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보다 핵전쟁 위험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北 핵 보유국 인정시 핵 확산 도미노도 우려"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북한 핵 위협이 고도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일각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군축 협상으로 대북 접근법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에 핵 보유국이란 정당성을 부여해서는 안 되며 비핵화 목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프리 루이스 미국 미들베리연구소 제임스 마틴 비확산센터 국장은 20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현 시점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기보다는 북한의 핵 보유를 현실로 받아들인 다음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루이스 국장은 자신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핵 전쟁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의 비무장을 주장하기 위해 그 같은 위험을 줄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이 현재 인질로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비무장을 잠시 제쳐두고 핵 전쟁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낫다고 제안했다.
루이스 국장은 지난 13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라는 글을 통해 미국의 북한 비핵화 노력이 실패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처럼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북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한국의 접근법 때문에 오히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루이스 국장은 문제는 북한이 점점 더 많은 핵 역량을 획득한다는 점이라며, 북한이 2010년 자행한 것과 같은 종류의 도발에 관여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더 넓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 그런 도발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제니 타운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도 이달 초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비핵화 기회의 창은 이미 닫혔다"고 지적했다.
타운 연구원은 VOA에 비핵화를 완전히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긴장 완화에 우선순위를 두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핵화의 희망을 놓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비핵화 이슈를 내세우지 말자는 제안이다.
그는 "군축이든 비핵화든 어떤 대화에서 더 생산적인 위치로 돌아가려 한다면 북한 뿐 아니라 역내에서 긴장 완화, 위험 감소, 신뢰 재건 등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함으로써 북한의 자신감을 더욱 높여줄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어떤 국제 주체도 '핵 보유국'을 공식 승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정치적으로 '핵 보유국'이 무슨 의미인지 불분명하며 한 나라를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정식 절차도 없다는 설명이다.
타운 연구원은 북한이 어쨋든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며, 미국이 소통의 창구를 단절해버리는 것은 나쁘게 본다면 관계를 악화시키고 긴장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핵 전략가인 안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비핵화는 이제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웃음거리(farce)가 됐다"며 "이제 북한이 (핵 이슈에서) 이겼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워싱턴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이며, '북한 비핵화를 폐기하고 핵 보유를 인정하자'는 정책 제안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년에 가까운 미국의 대북 정책 접근법을 부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루이스 국장도 실제로 미국 정부가 가까운 미래에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고 군축 협상으로 접근법을 바꾸자는 주장은 "매우 잘못됐다"고 일축했다.
그렇게 하면 김정은은 자신의 전략을 성공으로 평가하고, 그 같은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가며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맥스웰 연구원은 자신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가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김정은이 절대 비핵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핵 보유국'이란 정당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억지력을 위해 핵을 개발한 인도나 파키스탄의 경우와 달리 한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국과 역내, 국제사회에 대한 진정한 적대적인 의도를 갖고 있으며, 억지력을 위해 핵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전과 협박 외교를 위해 사용한다고 부연했다.
앞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VOA '워싱턴 톡'에서 북한이 핵무기 포기 의사가 없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이유는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의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차 석좌는 북한의 의도는 적어도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지만 미국은 절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 핵 보유국 인정은 미국의 위상을 떨어뜨리며 세계 핵 비확산 노력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로버트 매닝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인정하면 도미노처럼 핵 확산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한국도 핵 무기를 원할 것이며, 이란도 그것을 자국 핵 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청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란 지적이다.
매닝 연구원은 또 군축 협상에서는 북한을 어떻게 믿겠냐고 반문했다. 북한 김정은이 핵 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신뢰할 만한 신고를 할 의향을 밝힌 적이 없으며, 무엇을 보유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동결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매닝 연구원은 북한과의 신뢰할 수 있는 군축 체제가 마련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