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홍우리 기자 = 세계 양대 강국,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다르다고 으르렁거리다가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라며 훈수를 두더니 이제는 글로벌 생산망·공급망을 지켜야 한다며 밀고 당기기를 시전 중이다. 원색적인 비난까지 아끼지 않으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관전잼'을 선사하는 듯도 하다.
이쪽에서 한 마디 하면 저쪽에서 즉각 반응한다. 핑퐁외교로 가까워진 두 나라인데, 그래서인지 한 마디씩 주거니받거니 하는 모습에서 테이블 이쪽 저쪽을 오가는 탁구공이 연상된다.
최근에는 미국이 선공한 뒤 중국이 반격하는 모양새다. 해묵은 갈등이 바닥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경거망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듯 미국이 칼을 빼들면 중국이 공격적인 방어 태세를 취하는 느낌이다.
지난달 말 주요 7개국(G7)은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 지원을 위해 60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력으로 주변국을 포섭하고자 했던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은 자국의 인프라 투자 여력도 부족하다"고 비아냥거렸다. 네 코가 석자인데 공연히 큰 소리치지 말라면서 글로벌 리더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대만 문제를 놓고 양국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미국과 대만이 최근 경제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밀월기에 돌입한 뒤 중국이 반격 수위를 높이는 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달 27일 출범한 미국-대만 이니셔티브에 대해 중국 상무부와 외교부는 "대만이 대외 경제 협력에 참여하는 전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라며 "중국은 주권적 의미와 공식적 성격의 경제무역협정을 포함해 어떤 나라가 어떤 형식으로든 대만과 공식 왕래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관영 매체로 분류되는 글로벌타임스는 실질적 내용이 없다면서 이니셔티브 가치를 평가절하 했다. "이니셔티브에 가장 중요한 사안인 시장 접근과 관세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실질적인 의의와 효과가 크게 훼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의 승인 없이 (이니셔티브를) 추진한 점을 고려할 때 실무 차원에서 의회라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미국과 대만의 동맹에 가까운 군사 협력 강화는 중국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중국은 공개석상에서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실제로 대만 주변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일종의 무력 시위인 셈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식 계정을 통해 대만 주변에서의 군사 훈련 사실을 공개하면서 "미국과 대만의 결탁에 대해 필요한 행동을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최근 공개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대만 독립 세력을 종용하고 지지하고 있다. 이는 대만을 위험한 지경에 몰아넣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미국)도 심각한 후과에 직면하게 할 것"이라며 "훈련과 전투 대비를 강화하고 사명 수행 능력을 높여 외부 세력의 간섭과 대만 독립 세력의 분열 모략을 단호하게 좌절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중국은 아예 '일방주의' '편가르기'로 규정했다. 지난달 30일 폐막한 나토(NATO) 정상회의가 중국을 위협으로 명시한 전략개념을 채택한 데 대해서는 "나토야말로 세계 평화와 안정의 구조적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주문받은 대로 제조하기만 했던 세계의 공장은 어느덧 설계부터 제조까지의 공급망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경제 강국이 됐다. 두둑해진 '곡간'을 바탕으로 주변국들의 환심을 샀고 점차 영향력을 키워갔다. 영향력이 커졌으니 '입맛'대로 경제며 안보며 '판'을 다시 짜고 싶어하는 것, 그것도 어찌보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다.
반면 지금까지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심판'을 자처해 온 '전통 강자'도 순순히 물러설 리 없다. 앞으로도 실력을 행사하기 위해 '잠재적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것 역시 그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듣기 좋은 말도 삼세번이라고, 숨은 뜻은 같고 창의력만 더해진 입씨름에 이제는 점점 피로감이 느껴진다. 전통적 동맹, 이웃해 있는 최대 경제 파트너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로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누구를 위한 편가르기인지조차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보편적 가치'가 전제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면, 너무 이상주의적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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