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가전업체 재고·회전일수 '급증'
해법인 수요 회복 불투명해 '한파' 길어질 듯
[서울=뉴스핌] 백진엽 선임기자 = 가전업계가 불황에 따른 판매 부진과 이로 인한 재고 누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 주요 가전업체 및 가전 유통사 중 몇 곳은 적자로 돌아섰고, 일부 기업은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심지어 직원들 월급을 못 주고 있는 곳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23일 국내 주요 가전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모든 기업들의 재고 관련 지표가 작년말에 비해 악화됐다. 재고자산이 늘었고 이로 인해 재고자산회전일수 역시 길어졌다. 재고자산회전일수는 해당 기업의 재고가 판매되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즉 재고자산회전일수가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재고가 판매되는데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로, 재고가 쌓인다는 뜻이다.
국내 대표 가전업체인 LG전자의 재고자산회전일수를 보면 작년말 56.21일에서 올해 3분기말 59.57일로 3일 이상 늘었다. 재고자산 역시 작년말 9조7540억원에서 3분기말 11조2071억원으로 약 1조5000억원 정도 증가했다.
삼성전자 역시 회전일수는 25일 정도, 재고자산은 16조원 정도 늘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 비해 가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만, 가전 부문 역시 재고가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기업들의 상황은 더 어렵다. 올해 3분기까지 7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중인 롯데하이마트는 재고자산 자체는 소폭 늘었지만, 판매 부진으로 인해 재고자산회전일수가 많이 길어졌다. 롯데하이마트의 재고자산은 작년말 5220억원에서 3분기말 5461억원으로 약 200억원 증가했다. 회전일수는 63.15일에서 79.65일로 16.5일 늘었다.
SK매직, 위니아, 쿠쿠홈시스, 위닉스, 신일전자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위닉스의 경우 재고자산회전일수가 작년말 112.85일에서 올 3분기 178.73일로 두달 이상 길어졌다.
이처럼 가전업체들의 재고가 늘어난 것은 수요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작년까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전 등에 몰렸던 수요가 사라지는 시점에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판매가 뚝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공급망 이슈로 원재료 가격까지 오르면서 할인 등으로 재고를 처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가전업체들의 재고가 급격히 늘고 있고, 회복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가전업체들은 재고 관리에 중점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생활가전과 모바일을 담당하는 DX부문에 대해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또 삼성과 LG 모두 가전 공장 가동률을 지난해말보다 낮췄다. 재고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롯데하이마트와 LG전자의 가전 유통채널인 '하이프라자'는 최근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효율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기업들 역시 대부분 공장 가동률을 낮춰 생산을 줄이면서 재고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한 중견 가전업체 관계자는 "내년 투자나 성장 전략을 구상하는 것은 사치로 보이는 상황"이라며 "공장을 덜 돌리는 등 재고를 줄이기 위한 것에 모든 방점이 찍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 역시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전업체에게 재고가 쌓인다는 것은 매우 큰 위험 경보"라며 "생산을 줄여서 관리하는 것은 일시방편이고 결국 수요가 회복돼야 하는데 내년 상반기까지는 한파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기 때문에 여느때보다 더 추운 겨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