 있으며, ADR 총 발행 잔량도 이를 초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30일부터 양방향 전환 체계가 시작되더라도 원주와 ADR 사이의 가격 차이가 단기간에 완전히 해소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원주에서 ADR로의 전환에는 시간과 물량 제약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ADR은 공모가(149달러)를 밑도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AI 투자 둔화 우려와 글로벌 반도체주 조정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글로벌 자본시장 진출"…주주환원도 확대 검토다만 SK하이닉스는 이번 ADR 상장의 의미를 단기 주가보다 글로벌 자본시장 진출과 투자자 기반 확대에 두고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나스닥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기술 경쟁력과 성장성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신뢰를 확인한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주요 고객 및 파트너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향후 ADR 비중 확대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회사는 "ADR 비중 확대는 규제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보유 현금 활용 방향도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 지분 매각과 ADR 발행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AI 시대 성장 기회를 위한 적기 투자 ▲안정적인 재무구조 유지 ▲주주환원 확대라는 세 가지 원칙 아래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주주환원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SK하이닉스는 "시장의 높은 관심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의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ADR 공모와 관련한 규제와 절차상 제약으로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방식과 규모를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되는 대로 연내 시장과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syu@newspim.com 2026-07-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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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상반기 美로비 자금 34억원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쿠팡이 국내 규제 현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워싱턴 정관계를 상대로 한 로비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쿠팡Inc가 올해 상반기 신고한 로비 지출액은 237만달러(약 34억4200만원)로, 자체 조직과 외부 전문업체를 통해 백악관과 미 의회, 주요 행정부처 등을 폭넓게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제재를 미국 기업 차별로 규정하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공화당 의원들의 연명서한과 하원 조사보고서, 외국 공무원 입국 제한 법안 발의로 구체화됐다. ◆ 상반기 237만달러…외부업체 6곳 가동 29일 미국 상원 로비공개법(LDA) 공시에 따르면 쿠팡Inc가 올해 상반기 신고한 로비 지출액은 총 237만달러(약 34억4200만원)다. 이는 지난해 연간 지출액 227만달러(약 32억9700만원)를 이미 10만달러 웃도는 규모다. 올해 1분기에는 109만달러(약 15억8300만원), 2분기에는 128만달러(약 18억5900만원)를 지출했다. 2분기 지출액은 1분기보다 17.4%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지출액 110만달러(약 15억9800만원)와 비교하면 올해 상반기 로비 비용은 115.5% 증가했다. 쿠팡Inc는 자체 조직과 ▲볼러드파트너스 ▲컨티넨털스트래티지 ▲크로스로드스트래티지 ▲밀러스트래티지 ▲모뉴먼트애드버커시 ▲윌리엄스앤드젠슨 등 외부 업체 6곳을 활용했다. 접촉 대상에는 미국 상·하원과 백악관, 국무부·상무부·미국무역대표부(USTR) 등이 포함됐다. [AI 인포그래픽=김정인 기자] ◆ 서한·보고서 거쳐 법안까지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제재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는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은 올해 들어 조사와 서한, 보고서,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지난 2월 쿠팡Inc에 한국 정부의 조사·제재와 관련한 문서와 통신 기록 제출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쿠팡 관계자의 증언도 요구하며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 차별 여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어 마이클 바움가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지난 4월 공화당 하원의원 54명과 함께 한국 정부에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한국 온라인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밀려날 경우 테무와 알리바바, 쉬인 등 중국계 플랫폼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조사 내용을 토대로 지난 1일 한국 정부의 미국 기업 차별 의혹을 다룬 중간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반복적으로 조사하고 경쟁사보다 과도한 규제와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이 제출한 자료와 관계자 증언도 보고서에 활용됐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뉴스핌DB] 정치권의 문제 제기는 법안 발의로도 이어졌다. 바움가트너 의원은 지난 22일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을 경제적으로 차별한 외국 정부 당국자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고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민·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 공무원 입국 제한법안'으로 불리는 H.R.9834는 차별적 정부 조치에 관여한 외국 공무원을 입국 불허·추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현재 하원 법사위원회에 회부된 발의 초기 단계다. 바움가트너 의원은 법안 설명자료에서 한국 당국의 쿠팡 조사와 과징금을 미국 기업 차별 사례로 제시했다. 다만 법안은 쿠팡과 한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며 유럽연합(EU)의 구글 규제와 브라질의 미국계 플랫폼 규제도 함께 언급했다. ◆ 쿠팡 "합법적 활동…수출 확대 목적" 쿠팡은 미국 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한 로비가 미국 헌법과 관련 법률에 따라 보장된 합법적인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자사의 로비 규모도 미국 주요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과 비교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공식 로비 의제가 미국산 상품 수출과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한미 경제·통상 관계 강화라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포춘 글로벌 500 첫 진입을 발표하면서도 자신을 시애틀에 본사를 둔 미국 기술기업으로 소개하고, 지난해 미국 상품·서비스·농산물의 해외 판매액 가운데 50억달러 이상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쿠팡을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차별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 국적과 관계없이 플랫폼 사업자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kji01@newspim.com 2026-07-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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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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