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금융사기 관련 시민단체 레버리지박멸 최정미 단장 인터뷰
"처음엔 사기당한 돈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같은 피해잔데 한 곳에선 사기, 다른 한 곳에선 사건 접수조차 안 돼
사기꾼은 진화하는데 수사는 제각각…전담청 만들어야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처음엔 사기당한 돈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최정미 레버리지박멸 단장은 2018년 투자금의 10배를 무이자로 빌려준다는 말에 속아 6000만원을 잃었다.
12일 뉴스핌이 입수한 이 사건의 공소장에 따르면 사건의 사기 일당은 2018년 2월쯤 최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입금된 금액의 10배를 이자, 담보 없이 대출해주고 있다. '○○○스탁'이라는 앱을 통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데, 30만원을 입금하면 330만원의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고 회유했다.
단 자신들이 개발한 사설 HTS(홈트레이딩 프로그램)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주식리딩방을 통해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투자를 할 수 있고, 수익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투자를 유도했다.
또 한 가지, "고객의 자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로스컷'이 발동할 수 있다고 했다. 로스컷은 손절매를 뜻하는 말로 가지고 있는 주식의 현재시세가 매입가격보다 낮은 상태이고 앞으로 가격 상승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매도하는 것을 뜻한다.
최 단장은 2018년 2월부터 8월까지 7개월여 동안 그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운영하는 주식리딩방에서 종목을 추천받는 등 투자를 했다. 정확히는 투자를 하는 줄 알았다. 6000만원을 잃고도 미련이 남아 해당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점이 보였다.
사설 HTS에서 하루 8000만원에서 1억원을 번다는 A씨가 월 100만원을 받고 개인리딩을 해주겠다고 채팅방에서 홍보를 하고 나섰다. '시계 사러 간다', '강남에 건물을 계약하러 간다'며 돈 자랑을 하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말을 하나 수상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가짜 거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A씨가 추천한 종목이 10만주가 거래됐다는데, 다른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해당 종목은 그 정도 물량이 거래된 적이 없었다. 피해자들이 돈을 입금하고 투자했던 사설 HTS 프로그램이 사실은 주식시세가 증권거래소와 연동되지 않은 위장 주식투자업체였던 것이다. A씨는 바람잡이였다.
이미 돈을 모두 잃은 최 단장은 그때부터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대포통장을 추적하다 우연히 안산의 한 사무실을 찾았다. 현장에 찾아간 최 단장은 그곳에서 112에 신고했지만 범죄 현장을 적발한 게 아니라 당장 그들을 체포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전화로 피해자를 꼬드기는 TM(텔레마케팅) 사무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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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미 단장(왼쪽)이 찾은 안산 단원구의 레버리지 투자 TM 사무실. [사진=최정미 단장] |
우여곡절 끝에 2019년 5월 경기 안산단원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했다. 고소 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온라인상에 레버리지 투자가 사기라는 게시글을 계속해서 올렸다. 네이버에 `레버리지·FX마진 가상거래 사기 피해자들의 모임' 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하루 30~40통씩 전화가 왔다. 피해자들은 최 단장에게 "투자 실패를 한 줄 알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는데, 사기를 당한 거였냐"라며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최 단장은 "사기 피해자들은 눈을 감으면 다음 날이 오지 않았으면 싶은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내 코가 석자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내가 알아낸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고, 경찰에 고소하는 법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같은 피해잔데 한 곳에선 사기, 다른 한 곳에선 사건 접수조차 안 돼
피해자들을 모으다 보니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남지방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는 지난해 1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레버리지 투자 사기 일당 5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7년 7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창원과 울산 등에 사무실을 두고 3883명의 피해자에게 투자 명목으로 726억원가량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앞서 2020년 11월 전남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서도 사기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레버리지 사기 일당 4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2020년 2월부터 10월까지 400여명에게 35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때 잡힌 일당 중에는 최 단장이 사기를 당한 업체에서 일했던 영업자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최 단장 사건의 총책은 잡히지 않았다. 1년 만에 겨우 검찰로 넘어간 사건은 담당 검사가 수차례 바뀌고, 사건도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서울남부지검으로 다시 서울동부지검으로 이번엔 서울중앙지검으로 이관되길 반복했다.
지난 6월9일 드디어 첫 공판이 열렸다. 총책은 못 잡았지만 4년 만에 TM조직 운영자를 비롯해 대포통장 제공자 등 3명을 법정 앞에 세웠다. 한 명은 사기, 나머지 둘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다. 경찰에는 영업자 등 10여명을 고소했지만 모두 풀려나고 이 셋만 남았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들에게 각각 징역 3년, 2년, 1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29일 열린다. 최 단장은 현재까지 피해금액 6000만원 중 2000여만원을 합의금 명목으로 돌려받았다. 사기꾼들을 직접 잡다시피 해 법 앞에 세웠지만, 피해보전은 여전히 요원한 셈이다.
최 단장은 수사기관이 이 같은 사건을 투자실패로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같은 사건이라도 수사관에 따라 사건이 접수되는가 하면 '(형사)고소가 안 된다'며 피해자들을 돌려보내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는 "고소하러 온 피해자를 돌려보내지 말고, 피의자가 해외에 있다고 못 잡는다고 하지 말고, 희망의 메시지라도 줬으면 좋겠다. 왜 처음부터 못 잡는다고 하는지, 사실은 안 잡는 건 아닌지… 범죄자인 걸 알면서 못 잡는다고만 하는 수사기관이 더 원망스럽다"고 했다.
최 단장은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달라고 강조했다. "레버리지 투자 피해자들은 로스컷을 안 당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없는 돈을 끌어모아 사기꾼들에게 10원, 20원씩 보냈다. 사기당한 것도 모르고. 피해 내역이라며 단돈 10원 송금한 자료를 보내주는데 마음이 무너졌다. 오죽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 사기꾼은 진화하는데 수사는 제각각…전담청 만들어야
최근 최 단장이 가장 많이 받는 연락 중 하나는 비상장주식 사기다. 예상했던 일이다. 몇 년 전 경찰이 레버리지 투자 TM사무실을 조사했을 때 이미 그들은 레버리지 투자에선 손을 떼고 비상장주식을 팔고 있었다.
최 단장이 사이버 전담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TM을 이용한 사기 수법은 전통적인 보이스피싱에서 투자사기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는데 수법만 바뀌었다고 수사기관은 전혀 다른 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범죄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범죄단체를 조직한 점 ▲대포폰, 대포통장을 활용해 익명성 뒤에 숨었다는 점 ▲점조직화 되어있어 TM조직 한 곳이 잡혀도 꼬리자르기로 전체 조직을 잡긴 힘들다는 점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라 피해 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 ▲기망수단이 무궁무진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사기꾼들이 수법만 바꾸면 당장 고소 접수부터 막히는 게 현실이다. 사기꾼들은 이를 악용한다. 이 때문에 최 단장은 이 같은 사건을 사이버피싱이라고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이버피싱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경제적 살인임에도 형량이 너무 낮다"며 "돈이 흘러간 대포폰, 대포통장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조사해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도 확인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 단장은 지난달 30일 피해자 자격으로 결심공판을 참관했다. 재판부가 발언 기회를 주자 그는 "사기당한 후 아침마다 제일 부러웠던 뉴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만큼 하루하루 살아있는 게 지옥이었다"며 "피고인들은 단순히 대포통장 명의만 빌려준 게 아니다. 범죄에 가담한 자들이다. 혐의를 제대로 밝혀달라"고 했다. 호소하는 그의 몸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부들부들 떨렸다.
heyj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