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8월 스위스에서 세번째 한국인 조력자살 임종을 지켜본 이야기
작가는 안락사 반대하고 호스피스 시설 확충이 대안이라 생각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저자 자신도 이렇게 말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 사실이 그랬다. 신아연 작가가 9월에 펴낸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책이 출간 며칠만에 일약 화제의 스타덤에 올랐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 나면 하루쯤은 몸이 아픕니다. 고생이 되어서요.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은 노가다 중에서도 '상노가다'에 속합니다.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하는 '주변에 알리기'는 끝도 없고요. 모든 과정이 자신과의 싸움이요, 가없는 인내를 요하지요. 저는 그런 진득함이 이제 체질이 된 것 같습니다.
어제도 카톡 지인들께 한 명, 한 명 (하루 10명을 목표로) 추석 인사 및, 평소 안부, 최근 근황 등을 물어가며 출간 소식을 전하는데 갑자기 '홍보폭탄'을 맞은 것처럼 한 방에 일이 끝나버렸습니다.
제 책 소개,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가 네이버 생활문화 섹션에 오른 거지요. 손바느질에서 드르륵 재봉틀로 박은 듯, 삽질에서 포크레인으로 뜬 듯, 새벽에 확인해 보니 10시간 동안 2만 명 이상이 글을 읽었고, 100명 넘는 분들이 댓글을 다셨더라구요. 지금도 초 단위로 구독자 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제 말이 되었네요." - 작가가 9월 12일 23시 30분 께 올린 블로그 글에서 발췌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는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한국 시각 오후 7시경, 스위스 바젤에서 64세로 생을 마감한 한 남자의 안락사를 지켜본 경험 이야기다.
신아연 작가는 그가 자신의 오랜 독자라는 인연으로 스위스까지 동행했지만, 그 전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폐암 말기 환자로, 두 번의 시술을 받았지만 2년 후 재발했고 신작가와 연결이 되었을 때는 주치의가 예상한 여명을 석 달 정도 넘긴 상태였다.
작가는 안락사 승인을 받은 환자의 심경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스위스로부터 안락사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냐고요? 그동안 깊이 생각했고 오래 준비해 왔기 때문인지 담담했습니다. 슬픔이나 아쉬움, 회한,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없었습니다. 이제 언제 생을 마감할 것인가만 결정하면 됩니다. 이제 저는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편안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 뿐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스위스로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원 웨이 티켓'을 손에 쥐고..."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신아연 작가 블로그 이미지 2022.09.14 digibobos@newspim.com |
그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다. 역시 신아연 작가의 글에서 발췌했다.
"인제 그만 가야겠어. 먼저 갈게. 나중에 만나자고. 그리고 수목장을 하게 될 테니 꼭 한 번 와줘." 스위스에서 함께 머무는 동안 수목장에 꼭 와달라는 말을 두 번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에게 결코 폐를 끼치지 않는 성격이라는데 두 번씩이나.
"밖에 사람을 불러 줘."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어서. 모두 배고플 거야. 내가 어서 가야 점심을 먹지."
마지막 순간까지 기가 막힌 배려였습니다. 본인이 어서 죽어야 우리가 점심을 먹는다니. 조카가 마지못해 문밖에 사인을 보내자 작은 카메라와 거치대를 들고 담당자가 들어왔습니다.
"이제 모두 조용히 하세요. 짧은 동영상을 찍어야 하니까요."
그리고는 그를 향해 정면으로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이내 카메라의 녹음 버튼을 누르더니, 자기의 말을 또렷하게 복창하라고 했습니다.
"I'm sick, I want to die. I will die(나는 아프고 죽길 원하며 죽을 것이다)."
그가 그 말을 따라 하자 녹화는 끝났고, 약물 팩이 걸렸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밸브를 손수 돌리세요. 그러면 수 초 안에 편안히 잠드실 겁니다."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분이 밸브를 돌렸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설명을 하던 남자도 흠칫 놀랐고 우리의 입에서도 짧은 탄식이 나왔습니다.
"아, 졸리다..."
그 말을 끝으로 5~8초 남짓한 사이에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고,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 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밸브를 돌려 약물을 주입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찰나로 넘던 그 순간, 저는 그 분의 발을 식어갈 때까지 잡고 있었습니다. 뇌리에 쐐기처럼 박힌 그 장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신아연 작가 블로그 이미지 2022.09.14 digibobos@newspim.com |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택한 한국인으로는 2016년,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지금 공주의 한 추모공원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 있다.
이 책을 낸 목적에 대해 저자는 "내게 인연이 닿은 한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그것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인생이 얼마나 유한한가를 돌아보는 것"이라면서 "죽음이 막연한 게 아니라, 생전 안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라 동전처럼 삶의 이면에 딱 붙어있는 거란 사실을 그 분의 죽음을 통해 확연히 깨달았다"고 적고 있다.
아울러 "안락사에 초점을 두기 전에 죽음 자체가 이제는 양지로 나와야 합니다. 사는 이야기의 한 자락으로 죽음도 일상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모든 죽음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조력사의 전 과정을 지켜보고 이를 책으로 낸 저자이지만, 신 작가 자신은 크리스천으로서 안락사를 반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호스피스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지만 판매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그 일에 사용하고 싶다고 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신아연 작가 [사진=신아연 작가 블로그] 2022.09.14 digibobos@newspim.com |
신아연 작가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히며 글을 맺었다.
"책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니 그분이 더욱 그립습니다. 아쉽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일생 문학에 심취했던 그와 철학을 좋아하는 저는 서로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책이 알려지면서 공교롭게도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 감독이 안락사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순전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의 우연이지만, 이 사실로 인해 안락사, 혹은 조력사 문제가 화제의 중심에 놓일 듯하다.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온 신아연 작가는 치유와 성장을 주제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노장철학단상집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가 있다. 또한 인문 에세이 로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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