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벌금형 선고유예 → 대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도시개발조합장이 체비지 대장에 등재된 전매수인의 명의를 말소한 행위에 대해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배임죄로 기소된 도시개발조합장 A씨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사건을 대구지법에 환송했다.
도시개발사업조합의 조합장인 A씨는 환지처분 전 B회사에 체비지를 양도하고 B회사가 다시 피해자에게 매도해 피해자가 체비지 대장에 최종 소유권 취득자로 등재됐다. 체비지란 도시개발사업 시행자가 도시개발사업에 필요한 경비 충당 등의 목적으로 일정한 토지를 환지로 정하지 않고 매각처분할 수 있게 한 토지다.
그런데 A씨가 B회사를 상대로 과다지급 공사비 반환소송을 제기하면서 채권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동의 없이 체비지 대장에 소유권 취득자로 등재된 피해자 명의를 말소한 것이다.
검찰은 A씨가 조합장으로서 체비지대장에 기재된 명의자의 권리를 보호·관리할 임무가 있음에도 피해자 동의 없이 명의를 말소해 임무위배행위를 저질렀다며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1심과 2심 재판부는 "사업시행자는 체비지대장의 취득자로 등재된 자에 대해 명의가 함부로 말소·변경되지 않도록 체비지 대장의 기재를 유지·관리해야할 의무가 있다"며 "사무를 처리하는 피고인이 체비지 대장상 권리자의 의사에 기하지 않고 임의로 체비지대장의 기재를 말소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배임죄를 구성한다"며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체비지 대장 명의를 피해자에게 원상회복 시켜줬고 그에 따라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 점, 피고인에게 다른 특별한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해 벌금 15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판결에 배임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 결정했다.
대법은 "이 사건 조합이 시행한 도시개발사업은 도시개발법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체비지 대장의 등재가 환지처분 전체비지 양수인이 취득하는 채권적 청구권의 공시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체비지 대장 등재가 양수인이 취득한 물권 유사 권리의 공시방법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피고인이 피해자 명의를 말소한 행위만으로 피해자의 재산상 실해 발생 위험이 야기됐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매매계약에 따라 취득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체비지 대장의 기재여부와는 무관하므로 체비지대장 취득자란의 피해자 명의가 말소됐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권리가 침해되거나 재산상 실해 발생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은 "원심은 피고인을 체비지 전매수인인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인정하고 피고인의 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며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재산상 손해의 발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현행 도시개발법에 따라 체비지 대장에 등재된 체비지 양수인의 법적 지위는 매매 등 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자에 불과하고 따라서 조합장의 체비지 대장 관리사무가 타인의 사무처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판결이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