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부터 31일까지 무우수갤러리
카툰 형식으로 패권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전복과 풍자 담아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팝아티스트 지.코(고경일 상명대 교수)의 작품은 '쿨'하다. 이제는 너무 흔하고 식상해져서 약간의 주목이라도 끌기 위해 수퍼 히어로들이 마치 '망명정부의 지폐와 같은 낙엽'처럼 떼거지로 굴러다니도록 만든 할리우드적 문법은 지.코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영화 속 수퍼 히어로들은 화면에서 온갖 '똥폼'을 다 잡으면서 지구를 구해내지만, 지.코가 그리는 수퍼 히어로들은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있다.
수퍼맨은 원더우면에게 거의 멱살 잡힌 것처럼 키스를 당하고 있고, 배트맨은 캣우먼에게 노골적인 성희롱(?) 내지 유혹을 당한다. 원더우먼과 배트맨의 키스 역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원더우먼이다. 수퍼맨과 배트맨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원더우먼에게 키스를 당하는 수동적 입장이 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2022.10.15 digibobos@newspim.com |
지.코 작가는 그의 SNS에서 초대글로 다음처럼 말한다.
반항하지 마세요. 이젠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변명하지 마세요. 이미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수능시험평균 점수에서 여성이 앞서 버렸습니다.
대학 진학률도 여성이 훨씬 많습니다.
공무원시험도, 기업 신입사원도, 뭐든지 여성의 존재감은 훨씬 커졌습니다.
단순한 편견입니다. 남성보다 여성의 리더십이 약하다거나, 경쟁에서 뒤쳐진 다는 생각 부터가 '올드'합니다.
지금까지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리더의 '자리'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지, 능력이 안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주면 새로운 리더가 나오고 새로운 리더는 더 많은 약자들에게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합니다.
'남성다운 근육(?)'으로 폼잡던 히어로들은 이제 한 물 같습니다.
폼 잡으면 잡을수록 더 폼이 안나는 세상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새롭게 급부상한 미술의 사조인 팝아트의 특성과 기능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따른다. 단순한 심미적 유희에만 집중된, 소위 키치(kitsch)로 폄하되는가 하면 동시대의 문화와 시대성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뻔하면서도 사회비판적인 미술로 인식되기도 한다.
감상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갖춘 팝아트는 엘리트 미술로 상정된 모더니즘 미술에 대항하여 고급미술이란 높은 담장을 전복하고 대중의 삶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팝아티스트 지.코(고경일)의 작품이 바로 그러하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카툰 형식을 취한 지.코의 작품들은 논쟁적이고 시사성이 짙은 풍자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사진=무우수갤러리] 2022.10.15 digibobos@newspim.com |
지.코의 작품은 미국 대중만화의 아이콘인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원더우먼, 헐크의 이미지를 차용한 카툰형식으로 가볍고 장난스럽게 보이지만 상당히 논쟁적이고 시사성이 짙다.
첫눈엔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가 우리의 시각적 욕망과 유희를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형태는 마치 과자 봉지 안에 들어 있는 딱지를 연상시키는데, 그림마다 상이한 숫자로 그려진 별은 흡사 딱지의 레벨을 나타내는 성싶어 자본주의 맥락 속에서의 '상품의 가치'를 표한다.
그런가하면 이렇게 작가에게 선택된 '인물'들은 우리의 사회·문화·일상·국제관계라는 자장을 모두 순환하며 '정치적 팝아트'로서의 메타적 성질을 드러낸다.
작가는 "슈퍼 영웅의 원조는 단연 슈퍼맨으로, 근육질의 강인한 몸과 탄탄한 멘탈을 가진 이 캐릭터는 '강한 백인 남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슈퍼히어로의 등장은 2차세계대전과 관련이 있다. 프랑스와 영국이 수세에 몰려 러브콜을 수 차례 보내자 마지못해 참전한 미국은 단번에 세계대전을 정리하고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마치 슈퍼맨처럼." 이라고 말하며 슈퍼맨의 이미지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내지는 '세계의 경찰'로 상정되는 미국의 표상으로서 소비한다.
그러나 돌연 작가는 이 슈퍼히어로를 통해 지구촌을 강력하게 리드해 온 미국의 병폐와 모순 그리고 무능을 꼬집고 풍자한다. 가령 작품 <쳇>의 슈퍼맨은 늙고 처진 몸의 올드맨으로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위기에 빠진 약자를 위해 불철주야 날라 다니던 젊은 날의 모습은 온대간대 없이 만사가 다 귀찮고 짜증스그러워 보인다. 작품 <올드맨의 비애> 속 베트맨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지쳐있다. 지난날의 파워와 영광이 무색하다.
반면 작품 <쬬옥>, <내 마음대로>, <왕녀에게 부탁해>, <애정의 주도권>에서 보여지는 원더우먼의 모습은 슈퍼맨과 베트맨을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모습으로 자신감에 차 있고 강단이 있다. 작가는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으며 자본주의 이상향이라고 꼽히는 것은 미국이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교묘히 주입시킨 환상이란 생각으로, 이 미디어를 역이용해 미국의 이상화된 이미지를 전복하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다분히 미국적인 것을 토대로 미국적인 것의 핵심 요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늙고 지친 수퍼 히어로들은 오늘날 미국과 패권주의에 대한 가치관의 전복이자 통렬한 풍자다. [사진=무우수갤러리] 2022.10.15 digibobos@newspim.com |
지.코 작가를 초대하여 전시를 개최한 무우수갤러리측은 그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지.코 작가의 작품은 소위 고급예술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팝아트의 키치적 속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물며 은근하든 노골적으로든 자본주의의 등식 또한 성립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단순한 심미적 즐거움 또는 상업성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고상함을 벗은 작가의 작품은 언뜻 예술의 진지성을 전면 거부하는가 싶으면서도 사회와 윤리의 문제, 정치적 갈등을 풍자하는 등 굉장히 논쟁적인 성격을 띄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적 팝아트에서 작동되는 사회주의 시기 메타담론이었던 프로퍼갠더 포스터를 거꾸로 소화하는 셈이다. 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묘미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환유(metonymy)의 수사법으로 기존의 발상과 가치관을 뒤집는 것. 그것도 유쾌하고 통쾌하게 말이다."(무우수갤러리 학예실장 양효주)
지. 코 작가는 벤쿠버아일랜드대학에서 객원교수, 모교인 교토세이카대학 교수를 거처 현재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과 교수로 재직하며 풍자만화가, 팝아트 작가로서 만화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사)우리만화연대 회장,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샐라티스트협회, 평화예술행동두럭, 서울민예총, 호아빈의리본 회원으로 활동하며 풍자만화와 팝아트 작품, NFT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에 풍자만화를 연재,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위한 '보따리'전, 그리고 베를린을 비롯해 교토, 서울 등 12개국에서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digibobo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