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박한 금융시장, "시간 달라"는 금감원장
금융시장 현실 인식·금융철학 부재 아쉬워
[서울=뉴스핌] 홍보영 기자="예대금리 공시 시스템에 적절히 반영하겠습니다." 대출 가산금리 하락조정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대답이다. 답변이 애매하자 같은 질문이 또 나왔지만, 이번에도 같은 메시지가 돌아왔다.
"시간을 좀 더 주시면, 잘 검토해보겠습니다." 이 원장이 기자들과의 취임 이후 세차례 가량 진행한 현장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취임 이후 처음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 기자가 한계기업 운영자금과 관련한 금융권 부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구체적 대응방안은 금융위원회와 잘 협의해서 대응할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홍보영 금융증권부 기자 |
반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한 조사에 대해선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해) 사모펀드 관련된 것들은 개별 단위 펀드 사건별로 모두 종결되고 이미 넘어간 걸로 이해하고 있지만, 시스템을 통해 혹시 볼 여지가 있는지 잘 점검해보겠다"며 비교적 구체적인 답을 내놨다.
국내외 금융시장 현실 인식 부족, 경제·금융 철학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금감원 설립 이후 최초의 검찰 출신 금감원장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은행장들과의 첫 간담회 자리에서 내놓은 화려한 대내외 금융시장 리스크 진단, 대응책 관련 메시지와는 현격한 수준 차이가 났다. 기자들과의 현장 인터뷰 시간은 준비된 자료와 멘트로 대처할 수 있는 간담회 본행사와 달리 실시간으로 즉문즉답이 오가기 때문에 금융당국 수장의 금융시장 현실 인식에 대한 깊이를 가장 정확하게 가늠해볼 수 있는 장이다.
당연히 20일 가장 큰 이슈였던 환율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 원장이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을 대상으로 백브리핑을 진행한 이날 오전 11시 30분경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7.55원 오른 1294.85원에 거래됐다. 지난 15일 기록한 연고점을 경신한 수치다. 이는 외국인 자금 유출을 가속화하고,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사안이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장중 하락 전환해 나란히 연저점 밑으로 떨어졌다.
현장에서 현 금감원장의 발언에는 금융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부재했고, '조사'와 '검사' 등의 단어는 두드러졌다. 정은보 전 금감원장이 지난해 8월 취임 직후부터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한꺼번에 덮치는 위기)'을 예고하며, 사전적 감독을 강조한 것과는 사뭇 다른 기조다.
이 원장은 경제·안보·환경이 모두 위기에 처한 유례없는 복합위기 시대에 데뷔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등. 주식·외환·채권시장, 은행 연체율, 경상수지 및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 성장률·물가 상승률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금융 안정 지표인 '금융불안지수'(FSI)는 최근 '주의' 단계에 진입했다.
매일이 위태로운 변동성 큰 장세는 금융당국 수장의 위기 대응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무대다. 보여주기식 간담회, 현상 나열식 멘트보다는 시장의 니즈에 대한 진실 되고 엄중한 인식과 자신만의 '금융 철학'을 보여 줘야 한다.
byhong@newspim.com